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는 중남미 서민에게 양식, 교육 그리고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 영웅이었지만, 반대세력에게는 국가자원을 외국지원에 낭비하고 자본가와 반대여론을 탄압한 독재자였다.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는 지난 6일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차베스를 라틴아메리카 연합의 주인공이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변화의 희망을 제시한 동지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차베스의 사상은 앞으로도 사회정의 및 공정한 부의 재분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토론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은 차베스의 사회주의 환상이 오랫동안 베네수엘라를 괴롭힐 것이며, 차기 정권은 체제유지를 위해 차베스 본인보다 더 심한 차베스주의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라가 더 큰 어려움에 빠져야만 비로소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집권 초기 차베스는 아직 신자유주의에 대한 실험이 끝나지 않은 남미대륙에서 케케묵은 사회주의를 부르짖던 카리브 해안의 외톨이였다.
하지만 서서히 지역 국가들(특히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과 공감대를 형성해 가면서 2005년 미국이 추구하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좌절시켰을 뿐만 아니라 남미연합(UNASUR), 남미은행,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해 공동체(CELAC) 및 볼리바르연맹(ALBA)을 창설하는 쾌거도 이루었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치솟는 원유가격의 도움을 받은 차베스의 ‘오일머니’였다. 실제로 차베스는 특히 빼뜨로까리베라고 불리는 쿠바 및 16개의 동맹국(에콰도르, 볼리비아, 쿠바, 나카라과 및 카리브 국가들)에 매일 24만3500배럴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오일을 헐값에, 때로는 물물교환 조건으로, 제공해 이들 국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성 없는 국가경영, 막대한 재원의 낭비 및 법제도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베네수엘라를 파탄지경에 이르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베네수엘라는 내수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휘발유가격을 14년 전 수준(1달러에 40리터)으로 유지하기 위해 1년에 140억달러를 국가보조금으로 지출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의 외화보유율은 고작 260억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4%에 이르며 외채는 1450억달러에 육박한다. 베네수엘라는 작년에 중국으로부터 사회기반시설(SOC)사업 및 작년 선거 자금조달을 위해 400억달러의 차관을 도입하기도 했다. 기타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국가경제의 96%가 석유수출에 의존하고 있는데 석유의 생산량은 지난 10년간 30%나 감소했다.
차베스의 서거가 단기적으로 중남미의 경제와 정치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다른 의미에서 변화의 시작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끄리스티나 끼츠네르와 에콰도르의 라파엘 꼬레아는 차베스를 대신할 정도로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도좌파 실리주의가 브라질, 페루, 우루과이 등의 나라에서 부상하고 있으며, 콜롬비아나 칠레와 같은 시장주의 국가들도 건실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새로운 변화가 진행된다면 언젠가 오일산업에 외국투자가 활성화되고 SOC 사업의 발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시해야 할 사항이 또 하나 있다. 미국에 대한 차베스의 맹렬한 비난에도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집권 중에도 미국과 꾸준히 무역을 해왔으며(미국은 자국 원유수요의 10%를 베네수엘라로부터 수입), 한국 기업들이 수주하기도 한 대규모 플랜트사업들을 발주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중남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1999년 차베스를 만난 콜롬비아의 문학가 가르시아마르께스는(1982년 노벨문학상수상) 차베스를 소멸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주의자 또는 환상가라고 평가했다. 과연 차베스가 표명한 '남미좌익사상'이 그의 죽음과 함께 소멸할 것인지 아니면 '에비타'로 상징되는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처럼 신화화돼 실제 정치에 존속하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