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대선후보 정책검증)①국민선택이 미래 바꾼다!

무늬만 정치쇄신? 칼은 내부부터!

입력 : 2012-12-03 오후 4:15:52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2012년 12월19일이 다가오고 있다. 유권자들의 단 한번의 선택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뉴스토마토는 19대 대선을 맞아 모두 12차례에 걸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정책을 비교하는 기사를 연재한다. 이번 기획기사는 최대한 현장의 정책수요자 입장에서 정책을 검증하여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을 준다는 목표로 준비했다. [편집자 주] 
 
정치쇄신을 통한 새 정치 구현. 안철수 등장의 배경이었다. 해머가 등장하고, 패거리 줄서기가 난무하며, 모략과 정쟁이 판치는, 마치 전쟁터와도 같았던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혐오는 안철수를 통해 극대화됐다.
 
철옹성에 견주던 박근혜 대세론이 일거에 무너져 내렸다. 충격이었다. 민주당은 서둘러 새 인물 문재인을 내세웠다. 대표선수를 선발한 여야는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부랴부랴 정치쇄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안철수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성난 민심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박근혜-문재인 후보 정책비교표
 
◇쇄신 칼 뽑아든 박근혜..“자신부터 베어야”
 
사실 정치쇄신의 첫 등장은 안철수가 아니었다. 18대 국회에서도 쇄신의 바람은 있었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내에서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쇄신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다. 주장은 ‘계파정치 종식’으로 귀결됐다. ‘딴나라당’에 이어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친이·친박 간 혈투가 끊이질 않자 “이대로는 망한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쇄신 명분을 등에 업고 세력화가 이뤄졌다. 필연적으로 권력투쟁이 전개됐고, 이는 친이계의 몰락을 앞당기는 단초가 됐다. 재창당론이 터져 나왔지만 이미 당을 접수한 친박계가 수용할리 만무했다. 결국 비대위를 통해 수면 아래 지배자로 군림하던 박근혜가 전면에 등장했다. 쇄신은 좌절됐다. 쇄신모임에 가담했던 한 전직 의원은 “결국 계파싸움이 종식됐다. 박근혜 하나로 통일됐지 않느냐”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른 인사는 “MB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회창 전 총재를 능가하는 장악”이라고 말했다. 장악은 곧 독재였다.
 
때문에 박 후보가 내세운 정치쇄신의 궁극적 방향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박 후보가 정당개혁을 주장하면서 공천개혁(국민참여경선 통한 상향식 공천 및 비례대표 밀실공천 금지) 방안을 포함시켰지만, 이전 쇄신파가 주장했던 중앙당 폐지를 통한 원내정당화 등 극단적 처방이 없는 한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물음표라는 지적이다. 다만 기초자치단체장과 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 약속은 긍정적 변화로 평가된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박 후보는 지난 6일 정치쇄신안을 발표하면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국회개혁 방안으로 “게리멘더링을 방지하기 위해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하겠다”는 게 고작이었다. “현 양당제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주의에 대한 고민도, 대책도 없었다”는 게 진보적 정치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든든한 표밭인 영남을 포기하지 않고 말하는 정치쇄신은 무용지물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박 후보는 또 개헌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집권 후 4년 중임제와 국민의 기본권 강화 등을 포함한 여러 과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서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방점은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나왔다. 그가 “개헌이 (이번 쇄신안의) 초점이 아니다”고 일축하면서 가능성은 닫혔다. 박 후보는 “개헌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선거용의 정략적 접근이나 내용과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시한부 추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원칙과 신뢰, 약속을 강조하는 박 후보가 개헌 시기를 계속해서 늦추면서 그의 의지에 의문이 커졌다는 점이다. 박 후보는 그간 4년 중임제와 관련해 여러 차례 필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때문에 분권형 개헌론자인 이재오 의원은 박 후보의 빈약한 의지에 대해 혹평을 쏟아내며 그간 거리를 둬왔다.(2일 뒤늦게 지지를 표명했다.) 앞서 박 후보는 5년 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주장에 대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일축한 바 있어 개헌과 둘러싼 말 바꾸기 공방이 일기도 했다.
 
