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보험사기②)보험금 면책기간이 '자살사기' 부추긴다

보험 가입 2년 안에 자살하면 보험금 지급 안해
3년 후부터 자살 급증..한해 자살보험금 2000억원

입력 : 2012-12-24 오전 9:26:38
[뉴스토마토 이지영기자]  # 영화 '수상한 고객들'은 자살로 인한 보험사기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 병우는 보험왕이 되기 위해 자살시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 생명보험 가입을 적극 권유한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소녀가장, 틱 장애를 앓고 있는 노숙인, 자식 4명을 거느린 과부 등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형편에도 미래의 가족들의 생계를 지켜주기 위해 생명보험에 가입한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병우는 자살방조죄로 고소를 당한다. 병우가 가입시켰던 고객 중 한명이 지하철에 몸을 내던져 숨졌기 때문. 빚쟁이들에게 쫓기던 고객은 병우를 찾아가 확실한 자살법에 대한 질문을 했고, 병우는 그 고객에게 '지하철에 뛰어드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 고객은 병우와 헤어지고 집에가는 길에 지하철에 뛰어 들어 가족들의 생계를 지켜줬다. 불안해진 병우는 그 동안 가입시켰던 고객들을 수소문해보지만, 모두 하나같이 2년의 보험 면책기간이 지나기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이들의 사연을 보면 우리사회에 만연한 보험사기의 일면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나올 정도로 자살율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1만5413명으로 10만명당 자살 사망률이 31명에 달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1위다.
 
특히 생명보험에 가입했다가 면책기간이 지난 2년 뒤에 자살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00~2005년 생명보험(이하 생보) 가입자의 자살을 면책 기간 전후로 비교한 결과 매년 차이가 벌어졌으며 특히 가입 시점 2년 후 자살하는 사람이 크게 증가했다.
 
 
면책기간 내 생보 가입자의 자살률은 2000년 1.39%였으며 면책이 끝난 2년 뒤에는 2.54%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면책 기간 내 자살률은 ▲2001년 1.37% ▲2002년 1.03% ▲2003년 0.72% ▲2004년 0.7%로 낮아졌다.
 
그러나 면책 기간 이후 자살률은 ▲2001년 3.24% ▲2003년 4.16% ▲2004년 4.61% ▲2005년 5.04%로 매년 높아졌다.
 
즉 면책기간 내 생보 가입자의 자살률은 2000년 1.39%에서 2004년에는 0.7%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 반면 보험 가입 후 면책기간인 2년이 지난 생보 가입자의 자살률은 2000년 2.54%에서 2005년 5.04%로 급증했다.
 
생명보험 표준약관에 따라 생보사는 보험 가입자가 가입 후 2년 안에 자살하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보험 가입 후 2년이 지나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현행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자살하는 가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명보험의 자살 면책 조항은 목숨을 담보로 보험금을 받으려는 자살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지만 면책기간이 2년밖에 안 돼 자살을 막는 효과보다 오히려 자살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화 '수상한 고객들'의 내용처럼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보험금이 가족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인 것이다.
 
실제 생명보험사들의 자살보험금 지급액도 엄청나다.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등 대형 3개 생보사의 자살보험금 지급액은 2008회계연도 770억원에서 2010회계연도 엔 1088억원으로 41%나 급증했다.
 
생보업계전체적으로 보면 자살보험금으로 한해 20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이 지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한화생명에서 발표한 보험 가입자 사망통계에 따르면 2009년 사망 원인 8위에 그쳤던 자살이 지난해에는 2위로 암을 제외하고 가장 많았다.
 
현재 보험사는 보험가입 후 2년 이내 자살시에는 납입한 보험료 또는 해지환급금를 지급하고 2년 이후부터는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자살로 인한 보험사기를 차단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바로 자살보험금 지급 무보장 기간(면책 기간)을 현행 2년에서 그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면책기간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이후 기간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자살 시 보험금을 주지 않는 것도 함께 고려 중이다.
 
보험연구원 역시 생명보험 계약건을 보면 자연사망률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자살률은 3~4년차에 급격히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자살이 면책기간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어필하며 현행법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면책기간 조항이 생긴 이후 자살률이 급격하게 늘어났다"며 "자살보험금 면책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할 경우 급속도로 늘어나는 자살률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살예방법을 만들고 각종 자살예방사업이 국가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건 자살예방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자살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보험사기 개선방안에 대해 시민단체를 비롯한  보험가입자들이 ‘편의주의적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강력하게 반박하고 있어 상법개정안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다.
 
보험사의 인수·지급 심사 강화는 외면한 채 보험가입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에서는 보험사기와 자살의 인과 관계와 연관성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면책 기간 연장은 소비자의 보장만 취약하게 만드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단체는 "보험금수취를 목적으로 한 자살은 당연히 방지해야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장이 자살했을 경우 남은 가족에 대한 생활보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살과 보험사기와의 상관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살면책 기간을 연장하는 건 자살예방 효과도 없을 뿐더러 유족의 생활만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금융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자살면책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은 보험사기를 빌미로 소비자에게 보험금지급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며 "피보험자가 사망할 경우 유족의 생활만큼은 보장해주는 게 생명보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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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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