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정부의 전력정책에서 공급수단이 중요하게 부각될 전망이다.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보듯 발전소를 짓고도 공급수단을 두고 정부와 지역주민이 갈등하고 있어서다.
주민 요구를 수용하며 차질 없이 전력을 공급할 대책 마련이 절실해보인다. 유사한 민원은 다시금 터져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제 민관 모두가 나서서 해결책을 마련할 시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밀양 지역주민이 송전탑을 반대하는 이유는 생존권 때문이다. 밀양을 지나는 송전선에는 765㎸의 초고압 전류가 흐른다. 그만큼 송전탑 주위에서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크다. 송전선과 탑에서 발산되는 전자파와 그에 따른 건강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재산권 문제도 있다. 현행 토지보상법에서는 구조물을 설치하는 면적에 대해서만 보상할 뿐 간접 피해가 생기는 면적은 보상하지 않게 됐다.
지난해에는 70대 이모씨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분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씨가 소유한 시가 9억원 상당의 논에 송전탑을 세우면서
한국전력(015760)이 지급한 보상은 공탁금 6000만원과 30년간 지상권을 양보한 대가로 준 680만원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송전탑 설치를 놓고 정부와 지역주민은 안정성이라는 원론적 문제부터 재산권 보장이라는 현실적 문제까지 다양한 현안에서 갈등 중이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민은 고압선을 공중으로 잇는 대신 땅에 묻는 지중화 방식을 요구했지만 한전은 공사기간이 길어지고 약 3조원의 비용이 든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21일 한국전기안전협회 관계자는 "현재 상용화된 지중화 기술은 500㎸급"이라며 "지중화는 단순히 송전선을 땅에 묻는 차원이 아니라 초고압의 전기를 땅속으로 통과시키는 것이라 송전탑을 세울 때보다 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보상 문제에 대해 송전탑이 들어설 지역에 매년 24억원을 지원하고 특수보상비로 125억원을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보상비 지급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와 기준이 없어 보상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9일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는 "한전은 선심 쓰는 보상안을 꺼냈는데 현실성 없는 보상안을 제안하느니 차라리 그 돈을 지중화에 쓰라"고 비판했다.
(사진제공=한국전력)
밀양 사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술적 대안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중화 문제가 가장 큰 논란인 만큼 이 부분만 합의하면 나머지는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력기술인협회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가장 나은 대안은 밀양의 일부 지역을 돌아서 송전선을 잇는 우회선로"라며 "송전탑 설치보다 약 700억원 정도 비용이 더 들지만 지중화보다 기술적으로는 더 쉽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대책위도 "현재 건설 중인 신양산~동부산, 신울산~신온산 송전선을 신고리원전과 연결하자"는 대안을 제시한 상태다. 이에 따라 한전이 우회선로 방안을 수용하면 지중화 부담을 줄이면서 밀양 주민과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전 역시 토지보상법 개정 등 보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직접적으로 땅값이 크게 떨어지지만 시가에 훨씬 못 미칠 만큼 보상을 받는다"며 "보상체계를 구체화하고 금액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현안을 인식하고 있다.
발전소나 송전탑이 들어설 지역주민의 이해도 필요하다. 이 관계자는 "좁은 국토면적 탓에 경남이나 전남, 강원도 등에 발전소를 짓고 여기서 전기를 끌어 오려면 송전선과 송전탑이 필수"라며 "지역주민의 대승적인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력기술인협회 관계자는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 구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와 지역주민이 갈등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해결방안을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밀양 송전탑 문제가 벌써 8년이나 끄는 동안 국민 세금만 낭비됐다"며 "발전소 건설과 송전탑 설치 등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해당 주민을 동참시켜 현안을 풀어가는 장기적인 에너지 공급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