이외 박 후보는 정당개혁 방안으로 ▲국회의원 후보(선거 2개월 전) 및 대통령 후보(4개월 전) 조기 확정 법제화 ▲부정부패로 재보궐 선거시 원인제공자 선거비용 부담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자료 공개 4년으로 연장 등을 내놨다. 국회개혁 방안으로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제한 및 불체포특권 폐지 ▲예결위 상설화 ▲윤리위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 등을 제시했다.
 
또 민주적 국정 운영을 위해 ▲국무총리 및 장관에서 실질적 권한 부여(책임총리제) ▲국민대통합 탕평인사 실시 ▲기회균등위원회 설치 ▲낙하산 인사 관행 근절 ▲대통령의 국회 연설 정례화를 약속했다. 깨끗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비리 근절을 위해 특별감찰관제 도입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를 위한 상설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다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못했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정치쇄신에 대한 넓고 깊은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고, 신율 명지대 교수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책임총리제 등 대통령 권한의 분산은 개헌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뤄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그러면서 “안철수 전 후보의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해 급조했다는 인상을 준다”고까지 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박 후보의 개헌 추진 약속에 대해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고, 조성대 한림대 교수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 역시 “투표시간 연장과 같은 어렵지 않은 선거개혁 과제도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반대하고, 비례대표 확대도 기득권 보호 차원에서 반대하고 있다”며 혹독하게 비판했고,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분권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으나 결선투표, 투표시간 연장, 비례대표 확대 등 참정권 확대에 대해 수구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쇄신 없는 문재인의 정치쇄신..“민주당부터”
 
이에 비해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보다 구체적인 쇄신 공약을 내놨다. 안철수·심상정, 두 전직 후보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 수위도 대폭 강화했다. 새 정치에 대한 안 전 후보의 상징성을 그대로 이으면서, 진보 진영의 측면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박 후보로 결집하고 있는 보수 진영에 맞서기 위해 이들의 지원은 필수였다. 민주당 힘만으로는 “버거운 싸움”이란 얘기는 이미 선거전 이전부터 문 후보의 행보를 결정지었다.
 
문제는 민주당을 향한 국민적 시선이다. ‘구 정치(박근혜) 대 새 정치(문재인)’로 이번 대선을 애써 규정했지만, 여론은 민주당 역시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구태정치로 바라보고 있다. 민주화를 일군 투쟁사에는 존중을 보내면서도 스스로 기득권화 돼 버린 현실에는 매정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게 현장 기자들이 읽어낸 민심이다. “그놈이 그놈”으로 전락하면서 국민의 매질은 가혹했다. 민주당의 패배로 끝난 4·11 총선이 여실히 방증했다.
 
때문에 정치쇄신에 대한 민주당의 출발은 자기쇄신이 돼야 한다는 게 조국 교수 등 내부진영의 충고다. 이는 대선후보인 문 후보만이 해낼 수 있다. 문제는 문 후보가 이를 실행할 의지가 있느냐다. 이른바 친노 9인방이 자진해서 2선으로 물러나고 이해찬 대표까지 사퇴했지만 이는 안철수 전 후보의 영향력에 의한 것이지, 문 후보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박 담합의 한 축인 박지원 원내대표에게는 호남 표심을 의식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새로운 패권 논란의 중심지가 돼버린 친노 해체가 무엇보다 문 후보가 선행해서 보여야 할 정치쇄신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하면 친노는 또 다시 폐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친노를 해체해 친노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이유다. 또 뿔뿔이 흩어진 각 계파를 이른 시일 내에 단결시키지 못하는 한 정당개혁은 요원하다는 비판도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그간 사공이 많은 탓에 늘 배가 산으로 갔던 악몽을 떠올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이 제각각 목소리를 내면서 정책의 불확실성만 심어 줬다는 게 각계의 비판이다. 
 
