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재야'는 제도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전에는 "벼슬하지 않고 민간에 존재한다"고 정의할 정도로 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쓴소리 내는 재야에 기반을 둔 연구소들이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 산하이거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여러 연구소들이 제도권의 정책을 보완해서 풍부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제도권 정책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정책을 감시하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이들 재야연구소의 주업무입니다. 뉴스토마토는 소수의 목소리로 묻혀있는 이들 재야연구소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새정부 출범 전후로 빚어진 현안과 향후 이슈에 대한 이들의 견해는 귀기울일만 합니다. [편집자]
경제개혁연구소는 헌법 119조가 규정한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2009년 7월 설립됐다.
소장은 김우찬(고려대 교수), 이사회는 김우찬·김상조(한성대 교수)·김진욱(변호사), 이사회 의장은 장하성 교수(고려대)가 맡고 있는 등 운영진 면면이 화려하다.
운영진 뿐 아니라 연구진 역시 언론·출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경제개혁연구소는 재벌개혁을 주제로 한 국내 대표적 정책연구소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연구소 나이는 4살이 채 안 됐지만 연원은 1997년 활동을 개시한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와 닿아 있을 만큼 뿌리 깊다.
◇경제민주화 원조, 참여연대에서 분리한 뒤 이름 바꿔
장하성 교수가 이끈 경제민주화위원회는 김상조 교수가 이끈 참여연대 산하 재벌개혁감시단과 합쳐 '경제개혁센터'로 개칭했고, 경제개혁센터는 참여연대에서 분리해 나온 뒤 2006년 '경제개혁연대'로 이름을 바꿨다.
이 경제개혁연대에서 분화한 게 경제개혁연구소다.
경제개혁연대가 시민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경제개혁연구소는 정책연구로 이를 뒷받침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도 이들 단체와 자매관계인데, 유료로 기업관련 정보를 분석하거나 컨설팅을 해준다.
다소 복잡한 역사와 구조를 갖고 있지만 연구소를 포함해 이들이 주장해온 목소리는 하나다.
재벌과 오너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막고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자는 주장이다.
그래야 사회전체에 이익이 돌아간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지극히 타당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이 타당함을 현실로 구현하려 20년 가까이 싸웠고 지금도 싸우는 중이다.
◇갈채와 논란 사이..20년간 재벌개혁운동
경제개혁연구소가 탄생하고 자리 잡은 과정은 시민사회의 20여년 재벌개혁운동의 맨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그 20여년 역사에서 참여연대와 장하성 교수를 빼놓을 수 없으며, 경제민주화란 외피를 두르고 전개해온 소액주주운동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진 제공: 참여연대>
재벌개혁운동은 좌우양쪽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업의 성장을 오너가 독식해선 안 된다는 주장, 기업의 이익을 기업에 참여한 이들 누구나 나누자는 목소리, 갖고 있는 지분만큼 기업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라는 요구는 주주자본주의와 맞닿아 있다.
이는 오너의 전횡을 견제하는 성과를 남겼지만 자본의 통제권을 오너에서 주주로 분산시킨 정도의 한계도 안고 있다.
재벌개혁의 지향점을 정리하면 '합리적 시장주의' 정도가 될 것이다.
경제체제의 전면 개편을 주장하는 쪽에선 시장에 기반한 개혁의 한계가 뻔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반대로 이 같은 개선안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에선 그마저 껄끄럽고 불온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분명한 건 지극히 타당한 논리마저 먹혀들지 않는 현실에서 재벌개혁운동은 헌법 조항 그대로의 원칙을 일관되게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를 토대로 최근 두드러지게 가시화된 경제민주화 입법전 역시 바로 이 운동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진 제공: 참여연대>
◇"경제민주화 안되면 87년 이후 정치민주화도 껍데기"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2009년 연구소 출범 때부터 소장직을 맡았다.
지난 4월 국회를 뜨겁게 달궜던 '임원 연봉 공개 제도화'가 2000년 초반부터 제기해온 김 교수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이슈에서도 김 교수의 목소가 빠지지 않을 만큼 그 문제도 주력해 제기해왔다.
