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세계경기 침체로 인한 시황부진에 수천억원의 대규모 회사채 만기가 연이어 도래하면서 국내 해운업계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 날짜는 다가오고, 그렇다고 어디 가서 새로 돈을 꾸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사면초가라는 말이 관계자들로부터 절로 나오고 있는 실정.
◇시황부진에 대규모 회사채 상환 시기가 다가오면서 국내 해운업계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실적 부진은 올해에도 이어져 1분기 한진해운은 34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현대상선도 흑자전환이 힘들 것이란 게 대체적 전망이다.
2008년 이후 선박 과잉 공급과 물동량 감소로 인한 시황 부진이 계속되면서 국내 해운업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까지 2년 연속 내리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안전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해운업체들의 평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2010년 4.7%에서 2011년 -4.8%, 2012년 -3.8%로 역성장하고 있다.
(자료제공=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16%로 2010년 말(32%)과 비교해 절반으로 뚝 떨어졌고, 유동비율은 68%를 기록했다.
주요 업종별 예상부도확률(EDF)은 건설업(9.1%)에 이어 해운업이 8.5%로 가장 높았다. 조선업(5.9%), 자동차(3.2%), 철강(2.7%) 등 업황이 좋지 않은 다른 업종에 비해서도 확연히 높았다.
여기에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만 1조원이 넘는다. 당장 이달 한진해운이 2500억원(24일), 현대상선이 2000억원(14일)을 상환해야 한다.
시황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주요 해운업체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또 다른 빚을 내기도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현대상선은 지난 2월 회사채 신용등급이 A에서 A-로, STX팬오션은 BBB+에서 BBB-로 각각 하향 조정됐다. 앞서 지난해에는 한진해운이 A에서 A-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미 STX 사태를 지켜본 해운업계로서는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해운업계는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 2일 보유 중인 현대증권 우선주 503만7060주를 담보로 교환사채(EB)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최대 500억원 가량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날 한진해운도 30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공모로 발행키로 했다.
반면 근원적 처방 없는 단기적 조치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본질적으로 업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유동성 위기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며 “회사채 상환을 위해 유상증자나 다른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가치나 주가에 악영향을 미쳐 적합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최대 2조원 규모의 해양보증기금을 설립해 해운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자본금의 90%인 1조8000억원을 출연하고 나머지 10%(2000억원)는 선박금융에 참여하는 해운사가 부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