(이건희 회장 체제 25년)'격변하는 시장', 삼성은 여전히 '도전자'

(특별기획)③"안주하면 도태..미래 위한 과감한 변화 필요"

입력 : 2012-12-03 오후 3:52:44
[뉴스토마토 황민규·곽보연기자] ‘세계 휴대폰시장 점유율 1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9위.’
 
국내 1위를 넘어 어느덧 세계 정상권으로 도약한 삼성전자는 창사 이래 최대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25년째 삼성을 이끌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위기의식’은 여전하다. 지난 30일 열린 취임 25주년 기념행사에서 이건희 회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혁신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발언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판단이다. 삼성이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아직 '샴페인'은 이르다는 얘기다. 규모면에서 분기마다 눈부신 도약을 하고 있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장 상황 앞에서 삼성은 여전히 ‘도전자’다.
 
삼성은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선전에 힘입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보였던 소니, 노키아 등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휴대폰 브랜드로 올라섰다. 하지만 여기가 끝은 아니다. 이제 세계 첨단산업은 구글과 애플을 중심으로 새 판을 형성하고 있다. 두 기업은 막강한 소프트웨어(SW), 네트워크 기술력과 창의력으로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문화 자체를 주도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를 다각화하기 위해 지난 2010년에 선포한 '신수종 사업'의 향후 행보도 중요하다. 삼성이 5대 신수종사업으로 선정한 ▲태양전지 ▲자동차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은 지난 2년간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태양광, 전기차 시장 형성이 늦춰지고 있는 현실도 문제지만, 선두권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꼬리표처럼 삼성을 따라다니는 비판여론 또한 기업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다. 삼성은 이미 수많은 제조기업들의 ‘롤모델’로 부상했다. 즉 삼성이 보다 선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와 사회적 책임 문제 등과 관련해 더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구글·애플 체제가 삼성에 보내는 '메시지'
 
구글과 애플 체제가 삼성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계 첨단산업의 트렌드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제조업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이 SW 중심의 차세대 시장에서 어떤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냐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는 삼성전자와 구글이 사업상 긴밀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스마트폰의 '혼(魂)'과 다름없는 운영체제(OS)를 전적으로 구글 또는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지난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IT 업계 파워가 삼성 같은 하드웨어 업체에서 소프트웨어 업체로 급속히 넘어가고 있다"며 문제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휴대폰 시장이 머지않아 애플, 구글, MS 삼파전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지난해부터 주요 컴퓨터, SW 업체들이 통신 기기 시장을 잠식하더니 이젠 상징성이 큰 휴대폰 회사를 인수하고 나섰다.
 
SW 회사들의 휴대폰 시장 잠식이 완료될 경우, 삼성전자가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초라해질 수 있다. 즉 제조기업 운명이 SW 3사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는 최근 들어 삼성이 "패스트 팔로워(추격자 전략)을 벗어나 시장을 앞서 나가는 '퍼스트 무버'를 강조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통신기기 시장을 잠식한데 이어 휴대폰 업체를 인수하고 있다.(출처=각 기업 홈페이지)
 
휴대폰과 스마트폰의 차이는 의외로 간단하다. 전화기라는 단순한 기계에 지능과 감성을 불어넣어 ‘스마트’한 제품으로 만드는 건 바로 훌륭한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는 휴대폰,  컴퓨터, 심지어 냉장고 같은 생활가전마저 똑똑하게 만들어 새로운 사업성을 창출한다.
 
기술이나 기계는 모방하기 쉬워도 지능과 감성을 베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프트웨어에서 앞선 기업들이 오랫동안 우위를 지키며 많은 이익을 내는 이유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다른 제조업체들이 휘청거릴 때에도 애플이나 구글이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IT업계에서도 삼성이 소프트웨어 사업 분야에서 일정한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한다면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메모리·칩·배터리·디스플레이 등 하드웨어 부문에서 세계 유일하게 수직계열화를 이룬 삼성이 자신의 플랫폼을 갖고, 소프트웨어 기술과 인력을 보강하고, 창의적인 문화로 변신해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다면 스마트 생태계 자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자 의존증' 심각..다음을 준비해야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은 지난 7월 부임하자마자 "(삼성이) 골고루 수익을 내던 시대가 끝나고 있다. 전자를 제외하면 중공업·중화학·건설 등 어느 계열사를 둘러봐도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2004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전자를 방문해 반도체 공정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삼성)
실제로 삼성그룹 내에서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볼만한 계열사가 드물다. 삼성그룹 전체 매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0% 수준이며, 삼성전자 내에서도 무선사업부(IM)가 차지하는 비중이 또 70%다. 만에 하나 휴대폰 사업이 부진에 빠질 경우 그룹 전체가 수렁에 빠질 수 있는 구조다.
 
