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운전 경로 문제로 다투다 갓길에 내린 대리운전기사를 술에 취한 차주가 차량으로 후진해 들이받아 사망케 한 사건에서, 살인의 고의성 여부를 두고 파기환송심까지 가는 법리공방 끝에 차주에게 살인죄가 인정됐다.
서울고법 형사합의8부(재판장 이규진)는 살인·특가법상 도주차량·음주운전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박씨를 법정구속했다고 1일 밝혔다. 이 판결은 검찰과 박씨 모두 재상고 하지 않아 확정됐다.
법원은 박모씨가 집을 가기 위해 운전을 시작했다면 전방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으므로 앞으로 가면 되는데도 굳이 고속도로 갓길에서 약 50m를 후진한 점, 승용차의 수동변속장치에서 실수로 후진 기어를 조작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후진으로 강하게 충격한 뒤에도 멈추지 않고 피해자를 향해 전진한 점 등을 들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 반드시 피해자를 살해할 목적이나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승용차로 피해자를 강하게 충격해 피해자가 승용차와 가드레일 사이에 끼이게 하려는 의도는 가지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하는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거나 예견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범행 당시 피고인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박씨는 지난 2010년 6월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던 대리운전기사 이모씨(당시 50세)와 수도권 외곽순환도로를 가던중 경로가 이상하다며 다투다 이씨에게 욕설과 폭행을 가했다. 이에 이씨가 경찰에 신고하고 갓길에 내리자 박씨는 자신의 차량에 올라타 후진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아 50m 가량 후진해 이씨를 들이받아 이씨가 사망했다. 이후 차량 두 대를 더 들이받고 도주한 박씨는 살인과 뺑소니, 음주운전 등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대법원은 "차주가 범행 당시 대리기사에게 충격을 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이 같은 행위로 그가 사망할 위험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거나 예견했으므로 살인죄가 인정된다"며 살인죄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지난해 11월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반면 1심과 2심은 박씨의 살해 혐의에 대해 "유죄 의심은 가지만 살해할 동기가 뚜렷하지 않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고, 음주운전과 뺑소니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각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