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감당하기 벅차지만, 가자!"
16대 총선에서 허태열 현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패배해 낙선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호철 참여정부 민정수석을 위로하며 건넨 말이다.
노무현재단은 16일 노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앞두고 한 편의 영상을 공개했다. 16대 총선 당일을 전후로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담긴 3일간을 기록한 미공개 다큐 '새로운 날들'이 그것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지역구인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허태열 비서실장과 맞붙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1만표가 넘는(17.5%p) 격차로 패배를 당한 것.
하지만 선거 전날 노 전 대통령의 얼굴엔 희망이 가득했다. 그는 유권자들을 만나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며 허리를 숙였다. 마지막 거리유세에선 쉬어버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부산갈메기'를 열창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어진 선거 당일의 모습. 출구조사는 허 비서실장의 당선을 예상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졌다. 결국 밤 11시가 넘으면서 당락이 갈렸다. 1990년 김영삼 대통령이 3당합당 결정을 따라가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이기에 낙선은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은 애써 괜찮은 표정으로 우는 자원봉사자들을 위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들 고생했다"며 "결과가 좋았으면 참 좋은데, 안 좋은 건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보다, 우리가 겪은 이런 거보다 더 참담한 일을 많이 겪으면서들 살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훨씬 더 참담한 일들 다 겪고 또 일어서고 그렇게 하는 게.."라며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허나 이내 노 전 대통령은 "제일 좋은 약이 시간"이라면서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은 시간이 약이다. 시간 만큼 확실한 게 없다. 시간 만큼 확실한 대책은 없다. 고생 좀 더 하고 갑시다"고 독려했다.
한 자원봉사자가 "다음 선거는 시험을 쳐가지고 하세요. 시험쳐서 하십시다. 이렇게 선거하지 마시고"라고 말하자 노 전 대통령은 씁쓸하게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이호철 수석과의 대화에선 "적어도 역사라는 건 비유가 안 되는 것 같다"며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또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도전을) 하겠지. 나는 정말 동서관계에 있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지위 때문에 우리가 극복해야 될 역사적 과정에 비추어서 하느님이 나한테 일을 좀 주는 줄 알았어. 여론조사 잘 나오고 할 때는. 그런데 하느님의 뜻이 다른가봐"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 다음날인 4월14일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선 "오늘 이런 결과를 낳은 것에 대해서 민심을 원망하고, 또 잘못된 선택이라는 데 대해서 분개하고, 그렇게 마음 상해하지 마시라"고 위로를 건넸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었다. 우리 인간의 역사가 수천년 내려오는 동안에 사람에 대한 적대감과 불신과 증오를 증폭시켜서 좋은 결과가 난 일이 없다. 저는 후회하지 않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고, 오늘 이 판단에 대해서 누구에게나 원망이나 증오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아울러 "민주주의라는 것이 생긴 이래로 어떻든 한 번 한 번 판단은 잘못되는 경우가 많아도 대중의 판단이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며 "한 순간의 승리가 모든 것은 아니다. 결코 헛일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고 격려했다.
이날 공개된 미공개 영상에선 노 전 대통령의 선대본 해단식 발언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16대 대선 당선의 원동력이 된 노사모의 태동 움직임이 나온다. 북강서을에서 낙선한 노 전 대통령에게 온라인에서 위로와 격려가 쇄도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바보라고 부르는 글도 보인다.
노무현재단은 "노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아 지난 2000년 부산 북강서을 제16대 총선 당시 촬영한 미공개 영상을 20분 분량으로 편집해 공개한다"며 "이번에 공개하는 영상에는 투표 전날인 4월12일부터 14일 선거사무실 해단식까지 노 대통령의 개인적인 면모를 밀착 촬영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또 "인간적인 실망과 회의 속에서도 '한 순간의 승리가 모든 것은 아니다'라며 다시 일어서는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제공=노무현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