특히 삼성전자는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코닝정밀소재, 삼성디스플레이 등 계열사를 부품사로 거느리고 있다. 사실상 삼성의 주요 부품업체들의 최대 고객은 바로 삼성전자인 셈이다. 만에 하나라도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생산량이 줄어들 경우 치명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물론 전자계열사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들도 삼성전자의 사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전자산업과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삼성에버랜드, 제일기획 등 굵직한 계열사들도 직·간적접으로 삼성전자의 성적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삼성의 광고를 책임지고 있는 제일기획도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제일기획은 최근 2~3년간 매출액의 절반 수준을 삼성전자에 의존하고 있다. 이 외에도 삼성에스원, 삼성화재 등 많은 삼성계열사들이 삼성전자의 이익과 사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삼성은 더 늦기 전에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관련 계열사와도 내부거래관계를 정돈할 필요가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대기업들은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부품업체를 독립시켜 세계 1위의 부품회사로 키운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5대 신수종사업, 아직은…"향후 행보 중요"
 
"기존 사업은 성장이 정체되고 신사업은 생존의 주기가 빠르게 단축될 것입니다. 삼성의 미래는 신사업과 신제품, 신기술에 달려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올 신년사에서 향후 삼성그룹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이미 지난 2010년 5월 ▲태양전지 ▲전기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를 5대 신수종사업으로 정하고 2020년까지 23조3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신수종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과감한 R&D 투자를 집행했다. 수원사업장 전자소재 연구단지, 수원연구소 R5, 화성부품연구동 등 3개 연구단지를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우면동 R&D 센터와 평택 고덕산업단지 등도 건립 중이다. 매월 R&D 투자를 위해 집행되는 비용만 1조원에 육박한다.
 
삼성은 이들 연구단지에서 소재 연구개발을 진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자소재 연구단지에서 '그래핀'을 비롯해 전기차 배터리와 태양전지, OLED 등에 필요한 소재 R&D를 진행할 계획이다.
 
태양전지와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그린에너지사업부를 사업본부 체제로 확대 개편하고, 새만금 지역에 태양전지와 풍력발전기 등 그린에너지 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부지를 확보했다.
 
삼성은 새로운 먹거리 사업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전망이 불투명해 주춤거리는 사업도 속출하고 있다. 바이오제약 사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삼성은 바이오의약품시장에 대한 본격 진출을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다. 하지만 최근 이 업체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첫 바이오시밀러인 'SAIT101'의 임상실험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기 조율 등 전략적 차원에서 잠정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즉 삼성의 5대 신수종사업은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향후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만큼의 핵심 사업으로 부상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한 상황인 셈이다.
 
◇"고객·사회의 사랑받는 기업으로"
 
지난 7월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이 애플이 제기한 특허소송을 받아들이며 갤럭시 넥서스의 판매금지 명령을 내리자 일부 소비자들은 애플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 불매운동은 구글플러스를 중심으로 확산된 구글 유저들의 반발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들의 불매운동이 삼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글을 위한 움직임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삼성이 애플의 특허 공세에 시달려온 지난 몇 년간 그 어떤 소비자 단체도 삼성을 위해 애플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이건희 회장 체제에서 25년을 거치며 삼성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존경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건희 회장도 삼성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 이 회장이 25주년 기념인사에서 “우리가 꿈꾸는 초일류기업의 모습은 고객과 주주는 물론 국민과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라고 밝혔다. '삼성'이 더 ‘빛나는 이름’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정의롭고 무엇보다 ‘사람’과 동행하는 따뜻한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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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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