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문재인·안철수 그리고 시대정신

입력 : 2012-12-05 오후 5:25:46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안철수가 판을 잘못 읽고 있다. 감정에 치우쳐 대의를 그르치고 있다. 민주당과는 이미 신경전의 도를 넘었다. 문재인과 한 몸이 됐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하다. 한없이 치솟는 몸값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야권과 시민사회 민주진보 진영 전체가 오매불망 안철수만을 바라보니 그럴 법도 하다. 후보직은 사퇴했어도 후보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안철수의 판이다.
 
수 싸움 측면으로만 본다면 문재인이 져도 안철수의 공간은 열린다. 필연적으로 친노를 향한 퇴장 주장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잠복해 있던 당내 계파 갈등을 폭발시키는 단초가 된다. 미래권력의 빈자리는 새누리당의 권력투쟁과 분화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 안철수는 외곽에서 깃발만 들고 서 있으면 된다. 대선 이후 불어 닥칠 후폭풍 속에서 자연스레 튕겨져 나오는 이들이 안철수를 중심으로 제3지대를 형성하게 된다. 정계개편인 것이다. 견고했던 대중적 지지가 더해지면 세력화는 시간문제다.
 
바둑에서 경영을 배웠던 그가 바둑의 수를 정치에서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정치에서 자진 낙마의 고배까지 마셔가며 세력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그가 그린 밑그림이라면 훌륭하다. 중도보수와 중도진보를 아우르는 탈이념으로 새 정치를 열겠다는 생각일 수 있다. 이분법적 이념 대립에 진저리를 떨어야만 했던 대중의 기대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대중은 또 다시 새로운 요구를 하며 그를 압박한다. 갈기갈기 찢겨져 대립하는 제 요구를 수용만 하다가는 정치의 조정 기능이 실종되고 만다. 철학과 이념과 가치가 중요한 까닭이다.
 
잊은 사실이 또 있다. 전략싸움의 장으로 전락하기에는 이번 대선이 너무도 중요하다. 박정희가 무덤 속에서 뛰쳐나와 2012년 대한민국을 활보하고 있다. 광주를 총칼로 짓밟았던 전두환도 부활했다. 나라를 빚더미에 올린 김영삼 또한 국가원로 이름으로 박근혜와 마주했다. 이내 이승만마저 살아 움직일 태세다. 역사의 퇴행은 숱한 피와 눈물로 이룩한 민주화의 시계바늘을 되돌릴 수도 있다. 반면 노무현은 다시 무덤에서 꺼내져 처참하게 부관참시 되고 있다. 노무현이 평가대가 아닌 심판대에 오르는 사이 이명박은 잊혀졌다. 노무현의 죽음 앞에 명박산성으로 시민들의 울분을 가뒀던 그다. 유신과 독재의 망령이 박근혜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안철수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묵묵부답 속에 '실망', '불신', '차이' 등의 갈등적 단어만 흘러나오고 있다. 그가 문재인에게 느꼈다는 소회다. 개인적 아픔마저 지우라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나라를 맡겠다고 나왔던 그라면 최소한의 역사인식과 대의는 있어야 한다. 고인이 된 김근태 영정 앞에서 다짐했던 울분과 미안함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그가 11월23일 눈물로 사퇴회견을 가질 때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안철수를 묻었던 시민들이다. 믿지 못해 미안했다며 한없는 죄스러움을 각인시키며 다음에는 당신과 함께 하겠노라 다짐했던 시민들이었다. 이들의 열정과 애정이 오롯이 안철수를 통해 2011년에 이어 2012년마저 바꾸려 하고 있다. 안철수가 움직여야만 하는 이유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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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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