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한 집에서 동거하면서 이혼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부부에 대해서도 부부강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둘러싼 공개변론이 18일 대법원에서 열렸다.
대법원은 지금까지 부부관계가 파탄에 이르러 혼인관계를 더 지속할 의사가 없거나 이혼에 사실상 합의한 상황에서만 부부강간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해 왔다. 이번에 '함께 살아오던 정상적인 부부의 경우'에 부부강간죄를 인정하게 되면 대법원 첫 사례가 된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부부싸움을 하다 아내를 흉기를 위협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로 기소된 A씨(45) 사건을 공개변론으로 심리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01년 결혼한 아내와 잦은 불화를 겪던 중 밤늦게 귀가한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억지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1심은 "법률상 아내가 강간죄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 없고, 부부라도 폭행·협박 등으로 상대방을 억압해 강제로 성관계를 할 권리는 없다"며 A씨에 대해 징역 6년에 전자장치 부착명령 10년을 선고했다. 2심은 양형사유를 감안해 징역 3년6월로 감형했다.
◇변호인 "법률조항 변동 없이, 갑자기 죄가 될수 없어"
피고인측 대리인 신용석 변호사는 "대법원은 1970년에 실질적 부부관계에 있는 경우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 누구나 법률이 처벌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기본적 원칙"이라며 "처벌조항을 보는 것은 보통사람의 눈높이에서 이뤄져야 한다. 가족관계나 혼인관계는 혼인이나 성을 매개로 하는 특수한 관계지만 형법적 규율필요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려운 면도 있다. 대법원이 실질적 혼인관계를 요구한 판결한 것은 이러한 고민에 의한 합당한 판결이다. 지난 60년간 법률조항 변경이 없는데 갑자기 부부강간이 성립한다는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부강간이 인정되면 대부분의 이혼사건에서 '강간'이 주장될 것이고, 실제적 진실을 발견하는 게 어려워지게 된다"며 "부부강간죄가 인정될 경우 사법통계 수위를 강간죄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검찰 "강간죄 보호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부녀는 모든 '여자' 의미"
이에 대해 검찰측 이건리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부녀는 모든 여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한다. 강간죄 보호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이고 이것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말했다.
이어 "헌법상 보장되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수 없다. 강간죄는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라야 성립하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며 "가정유지의 필요성을 배우자의 강간성립을 부정하는 논거로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간의 수단으로 폭행협박이 이뤄지는 부부관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다. 처에 대한 강간죄를 인정할 경우 폭행 협박의 정도를 보통 강간죄와 달리 볼 것인지 살펴보면, 부부간은 신뢰관계가 있으므로 보통 강간죄보다 일반강간죄보다 약한 폭행협박을 요구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고 더 중한 폭행협박을 요구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부부관계에 따라 강간죄의 구성요건에서 폭행협박 정도가 달라질 수는 없다. 아내를 강간죄 객체에서 제외한다면 사회가 보호의무를 져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긍정설 수용은 가벌설 확장" vs "남성중심틀 벗어나야"
피고인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윤용규 강원대 법대 교수는 "이른바 '아내강간' 사안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대법원의 입장인 '신중한 부정설'이 타당하다. 형사책임 비난은 물론 교육과 개선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기존 대법원 해석기준을 변경할 필요가 없다. 긍정설을 수용하는건 가벌성을 확장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검찰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혜정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간죄는 보호법익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해야 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원치 않는 성교를 하지 않을 자유로,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근거한다"며 "형법이 제정될 때는 성적자기결정권과 함께 부녀의 정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런 정조개념은 잘못된 성의식에 의한 것이고 남성의 정조와 구별하는 이중적 사고에 의한 것이다. 강간죄 법호법익의 해석틀을 남성중심적으로 유지한다면 강간죄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게된다"고 지적했다.
◇ "폭력행사한 부부관계, 보호할 필요 없어" vs "해결방법이 형벌만은 아냐"
대법관이 검찰과 변호인 등에게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시간도 주어졌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부부는 동거의무가 있고 동거의무에 성적인 결합도 포함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부부간 은밀한 영역에서 행해지는 것이고 이런 부분은 가려내기가 어려운 면이 있어서다.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는데도 부부강간을 인정하면 강간죄가 과잉범죄가 되는 우려가 있다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검찰에게 물었고, 검찰은 "민법상 동거의무에는 폭력을 이용한 강간수인 의무가 없다. 높은 법정형에 대한 문제는 부부강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강간죄 객체에서 처를 제외하는 것은 오히려 문언상 처벌해야 하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처를 강간죄로 처벌하는건 처벌대상을 확장하는 게 아니다. 은밀히 행해지는 범죄까지 보호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처벌하지 않는 것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방임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박보영 대법관은 변호인에게 "이번 사건처럼 남편이 아내에게 심각한 폭력행위를 해 존엄성이 무시당한 경우까지도 형법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법익 보호기능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헌법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보장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물었고, 변호인은 "부부라고 해서 폭행이나 협박으로 성관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결방법이 형벌이 맨 먼저 나서는 것은 맞지 않다. 다른 수단이 안될때 형벌이 나서야 한다. 형벌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냐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고, 형법 개정으로 남녀가 객체가 됐는데 반대의 경우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경우도 마찬가지로 형법이 맨 먼저 나서야 하는가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폭행·협박 만으로도 이혼 가능" vs "별도의 대책 필요"
양 대밥관은 '부부강간죄'가 인정되면 이혼소송을 준비중인 아내가 형사사건을 통해 가사·민사사건에서 유리하게 활용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우려 만큼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혼을 원하는 부부가 있다면 강간 성립 이전에 폭행과 협박 만으로도 이혼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혼이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자료나 재산분할에서 유리하기 위해 악용될 소지가 있겠지만, 강간죄는 강압적인 성교에 불법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민사상 문제가 불거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부작용이라고 보는 시각이 오히려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아내강간' 사안은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단 거리가 먼 얘기가 될 수 있지만, 오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부부강간을 인정하지 말자'는 입장 등은 이런 행위를 허용하자는 게 아니다. 강간죄를 범한 가장에게 가정보호사건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을 하게 되는데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게 돼있다. 대법관께서 우려하시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다.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 "아내라는 이유로 폭력 허용되면 안돼" vs "형벌은 최후수단 돼야"
최후진술에서 검찰은 "부부간의 강간죄를 인정하자는 것이, 남편 모두를 강간으로 처벌하자는 논리는 아니다. 구성 요건에 폭행 협박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성관계를 강요한 모든 행위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부부사이의 반복된 폭력은 성폭력 타인에 대한 강간보다, 더 중한 폭력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의 아내라는 이유로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오늘날 우리사회는 응보형주의가 팽배해 있다. 형벌은 최후수단이 돼야 하는데도 장래를 제시하지 못하는 보복형이 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 이혼율이 높다. 우리가 국가를 만들어 살아가고 국가가 혼인관계 파탄을 막아야 할 의무도 있다. 부부강간의 현상이 존재한다고 해서 형벌이 부부침실에 들어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볼 수 없다"며 "국가정책 중 가장 맨 뒤에 서야 하는 것이 형벌이다. 대법원이 혼인파탄의 경우에만 부부강간죄를 인정한 것은 합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