세간에선 개혁성향 학자로 지칭하지만 김 교수 스스로 "좌우 양극단 목소리에 동의하지 않고 시장경제는 복지제도로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고 주장할 만큼 합리적 성향이다.
김 교수는 지난달 28일 인터뷰에서 꼭 100년전 미국 상황을 들어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1913년 집권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듬해인 1914년 당시 재벌과 유사한 행태를 보인 록펠러와 JP모건을 청문회장에 세웠고, 뒤이어 독점구조를 막는 다양한 정책으로 미국경제를 건전한 방향으로 이끄는 토대를 마련했다.
미국이 모범적 길을 걸었는지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있겠지만 김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정치권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단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진제공: 김우찬 고려대 교수>
- 경제민주화의 정확한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나. 얼마전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과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경제민주화 개념을 놓고 온라인상 설전을 벌였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도 6월 국회 입법전을 앞두고 해석이 제각각인데.
▲ 경제민주화는 역사적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6·10 항쟁을 통해 정치민주화를 이뤘지만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뭐냐면, 대통령 임기를 단임으로 했더니 임기없는 기업주들 힘이 너무 세진 것이다. 총수들은 아들에게 기업을 승계하면서 반영구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 재벌들 힘이 경제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입법, 행정, 사법 영역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이건 우리가 원한 민주주의가 아니란 거다.
이렇게 되면 정치민주화도 껍데기에 그치게 되니까 이걸 바로 잡는 차원에서, 다시 말해 경제권력이 다른 영역에 뻗치는 걸 막기 위해 태동하고 전개한 게 경제민주화, 그게 제대로 된 정치민주화를 위한 길이라고 본 것이다.
- 경제민주화를 넓게 해석했을 때 한국사회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하나 꼽는다면.
▲ 재벌이 더 커지는 걸 막아야 한다. 특정기업 이익을 확대, 강화, 재생산하는데 부당한 방법이 동원되고 아주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독점하는 문제가 재벌이란 구조에 있다. 순환출자 금지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법으로 고치는 게 필요하다.
◇삼성 주총 현장의 13시간 격론 유명
- 넓은 맥락에서 봤을 때 십수년 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시절부터 재벌개혁운동을 전개해온 셈이다. 운동의 의미와 한계를 꼽는다면.
▲ 의미는 굉장히 크다. 먼저 기업 지배구조란 용어가 생소한 상태에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는데 대표적인 게 제일은행,
삼성전자(005930) 상대로 한 것 아닌가.
그런 소송을 통해서 지배구조 개선이란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많은 기업들에 예방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유명무실한 주주총회도 활성화시켰다. 장하성 교수가 삼성전자 주총에서 13시간 이상 마라톤 토론한 것 유명하지 않나.
그리고 입법운동 빼놓을 수 없다. 증권집단소송, 집중투표제, 회사기회 유용 금지같은 것 적극 제기해왔고 이제는 정치권도 법에 집어넣어서 의무화하겠다고 한다.
소송전과 입법운동을 쌍두마차로 그렇게 성과를 일궈왔다. 연구소를 차린 건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 조항을 보다 실질화하자는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연구하기 위함인데 '문제성 주식 거래 보고서', '일감 몰아주기 보고서' 등이 우리 히트상품이다.
사실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전면 이슈화 한 것도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 2009년 창립할 때 설립취지에 그걸 인용했는데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그 다음 인용하기 시작하더라.
물론 한계가 없지 않다. '그렇게 해서 바뀐 게 뭐냐'라고 해서 살펴보면 10년 전 있던 사건이 또 벌어지는 식이니까. 우린 농담처럼 그렇게 말한다. 기업이 완벽히 개선되면 우리 문 닫지 않겠느냐고. 어쨌든 재벌개혁은 갈 길이 아직 멀다고 본다.
