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반짝반짝 광이 나는 최고급 휠과 하루라도 세차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윤이나는 차체, 엑셀레이터를 밟는 순간 눈 깜짝할사이에 속도위반에 걸릴 수 있는 성능의 엔진.
이른바 사장님차로 통하는 대형 승용차와 고급 외제차의 판매가 최근 몇년 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회사명의로 사들인 사장님과 경영진의 차량이라고 하네요.
◇BMW전시장(사진제공=BMW그룹코리아)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1억5000만원 이상 가격대의 수입차 중 87% 이상이 법인차량으로 등록돼 있고, 한대에 5억원~8억원을 호가하는 외제스포츠카의 법인등록 비중은 96%가 넘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다 뭐다 해서 경기는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허리띠를 졸라매야할 경영자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한다고 비난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특히나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 포르쉐, 페라리 등 수억원짜리 스포츠카를 타는 사장님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겁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비싼 차를 탈수록 돈을 절약할 수 있는 황당한 세금정책 때문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행 세법에 따라 업무용도도 차량을 사거나 빌리면 그 매입비용이나 리스비용을 경비로 처리해서 법인은 법인세를, 개인 사업자도 소득세를 줄일수 있는데요.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승용차를 회사나 사업장 명의로 등록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1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법인의 대표가 회사명의로 5억원의 스포츠카를 사서 영업용으로 신고했다면, 5억원의 차량구입비용은 영업비용으로 처리돼 외형상의 영업이익은 95억원으로 줄어듭니다.
당연히 1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내야할 세금은 95억원을 기준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세금이 줄어들죠.
스포츠카가 무슨 영업용이냐고 하실테지만 2011년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람보르기니, 포르쉐, 페라리 등 초고가 수입스포츠카의 상당수가 법인소유였습니다.
벤츠나 BMW 등 외제차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고급세단의 법인등록율이 높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법인으로 차량을 등록하면 비용처리로 법인·소득세 부담이 줄어드는 것 뿐만 아니라 취득세와 자동차세, 그리고 자동차 보험료까지 법인이 내도록 할 수 있고, 이 또한 전체적인 영업이익을 줄여서 회사의 세금부담까지 줄여줍니다. 리스차의 경우 차량의 임대료까지 법인이 부담하게 되죠.
2011년 오리온그룹 오너 일가와 고위임원이 8억원대 포르쉐와 3억원대 람보르기니를 회사명의로 빌린 후 어린 자녀의 통학용으로 사용한 사실이 검찰조사결과 드러난 것은 이런 법의 헛점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수입차를 이용한 탈세규모가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요. 새정부 들어 이른바 지하경제와의 전쟁을 선포한 국세청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겠죠?
국세청은 최근 현대·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업체는 물론 벤츠, BMW, 아우디 및 고가의 해외스포츠카판매업체 등에 법인이나 사업장 이름으로 판매된 실적자료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회사이름으로 사 놓고는 사실상 개인 승용차로 사용하는 경우를 찾아내어 엄벌하겠다는 것입니다.
원천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민홍철 민주당 의원은 기업이 업무용 차량을 취득하거나 리스할 경우 전액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는 현행제도를 바꿔 2000cc 이상의 승용차는 취득가액이나 리스차량의 가격에 따라 비용처리에 제한을 두도록 하는 법인세법 및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탭니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입니다. 웬만한 서울시내 아파트 전세값이나 중소형아파트 값과 맞먹는 외제차를 장난감차 사듯 회사이름으로 사들이는 사장님들의 모습은 경비처리를 하기엔 눈치보여서 택시타는 것도 꺼리는 서민들의 모습과 비교하면 너무 불공평하니까요.
게다가 세금까지 축내고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실 과세당국도 이런 내용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쉽게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자칫 외제차에 대해 규제할 경우 외국과의 통상마찰을 불러올수도 있기 때문이죠.
사장님들이 스포츠카를 타고 영업(?)하는 모습이 이번에는 좀 사라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