자기쇄신에 대한 짐을 진 채 문 후보는 쇄신안의 강도를 높였다. 안철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두 사람이 합의했던 새정치공동선언문을 사실상 그대로 10대 공약(강도 높은 정치혁신과 권력개혁)에 집어넣었다. 그간 이견을 보였던 강제 당론 폐지와 국회의원 정원 축소만이 완화됐을 뿐이다. 또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을 약속하고, 비례대표 확대와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추진키로 하면서 진보 진영의 오랜 숙원을 풀어줬다.
 
문 후보는 인사권과 사면권 등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국무총리 인사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보장하며, 여·야·정 국정협의회를 상설화하는 등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대통령의 리더십을 해체하고 소통과 협치의 새로운 국정운영을 다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식 불통과 실정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자극하면서 확연히 대비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여소야대 현실 속에서 야당과의 협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때문에 엄연한 정치현실을 외면한 이상적 공약이란 비판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자연스레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정 분리 사례를 근거로 국정 장악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민주적 운영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또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이해관계와 직결된 사안에는 국민의 참여와 통제를 의무화하겠다며 ▲국회의원 영리목적 겸직 금지 및 연금제도 폐지 ▲윤리특위 산하 시민제소위 설치 ▲선거구획정위 전원 민간 전문가로 구성 ▲민간 전문가로 국회의원세비심의회 구성 등을 약속했다. 동시에 일하는 국회로 전환하기 위해 ▲상시 국정감사 도입 ▲상임위 권한 강화 ▲예결위 상설화 ▲회계감사처 설치 ▲입법청원제도 강화 등을 내걸었다.
 
문 후보는 정당 개혁을 위해 ▲공천권 국민 반환 ▲기초단체장 및 의원 정당 공천 폐지 ▲국고보조금 개선 및 정책연구소 독립기구화 ▲중앙당 권한 및 기구 축소 등을 공약했다. 중앙당의 권한을 분산하는 등 정당 민주화에 앞서겠다는 것으로 기득권 내려놓기 차원이란 게 문 후보 측 설명이다. 다만 평생의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업으로 여겼던 지역구도 극복에 대해선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권역별 정당명부제 도입 역시 진보정의당을 의식한 내용으로, 확약 없이 단순히 “추진하겠다”고만 했다.
 
그럼에도 정치 전문가들의 평가는 박 후보보다는 긍정적이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긍정적으로 볼 부분이 많지만 대부분이 이미 학계와 정치권에서 나왔던 얘기”라며 “구체적 실천방안이 없다”고 비판했고,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는 것이 과연 정치쇄신에 적합한지 의문”이라며 “공천 투명성을 제대로 확보 못하면 나눠먹기식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분권화, 정당개혁, 참정권 확대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향적”이라면서도 “단순한 비례대표 확대를 넘어 독일식 선거제도의 도입, 거대정당 위주의 원내교섭단체 해체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조성대 한림대 교수는 “87년 체제 이후 민주화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정당과 국회를 개혁하겠다는 의미에서 방향성과 적합성이 있고 구체적인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면서도 “다수당인 새누리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좀 더 넓은 의미의 비판도 제기됐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정치쇄신 공약에 대해 “안철수 등장으로 기존 정치권이 부라부라 구색 맞추기에 들어간 것”이라며 “(때문에) 안 전 후보의 주장과 내용면에서 차이점이 없다”고 말했다. 또 “기존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워낙 강해 기대치에 미흡하다”면서 “무엇보다 자기쇄신에 대한 의지가 담아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네거티브 공방과 정쟁이 심화되는 등 이번 대선에서도 구태정치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며 “새 정치를 위한 정치쇄신을 말하면서 실제는 국민의 정치 혐오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철수의 등장이 정치쇄신을 불러왔고, 그의 퇴장이 기존 정치로 하여금 빈자리를 채우게 했지만 국민적 불신은 여전히 제 자리라는 얘기다. 자기쇄신 없는 정치쇄신의 부담과 짐을 두 후보가 짊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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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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