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의 뜨거운 감자는 엔화 약세다. 일본 아베 정권의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한 금융완화가 글로벌 환율전쟁을 촉발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가장 격한 반응을 쏟아내는 곳은 자동차 산업을 주축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독일 등으로 환율 전쟁이 자동차산업 전쟁이 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베노믹스' 이후 엔저 가속화..주요국 '발끈'
8일 일본 도쿄(東京)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환율은 93.55엔에 거래되고 있다. 엔화 환율은 전일 장중 한때 94엔대로 상승해 2010년 5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기도 했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말 수출기업의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선 엔화 환율이 90엔은 되어야 한다고 공언한 이후 엔화 환율은 75엔대에서 93엔대로 치솟았다.
그 만큼 엔화 가치가 하락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본 정책 당국자들은 엔화 가치의 적정 수준을 95엔~100엔대로 보고 있어 당분간 엔화약세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흐름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나라는 GM과 크라이슬러, 포드가 있는 미국과 폭스바겐, BMW, 벤츠의 본사가 위치한 독일이다.
제임스 블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일본이 이웃나라를 거지로 만들고 있다”며 일침을 가했다.
미국 자동차정책위원회(AAPC)도 지난 18일 "일본 자민당은 교역 상대국의 희생을 대가로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엔저 정책을 쓰고 있다“며 오바마 행정부는 엔화 약세를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낼 것“을 촉구했다.
BMW와 폭스바겐의 본사가 위치해있는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도 “일본 신정부의 정책을 매우 우려한다“며 일본을 2차 환율전쟁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는 “일본의 엔저정책에 따른 환율 경쟁이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으며 이웃나라 영국의 머빈킹 영란은행 총재도 "선진국의 통화가치 절하가 잇따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엔화 약세에 신이 난 일본車, 韓·美·獨은 '울상'
주요국들이 이러한 반응을 내놓은 이유는 자동차 산업이 워낙 환율에 민감한 데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주요국 자동차 기업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이 1엔 상승할 때 토요타의 연간 영업이익은 350억엔(약 4108억원), 닛산은 200억엔(2400억원)정도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7일 도요타가 예상을 밑도는 분기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2012 회계연도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10% 가까이 상향 조정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반면, 미국과 독일, 한국 등 자동차 업계는 울상이다. 한 외신은 증권사 보고서를 인용해 원화값이 10원 오르면 영업이익이
현대차(005380)는 1.5%,
기아차(000270)는 2.4% 악화된다고 전했다.
지난해 4분기 현대차의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12%감소하고, 기아차의 영업이익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에 대해 환율이 변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가까스로 회복한 美자동차, 엔저에 시장 뺏길까 '조마조마'
위기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일본 자동차들이 엔저 정책을 등에 업고 적극적으로 공략할경우 일본 브랜드에게 미국 시장을 잠식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오토모티브 뉴스데이터 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빅3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44.8%로 전년보다 2.3%포인트 줄었지만,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빅3의 점유율은 32.1%로 2%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작년 미국에서 늘어난 자동차 판매 대수 171만대 중 48%가 일본계 자동차 회사인 만큼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일본 자동차 기업을 경계할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연간 판매량 세계 1위를 탈환한 토요타를 필두로 닛산과 혼다 등의 강력한 가격 공세가 예상된다”며 “일본을 제외한 여타 글로벌 브랜드들이 올해에는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매트 블런트 미국 APPC협회 회장도"정부는 엔화 약세가 미국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체 경쟁력과 고용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공정한 경쟁여건이 조성되기 전까지 일본차 시장의 무분별한 확대를 제한해야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