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기자]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BOJ) 총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조기에 자리를 떠난다.
6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시라카와 총재는 "오는 3월19일 총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는 시라카와 총재의 5년 임기가 끝나는 4월8일보다 3주 앞선 것으로 야마구치 히로히데 부총재와 니시무라 키요히코 부총재의 임기가 끝나는 날이다.
시라카와 총재는 일본 금융권에 대한 안정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20년 넘게 이어진 디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를 조기에 마무리 짓게 됐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BOJ총재
시라카와 총재는 "정부로부터 어떠한 압력도 없었다"며 "차기 총재가 부총재들과 함께 취임 선서를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통화 정책에 대해 아베 신조 총리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시라카와 총재가 임기를 채우기보다는 두 명의 부총재와 함께 물러나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오바타 스이치 노무라증권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시라카와 총재가 아베 내각에 백기 투항을 한 것"이라며 "그는 줄곧 디플레 극복에 중앙은행도 책임이 있다는 시각을 공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시라카와의 사임이 차기 총재에게 업무 인계를 순조롭게 하기 위함일 뿐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코다마 유이치 메이지야스다 생명보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시라카와 총재는 감정적인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날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엔低 가속화..달러 당 93엔 돌파
시라카와 총재의 조기 사임 소식이 전해진 후 엔화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BOJ가 일본 정부의 요구대로 보다 강력한 통화 완화책을 사용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카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엔화 환율은 일본 정부와 BOJ가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해 얼마나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며 "일시적인 조정을 거칠 뿐 엔화 약세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러·엔 환율 차트 (출처: 블룸버그)
6일 오후 1시36분 현재 달러·엔 환율은 전날보다 0.73% 오른 93.83엔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세 달 동안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약 17% 평가 절하됐다.
후쿠나가 아키토 RBS증권 수석투자전략가는 "시라카와의 사임은 통화 완화 기조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카노 타츠시 미츠비시UFJ 모건스탠리증권 선임 이코노미스트도 "신임 총재는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총재 인선이 앞당겨지는 만큼 정책적 보조도 더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신들도 "시라카와의 조기 퇴진은 BOJ의 양적완화 시기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며 "보다 빠른 경제 회복을 위해 신임 총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행동에 옮길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12월 중의원 선거를 자민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이끌며 총리에 취임한 아베는 줄곧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1%에서 2%로 상향 조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 보다 강력한 통화완화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에 시라카와 총재는 "디플레이션 극복이 통화완화 정책에만 의존해서는 되지 않는다"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BOJ는 결국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두 달 연속 양적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BOJ는 12월 자산 매입 프로그램의 규모를 10조엔 증액한 101조엔으로 늘렸으며 지난달에는 2014년부터 매월 13조엔의 무기한 자산매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작년 2월부터 1%로 유지해오던 물가 목표치 역시 지난달 2%로 상향 조정했다.
다만 시장은 무제한적 자산매입 시행까지 공백이 존재한다는 점에 실망감을 표하며 더 많은 정책이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의 급격한 엔저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에도 당당히 맞섰다.
BOJ의 통화 완화는 디플레이션 극복이 목표일 뿐 환율 조정 의도는 없다는 설명이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성 차관은 지난달 23일 "엔화 환율이 달러 당 100엔까지 오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환율은 시장의 원리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내각, 차기 인선 박차..쿠로다 ADB총재 유력
아베 정부는 발빠르게 차기 BOJ 총재 내정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
카노 마사아키 JP모건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차기 총재를 인선하는 것이 현재 아베 내각에 주어진 최우선 과제"라고 진단했다.
아마리 아키라 경제상 역시 시라카와 총재의 사임 소식이 전해진 후 "일정에 차질이 없게 차기 총재 인선을 진행할 것"이라며 "의회에서도 조속한 승인을 바란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줄곧 자신과 같은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차기 BOJ 총재 자리에 앉힐 것이라고 공언했다.
경기 부양에 적극적인 비둘기파 인사를 차기 총재로 내정해 정부와 중앙은행의 공조를 늘려가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중의원 본회의에서는 "차기 BOJ 총재와 부총재는 낙하산이든 내부 인사든 출신을 불문하고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해 확고한 결의와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인선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은행법을 개정해 중앙은행 총재 해임안을 총리가 갖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도 했다.
이에 따라 쿠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밖에 이와타 키쿠로 BOJ 정책 자문위원, 무토 토시로 전 재무상 등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다만 현재 참의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BOJ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차기 총재 임명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