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은정기자] "저희는 고객에게 10년이상 투자할 분만 펀드에 가입하라고 권유합니다. 대신 저희는 10년동안 절대 펀드운용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약속한겁니다"
펀드시장이 예전같지 않다고 하는 요즘이지만,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사진)의 말에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26년간 지켜온 '가치투자'라는 철학 덕분이다.
일명 이채원 펀드로 불리는 한국밸류10년투자 펀드는 이름만 봐도 그의 소신이 그대로 담겨있다. 올해로 설정된지 7주년을 맞은 이 펀드는 지난 3일 기준으로 누적수익률 141%라는 성과를 냈고 10주년이 되는 3년후에는 200%의 수익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한은정기자)
◇한국밸류10년투자 펀드, '철저한 가치투자 원칙'이 차별성
가치투자를 내세운 펀드들이 줄줄이 생겨나면서 펀드마다 특성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지만, 한국밸류10년투자 펀드는 '철저한 가치투자 원칙'에 차별성을 두고 있다.
한국밸류자산운용의 '가치투자 원칙'은 이 부사장 뿐만 아니라 경영진과 고객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철학이다.
"저와 경영진은 25년간 가치투자라는 철학을 철저히 공유해왔고 앞으로도 절대 안바뀔겁니다. 왜냐하면 저희 회사의 주인은 안바뀔거니까요. 최고경영자(CEO)나 경영진이 자주 바뀌면 펀드의 철학이 바뀔 수 있거든요."
투자자들이 펀드에 투자하는 평균기간이 1년정도라고 하는데, 한국밸류자산운용에서는 5년이 넘는 고객의 비중이 64%다. 한국밸류10년투자 펀드는 가치투자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3년 환매제한을 걸어놓은 펀드이기도 하다.
"저희는 고객과 철학을 공유하는 강도가 셉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10년짜리 자금을 운용하게 되니 환매로 인한 유동성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이 부사장은 "연 수익률 목표가 6~7%다. 올해가 7개월정도 남았는데, 그 기간동안 5%의 수익률이 보장된다면 모두 매도할 의향도 있다"며 가치투자의 원칙에 맞게 수익률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점도 강점으로 내세웠다.
한국밸류자산운용은 이같은 기술적 분석에 1년에 1400~1500회 정도의 기업탐방을 통해 가치투자 대상이 될 기업을 발굴하고 있다.
◇"대형주 50% 넘게 늘려..아시아밸류펀드 도전하고파"
싸면 사고 비싸면 파는 것이 한국밸류자산운용의 운용방식이다. 오랜기간 연구끝에 대형주와 소형주간의 주가순자산비율(PBR) 차이를 나타내는 '벨류에이션갭모델'이라는 정량지표를 철저하게 적용하고 있다.
한국밸류자산운용은 10%에 불과했던 대형주 비중을 최근 50% 넘게 늘리고, 중소형주 비중은 기존의 90%에서 40%까지 줄였다. 궁극적으로는 대형주와 중소형주의 비중을 70%와 30%로 담을 생각이다.
"벨류에이션갭모델은 우리나라 100대 대형기업과 650개 중소형기업의 PBR을 구해서 14년동안 추이를 대비시킨 것입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PBR 기준으로 지난 2011년 초 대형주는 중소형주보다 130%나 더 비쌌는데, 지금은 54%까지 떨어진겁니다. 중소형주가 지난 2년간 크게 올랐기 때문에 지금은 큰 메리트가 없는 거예요."
한국밸류자산운용이 선호하는 업종은 소비재와 유틸리티다. 방어주 비중이 항상 높지만 최근에는 많이 오른 음식료 업종의 비중을 줄이고 은행 등 PBR이 낮은 내수경기민감 업종을 늘리고 있다.