<사진제공: 참여연대>
◇연구소 히트상품..`일감 몰아주기보고서`, `문제성 주식거래 보고서`
- 재벌개혁이란 큰 흐름에서 봤을 때 지난 4월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전 결과는 얼마만큼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 요구는 달라지지 않은 만큼 조급하게 보지 않으려 한다. 새누리당도 개정안 많이 냈을 만큼 여야가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부 대안을 빠른 시일안에 만들고 입법화 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정부 출범하고 아직 반년이 지나지 않았으니 지켜볼 것이다.
속도조절론? 최경환, 이한구 등 당 지도부가 그런 이야길 꺼내서 발언이 커 보이는 것뿐 정작 정무위는 다르다. 1~2명 의원 빼고 공감대가 이뤄진 상태로 안다. 의견이 안 맞는 건 지엽적 부분이다.
- 국민 이야기 했지만 재계의 반발과 별개로 '삼성'과 '이건희'를 떼어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상당수인데.
▲ 주식회사제도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총수 문제도 구체적으로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국제 금융위기로 양극화가 워낙 심해지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는 퍼진 것 같다.
권력 집중 문제가 재벌도 다르지 않다는 것, 시장 개방하면서 돈 벌 기회가 늘었다고 하는데 지표상 재벌만 살찌는 것 등.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최근 밀어내기 관련해 자살까지 일어나는 문제가 자꾸 드러나니까 인지하는 것 같다. 새누리당이 선거 앞두고 이를 빠르게 포착한 것이고.
◇경제민주화 보다 경기부양이 우선이란 논리적 무리수
- '갑을이 문제가 아니라 불황이 문제'라는 식의 기사가 지면에 많이 실린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경제민주화가 웬 말이냐는 식의 주장에 대해선.
▲ 재벌개혁하고 경제성장하고 아무 상관 없다. 김승연 회장이 법정구속 판결까지 받았지만 한화가 어떻게 됐나? 오히려 오너가 경영판단 잘못한 웅진이나 한진이 문제된 거 아닌가.
- 재벌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는 주장이나 경제성장을 위해 재벌구조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 거의 모든 나라에 재벌과 비슷한 형태가 있는 건 사실이다. 미국 영국 정도에만 없다.
내용도 비슷하다. 터널링(내부거래), 불법승계,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까지.
재벌구조가 꼭 나쁜 건 아니다. 외부에서 조달해야 할 자본을 내부에서 조달해야 할 땐 그렇다. 외부 자본시장이 부재하니 사업기회를 내부에서 찾는 것이다. 이건 학계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경우 유용하다는 것이지 지금 우리 시장상황에서 재벌구조는 필요가 없다. 경제도 성장했고 기업이 돈을 못 빌리는 상황도 아니다.
지금 재벌은 적은 돈으로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거나 세금 안내고 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주려는데 쓰려는 것뿐이다.
<사진제공: 참여연대>
◇"지금 국내 시장상황에 재벌이 왜 필요한가"
- 재벌개혁 일환으로 소액주주운동을 전개했지만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 여러 각도에서 비판이 있는 거 안다. 다만 우린 운동을 하면서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문제 있는 것을 먼저 해결하잔 입장이다.
이를 테면 주주들뿐 아니라 종업원도 있고 한데 왜 소액주주 권리만 이야기 하느냐 한다.
우린 누가 봐도 문제라고 판단하는 것, 이를테면 주주나 종업원이나 일반 사람이 봐도 문제 있는 것에 초점 맞춘 것이다. 예를 들어 일감 몰아주기가 그렇다. 누가 봐도 도둑질이니까 바로잡아야 한다는 거다.
물론 좌측에선 우리나 우측이나 별 차이 없다고 폄훼하지만. 만일 노동자가 지배하는 기업을 주장하는 거라면 그게 어떻게 좋은지 자료를 제시해서 설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노동자가 경영까지 참여하면 얼마나 좋은지 숫자를 갖고 설득을 해야 한다.
사실 그 문제는 법적 구조를 아예 바꿔야 하는 문제이고 주식회사 체제에서 중요한 건 우리의 운동기준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