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스토리)해외여행객에 '면세청탁'하는 한국인

입국장 면세점까지?..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입력 : 2013-05-28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는 분들이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특히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배아픔과 함께 부러움의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죠.
 
이런 분들은 주변 지인들의 부탁도 더러 받게 되는데요. 면세점에서 뭐 하나 사다 달라는 이른바 '면세청탁'입니다.
 
해외에 나갈 때에만 면세점에 들릴 수 있기 때문에 나가는 김에 평소 사고싶었던 물건을 세금 없이 싸게 사서 가져와 달라는 겁니다.
 
이런 면세청탁은 휴가철 해외여행객뿐만 아니라 해외 출장을 가는 직장인들에게서도 빈번히 접수가 되는데요.
 
최근에 유럽출장을 간 결혼 5년차인 김대리는 고가가방과 유명 해외브랜드 화장품을 사 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받았고, 평소 해외로 가는 친구들에게 면세품 구입부탁을 심심찮게 했던 미쓰최는 지난달 출장에서 친구들의 면세청탁 받아 심부름꾼이 되기로 했습니다. 주로 화장품과 핸드백 등이죠.
 
뿐만아닙니다. 골초로 유명한 이부장은 일본 출장을 가는 길에 면세점에 들러 담배 3보루를 구입한 후 비흡연자인 차대리와 박대리에게 1보루씩 나눠들게 했습니다.
 
담배는 1인당 1보루(200개비)까지 면세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입국할 때 세금을 내지 않으려면 1보루씩 들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은 필수니까요.
 
게다가 이 부장은 평소 밑보였던 김이사님께 선물할 고급양주 1병도 구입했습니다. 술도 1병까지는 세금이 안붙는 면세라서 면세점에서 구입하는 것이 국내 할인매장에서 사는 것보다도 훨씬 싸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렇게 면세청탁을 받을 경우 두가지 큰 부담을 지게 됩니다.
 
하나는 면세점에서 산 물품을 여행하는 내내 들고다녀야 한다는 부담이구요.
 
또 다른 하나는 다소 과다한 청탁을 받은 경우 다시 한국으로 입국할 때 세금을 다시 토
해내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을 느껴야 한다는 부담입니다.
 
이왕에 사서 다시 들고 들어올 것을 뭐하러 수천~수만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을 돌아다니면서 들고다녀야 할까요. 또 사면서 세금을 면제해준 물품에 왜 다시 세금을 부과할까요.
 
두가지 부담은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면세점이 이부장이나 김대리와 같은 해외여행객을 위해서 설치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공항 출국장에 면세점을 설치한 이유는 세계관세기구(WTO)의 권고에 따라 출국하는 사람들이 해외에서 사용할 물건에 대해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에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외국관광객 유치를 위해 시내면세점까지 추가로 설치되기 시작했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해외여행객을 위한 면세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국인이나 외국인의 구분없이 단순히 출국하는 사람에게 면세점이 개방되다 보니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해외여행을 하는 내국인들의 면세점 이용도 크게 늘었다는 점인데요.
 
(사진=이상원 기자)
2011년 기준 국내 면세점 매출액 5조3716억원 중 내국인의 구매액은 절반인 2조6662억원(49.6%)에 달했습니다.
 
그나마도 불과 7~8년 전에 80%에 육박하던 내국인 이용비중이 손 큰 중국과 일본여행객의 증가로 줄어든 수치입니다.
 
면세점 설치 취지와 관계 없이 내국인의 면세점 이용이 수십년간 관행처럼 이어지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켜켜히 쌓여 고름처럼 고여있는 실정입니다.
 
우선 조세형평이 저해되는 문제는 가장 크게 곪아 있습니다. 똑같은 제품을 일반 매장에서 구입하는 일반인들은 세금을 다 내고,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면세혜택을 받는 황당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통상 면세라는 것은 특정 대상이나 계층에 대한 지원을 위해 세법에 따라 주어지는 혜택인데요. 장애인이나 농어민이 사용하는 면세유나 최근 시행되고 있는 주택 취득세 면제 등 주로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 지원이나 정부 정책시행을 위한 면세가 대부분입니다.
 
그런점에서 내국인 해외여행객에 대한 면세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은 소수의 해외여행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데다 해외여행을 부추겨 관광수지를 악화시키고 세금까지 축내고 있으니 정부 정책과도 무관한 면세입니다.
 
게다가 면세점 판매액의 80%이상을 해외 고가브랜드 제품 등 수입산이 차지하고 있어 내수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죠.
 
내국인 면세점 이용의 관행화는 정부가 국민을 암묵적인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 문제도 만들었습니다.
 
내국인들에게도 출국할 때에는 3000달러까지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입국할 때에는 400달러까지만 면세한도를 부여하고 있어 400달러를 초과해서 물품을 구입한 해외여행객들은 면세받은 세금을 토해내야만 하는 구조입니다.
 
당연히 아내에게 줄 고가가방과 화장품을 구입한 김대리는 400달러를 훌쩍넘겨 물건을 
구입했을테고, 입국할 때에 세금을 더 내야하나 불안불안한 마음을 떨칠수가 없습니다.
 
이부장이 비흡연자인 차대리와 박대리에게 자신이 태울 담배를 대신 들어달라고 요구한 것도 면세한도를 이용한 편법행위인 셈이죠.
 
인천공항세관이 2011년 한해 동안 면세범위를 초과해 물품을 구입해 입국하면서 세금신고를 하지 않은 여행자들에게 징수한 세금만 135억4400만원에 이르지만 이 또한 내국인의 면세품 구입액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국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신고했는지를 검사하는 관세청의 입국여행객 검사비율은 1~2%에 불과합니다. 세금신고 확인과 함께 통관시간도 단축해야한다는 것이 이유이지만 덕분에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100명 중의 1명정도를 검사할까말까 하다보니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혹시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세금신고를 하지 않습니다. 세금신고서는 형식적으로 작성되기 일쑤죠.
 
면세점의 누적된 문제는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면세점 업계의 주축인 재벌기업들의 로비가 상당한데다 최근에는 임대수익을 노린 공항공사 등이 여행객들의 불평을 등에 업고 입국장에까지 면세점을 설치하자는 요구까지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번 굳어진 관행을 깨기는 쉽지 않겠지만 잘못된 것은 바로잡는 것이 정부의 역할입니다.
 
특정계층에 대한 불필요한 면세, 수입제품과 재벌기업에 집중된 면세점 매출구도를 바꾸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정부가 국민들을 '면세청탁'의 범죄자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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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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