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경기부양책으로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 들면서 환율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너도나도 환율을 낮추기 위해 돈을 찍어대면 물가가 급등하거나 경제에 거품이 낄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떨어지면 자국의 수출은 개선되나 다른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 또한 문제로 꼽힌다.
이 때문에 제43차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다보스포럼)는 환율 논쟁장으로 변한 가운데 내년 무제한 양적완화를 시행하기로 결정한 일본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24일(현시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다보스 포럼에 모인 악셀 베버 UBS 은행장을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은 BOJ의 양적완화 조치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중앙은행(BOJ)의 금융정책으로 엔화값이 떨어져 일본 기업들은 이득을 보겠지만, 경쟁국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두달간 달러대비 엔화값은 7% 하락했다. 엔화가 1% 하락하면 수출주력 기업인 도요타와 닛산의 경우 각각 연간 350억엔, 200억엔의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발생한다.
◇日, 무제한 양적완화..환율전쟁 점화할 수도
전 독일연방은행 총재인 악셀 베버 UBS 은행장은 전일 BOJ가 결정한 강력한 양적완화 조치를 예로 들면서 "세계 중앙은행들이 위험 단계로 진입하는 중"이라고 강력하게 성토했다.
여기에 '닥터둠'으로 불리는 월스트리트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까지 가세해 "중앙은행들이 계속 돈을 풀 경우 과거 보다 더 심각한 거품경제가 초래될 것"이라며 "양적완화에만 의지하면 재정개혁은 요원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회의장 밖에서는 중국·영국·독일 등의 정·재계 인사들이 일본의 금융정책이 환율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머빈 킹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여러 국가가 자국 통화를 낮추려 한다면 그에 따르는 국가 간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국영 통신사인 신화통신사 관계자도 "돈을 더 찍어내기로 한 BOJ의 결정은 환율 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일본의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며 "그러나 아베 정부가 출구전략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양적완화 효과는 단기간에 그치고 부채는 심각하게 쌓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연방은행 총재는 "일본의 신정부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며 "이는 환율에 정치가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일본의 금융정책에 우려감을 나타냈다.
◇글로벌 환율전쟁 유발은 '과대 걱정'
이런 가운데 환율논쟁을 촉발한 일본은 BOJ의 금융정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타케히코 나카오 일본 재무차관은 "BOJ의 조치는 고질병인 디플레이션(경제활동 침체)을 해결하기 위함"이라며 "통화가치를 경쟁국보다 떨어뜨리려 한다는 비판은 잘못된 것"이라고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정·경제재생 담당상은 "유로존 내 고정환율로 이득을 본 독일은 일본을 비난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독일에 역공을 가했다.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는 "정책 입안자들이 물가상승과 양적완화에 따르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잘 제어하고 있다"며 "중앙은행 또한 이 문제들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BOJ의 조치를 간접적으로 옹호한 것이다.
◇선진국 양적완화에 개도국·EU '몸살'
선진국들이 환율을 놓고 아웅다웅하는 사이 콜롬비아 재무장관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중재를 요청했다.
모리치오 카르데나스 콜롬비아 재무장관은 이날 다보스포럼 장에서 "WTO는 반드시 국제적인 환율전쟁과 보호무역주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콜롬비아는 무역에서 본 손해를 만회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양적완화 여파로 라틴 아메리카 통화가 강세로 돌아설 수 있다"며 "선진국들은 양적완화로 자국의 경기를 부양하지만 반대로 신흥국들에는 매우 큰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 투자자들이 4.8%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콜롬비아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페소화가 강세로 전환되면 수출에 불리해질 뿐 아니라 훗날 외국 자본이 대거 이탈하면 콜롬비아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콜롬비아 중앙은행은 달러를 사들이는 전략을 통해 페소화 가치를 떨어뜨릴 계획이다.
유로존 당국자들도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엔화가 풀리면서 유로화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달러대비 유로화는 지난해 7월보다 10.83% 뛰었다.
때문에 다음달 ECB 정례회의와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유로화 가치 문제를 의제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조지소로스 헤지펀드 투자자는 이날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환율 변동폭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주요국들이 마찰을 피하기 위한 합의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