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올해 세계 IT업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끌었던 이슈는 단연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쟁'이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두 회사의 날선 공방은 실상 모바일 운영체제(OS)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구글과 애플의 대리전 양상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양사 특허전의 전선이 전 세계로 확대됨에 따라 이제는 단순한 OS 경쟁을 초월해 다국적 기업들과 미국, 유럽연합(EU) 등을 비롯한 각국 법원, 특허청, 무역기구들의 각축전으로 비화되며 갈수록 해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있다.
현재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특허전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전자다. 올해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등극하게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애플과의 특허전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삼성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32.5%를 차지하며 애플을 더블스코어로 압도했다.
애플이 지난해 4월 최초로 삼성에게 디자인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던 당시만 상기해도 애플은 시장점유율, 브랜드 파워 등 모든 부문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기의 소송'으로 세계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캘리포니아 본안소송 이후 삼성전자는 애플과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 유일한 경쟁자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갤럭시 시리즈'의 대성공도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양사 특허소송이 본안소송으로 확대될 무렵, 삼성은 갤럭시S3를 출시해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30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후속작인 갤럭시노트2도 호평 속에서 순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이제는 완연히 '애플의 유일한 경쟁자'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물론 이번 특허소송의 결과가 삼성전자에게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특허소송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노키아 등 다른 공룡기업을 비롯해 EU 집행위원회, 미국 상무부와 국제무역위원회(ITC) 등 각국의 무역 및 특허권 관련 기관들이 상반된 이해관계를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어느 한 쪽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美 법원, 삼성전자에 판정승 내릴까?
양사의 미국 내 소송을 담당하는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방법원 새너제이 지원의 루시 고 판사는 이달 초부터 최종 심리를 시작했다. 이번 최종 심리는 '세기의 소송'으로 불린 특허 본안소송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지난 8월 본안소송 평결에서 배심원단은 삼성이 애플에게 약 10억5000만달러(한화 약 1조1400억원 수준)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최종심리가 진행 중인 현재 루시 고 판사가 배상액의 계산이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조정을 명령해, 최종금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또 애플의 숙원이나 다름없던 삼성 제품의 미국 내 판매금지 가처분이 기각되면서 삼성의 판정승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 진행 중인 특허공방 발단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애플은 미국 법원에 삼성이 자사의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질세라 삼성도 한국과 일본, 독일, 미국 등 9개 국가의 법원에 통신특허를 무기로 맞소송을 제기했다.
특허소송 초반까지만 해도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수준의 범위로 제한됐던 소송은 양사의 기 싸움이 고조되면서 부품 및 제조 기술 외 서비스 관련 특허로까지 확대됐다. 가장 최근에는 삼성이 애플의 영상통화 서비스인 페이스타임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미국 법원에 추가 제소하기도 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미국의 배심원 평결에서는 일단 애플이 우위를 점했지만 삼성은 한국 외에도 영국과 독일에서 애플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이 나왔다는 점을 근거로 양사의 특허 독점권에 대한 국가별 법원 해석은 다를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애플의 상용 특허 2건이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무효 판정을 받아 삼성전자가 배심원단으로부터 받은 특허 침해 및 배상 평결이 일부 무력화될 가능성도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혁신을 장려하려는 특허제도의 본 뜻과는 달리 이를 앞세운 새로운 형태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두 회사의 법정 싸움은 최종판결이 내려질 내년 이후에도 항소에 항소를 거듭하며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삼성의 새로운 적은 EU?..반독점법 최대변수로 부각
한편 삼성은 주요 시장 중 하나인 유럽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최근 EU집행위원회가 올초부터 삼성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지속적인 수사의지를 나타내며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EU는 삼성이 3세대 통신 기술과 관련된 표준특허권을 남용하지 않았는지 수사 중이다.
'표준 특허'는 세계 모든 통신 관련 제조·서비스 회사가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기술을 말한다. 세계 공통 기술인 만큼 특허권자는 이 기술을 다른 업체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삼성은 이같은 표준특허를 무기로 유럽 각지에서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다가 지난 18일 기존에 유럽 법원들에 제출한 애플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취하했다. 삼성 측은 '공정한 시장경쟁을 만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점점 수위를 높여오는 EU의 수사를 무마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라는 게 업계 전반의 분석이었다.
◇벨기에 브뤠셀에 위치한 유럽연합(EU) 본부.
EU는 삼성의 이같은 결정에 환영의 입장을 나타냈지만 계속해서 수사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삼성이 필수 표준 특허를 남용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 관련 매출의 연 10%를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또 현재 9개국 이상에서 진행 중인 애플과의 특허 소송에서 직격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무선 통신 기술 특허를 무기로 애플의 디자인 특허 공세에 맞서왔던 삼성의 특허 전략의 무력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로서 삼성이 꺼내들 수 있는 대응 카드는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이 특허소송과 관련해 점점 긴장감이 역력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허 법률 전문가들은 EU의 조사 착수 배경에는 EU 자국 기업 보호라는 명분과 특허권자에 깐깐한 EU 특유의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며 삼성에 불리하게 전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