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회공헌의 진실)공유가치 창출 없는 홍보용 연례행사 추락

(특별기획)②업(業)과의 연관성 낮고 천편일률적
사회공헌활동=홍보(?).."기업 인식 개선돼야"

입력 : 2013-02-04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10대 그룹사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아직도 천편일률적인 '1990년대식' 문화를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은 회사가 보유한 기술력, 노하우 등을 활용해 사회적 기업으로 걸음을 뗀 반면 여전히 대다수의 대기업들은 '홍보를 위한 도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재계에서도 기업이 이윤창출이라는 고유의 목적뿐 아니라 이윤·가치 창출에 많은 무게를 싣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국내 10대 그룹사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여전히 '1차원적'이라는 평가도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10대그룹 중 상당수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을 단순한 '이미지 마케팅'의 일종으로만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겨울이 되면 기업들이 약속이나 한 듯 '연탄 나르기', '구세군 자원봉사', '독거노인 지원' 등의 이벤트를 획일적으로 선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자사의 강점, 전문영역을 활용한 사회공헌 활동을 연구할만한 자본이나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에 투입되는 자금을 회수불가능한 비용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상황들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기업들이 사회복지에 편향된 일률적인 사회공헌 활동이 아닌 해당 기업의 발전과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그리고 공유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활동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치·업종과 관계없는 '천편일률' 사회활동
 
우선 국내 최대의 정유사 GS칼텍스를 거느리고 있는 GS그룹의 경우 환경오염, 그 중에서도 해양 오염과 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돼 있다. 실제로 GS칼텍스는 지난 1995년 두 차례에 걸친 기름 유출 사고와 이에 대한 은폐 시도 등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물론 10년 후인 2005년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정부로부터 환경공로자로 선정되면서 일부 이미지 개선에 일부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GS칼텍스 공식 웹사이트에는 환경경영체계를 설명한 내용이 한 페이지짜리 자료가 전부일 뿐, 구체적인 활동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체적으로 정화활동봉사대, 바다살리기 등의 공헌활동을 진행 중이지만 이는 시민단체 및 환경단체 등 비영리기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보다도 규모가 적다.
 
GS칼텍스는 어린이 글쓰기 대회, 난민 돕기 등을 중심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 환경부문 사회공헌활동에서는 석유에서 기인한 오염을 책임지는 활동보다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수준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는 정유 업계가 아닌 기업들도 할 수 있는 활동이다. 
 
GS칼텍스는 올해 신규 사업과 설비 확충을 위해 예년과 비슷한 수준인 약 9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에너지힐링 사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이나 예산 등을 발표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재계 10위 그룹인 한화 역시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한화는 업종과의 연관성이 짙거나 시민들이나 지역사회가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활동들보다는 사내 경영이념에 부합하는 활동들을 위주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한화는 '혼자 멀리가 아닌 함께 같이'의 경영이념을 살리기 위해 임직원 참여형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사회공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정작 진행하고 있는 활동들은 저소득층 자녀들의 장학금 지원이나 집수리 봉사활동, 공부방 지원 사업 등 일반적인 활동들이다.
 
한화의 대표적 계열사인 한화케미칼은 과학 원리 체험학습인 ‘주니어 공학교실’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정작 대기·수질오염과 관련된 환경보호 활동에는 소극적인 편이라는 지적이다.
 
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는 지난 10일 지속가능경영 선포식을 갖고 "환경을 지키는 성장과 협력업체와 상생하는 발전 등 기업시민으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이를 성장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활동 계획에 대해서는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내실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라며 “특히 소년소녀가장,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등 사회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것이 전부다. 여전히 업(業)과의 연관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통 재벌에게 ‘사회공헌활동=홍보’..금액도 최저수준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마케팅에 나서야 하는 유통 업종에서는 특히 '사회적 책임'이 강조된다. 또 지역 상권에 침투해 영업 실적을 올려야 하는 마트, 백화점 등은 그만큼 해당 지역에서의 기여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사회공헌과 관련한 투자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
 
지난해 '골목 상권' 논란을 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생계형 서민업종에서 가장 많은 계열사를 보유하는 등 논란의 대상이었던 롯데그룹은 사회공헌 비용으로 500억원대를 사용하고 있다. 불과 전체 매출의 0.07% 수준이다. 게다가 500억원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이나 근거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앞서 골목 상권 논란으로 떠들썩한 지난해 7월에는 골목상권살리기 소비자연맹 등 전국 80여개 소상공인, 소비자단체가 롯데그룹의 모든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돌입했다.
 
소비자단체가 내세운 불매운동의 이유는 다양했다. ▲대형마트와 SSM의 의무휴업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점 ▲농수산물 매출 비중이 51%를 넘으면 예외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롯데마트의 대대적인 농산물 판촉 행사 등을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롯데그룹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명성관리 TF팀'을 창설해 대응에 나섰다.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기존의 홍보실 역할을 강화한 일종의 '별동대'를 신설한 것이다. 명성관리팀은 홍보 업무를 비롯해 CSR 활동까지 아우르는 조직이다. 롯데가 사회공헌활동을 단순히 '홍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삼성-현대차 “우린 달라”..기업의 전문영역 살린 공헌활동
 
그러나 일부 CSR 선진 기업들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한 일회성 기여가 아니라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국내 일부 기업들 중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관측된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최근 화성사업장에서의 불산 누출 사고로 인해 온갖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지만 전자기기 제조업체의 강점을 활용한 사회공헌활동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왔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구마우스, 삼성이 자랑하는 시스템LSI를 활용해 제작한 시각장애인용 자전거 등 특유의 개발·제조 능력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교육·경제적 양극화 문제에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재계 1위 기업‘의 의무를 받아들여 대표적인 교육 기부 프로그램 '드림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삼성전자 소속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하드웨어 전문가 등 5명은 장애인용 안구마우스 '아이캔'(eyeCan)을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이 제품에 대한 모든 권한을 장애인개발원에 이전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국내 대표적 자동차 제조사이자 자산규모가 두 번째로 큰 현대차도 업(業)과의 연관성을 살린 사회공헌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4년부터 저소득 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와 의족 등의 보장구 구입비용 지원을 해왔고, 2005년부터는 휠체어 슬로프와 회전시트 등을 장착한 ‘이지무브’ 차량을 개발해 보급해왔다.
 
또 교통안전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지난 2008년부터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과 스쿨버스에 승하차 보호기를 달아주는 캠페인 등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기업들, 공유가치 창출 개념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개별 기업이 사회공헌을 위해 투자하는 비용이나 기부금, 자선활동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업과 사회의 '관계'다.
 
국민과 사회가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관계성'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연례 행사나 시혜성 혹은 보여주기 위한 수준에 그치는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지속적인 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창출의 부재에 대한 지적이다.
 
임태형 한국사회공헌정보센터 소장은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 자체를 일종의 회수 불가능한 비용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활동도 소년소녀 가장, 다문화 가정 지원 등의 사회복지 쪽에만 편향돼 있었다"며 "최근에는 일부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공유가치창출'의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활동의 규모와 범위 등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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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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