"경기민감주도 저평가일때에는 관심을 갖고 볼꺼예요. 주가가 비싸지면 종목이 미워지고, 미워하던 종목도 싸지면 사랑스러워 집니다. 시장이 아무리 좋아도 내재가치에 도달하면 팔것이고, 시장이 암울하더라도 싸면 삽니다."
이 부사장은 10주년이 되는 3년 뒤 아시아 시장도 공략해 볼 계획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3년뒤에는 아시아밸류 펀드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일본이나 중국, 아시아권 국가에서 저평가 된 기업에 투자하고 싶어요. 국내성장이 둔화되고 있으니까요. 아시아 투자를 위한 스터디를 이미 시작했어요. 예컨대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가 현대차와 기아차만 커버하는게 아니라 도요타도 가보고, 폭스바겐도 가보는거죠. 전세계에 2~3명은 항상 가있어요."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뀐다..주식은 최고 투자처"
글로벌 저금리 저성장 시대가 다가오면서, 투자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는 것이 이 부사장의 생각이다.
"글로벌 저성장과 저금리 기조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죠. 투자자들은 막연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성장가치보다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확실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어요. 정기예금의 금리가 2.7% 정도니까, 어디서 안전하게 4%를 준다고 하면 돈이 엄청 쏠리죠. 부동산 가격도 크게 올라갈 것 같지 않으니, 임대수익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요. 주식도 마찬가지예요.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지금 현재 돈 잘버는 주식이 좋은 거예요."
이 가운데서 이 부사장이 가장 유망하게 보는 투자처는 주식이다.
"3대자산의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정기예금은 2.7%, 부동산 임대사업은 3~5%입니다. 주식은 당기순이익에서 시가총액을 나눠서 수익률을 구하는데, 삼성전자의 올해 예상 수익률은 13%가 나오고 상장사의 평균은 8%가 나옵니다. 그러니 주식을 사야죠"
자산배분 전략에 있어서도 주식의 비중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이익률이 높은 쪽으로 비중을 높여서 부동산에 30%, 채권에 30%, 주식에 40% 정도 비중을 두면 되죠. 여기서 만약 주식이 잘되서 수익이 나고, 비싸지게 되면 매력이 없어지는거죠. 그때는 주식비중을 줄이라는 겁니다. 다양한 자산들의 수익률을 계산해봐야 해요."
◇"운용사별 철학 뚜렷해야..정부는 장기투자 혜택 늘려야"
이 부사장은 펀드시장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업계와 정부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시장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안타깝게 봤다.
"업계가 어려운건 환경탓도 많은 것 같아요. 2008년 증시가 고점을 찍고 아직도 2000선을 못뚫고 있거든요. 6년동안 펀드에 넣어놓고 수익이 안나는 거잖아요. 은행에 넣어도 20~30%는 났을텐데 말이죠."
업계의 입장에서는 철학이 뚜렷한 펀드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펀드매니저가 오랜기간 안바뀌고 철학이나 원칙이 뚜렷한 펀드가 나오면 고객이 선택하기가 쉬워요. 저희는 철학이나 원칙을 뚜렷이 세우고 고객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정부 당국도 도와줘야죠."
그는 마젤란펀드를 예로 들며 투자자들이 장기투자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마젤란펀드는 10년간 2500%의 수익을 냈지만, 가입한 사람 중 절반이 손실을 맛 본 아이러니 한 펀드다. 투자자들이 꼭지에서 가입하고 바닥에서 환매하는 등 매매를 계속 반복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그런 일어났다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역사가 짧으니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 믿어요. 장기투자에 대한 마인드가 좀 더 보급이 되면 훨씬 나아질거예요. 10년이상 투자하면 정부에서 혜택을 줘야, 시장이 안정되고 성과를 내는데 그럴 기회가 없다는게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되면 업계도 좋아지고 투자문화도 건전하게 바뀌겠죠."
이 부사장은 1988년 동원증권에 입사한 이래 지금까지 가치투자의 한 길을 걸어왔다. 1998년 국채 최초로 가치투자 펀드인 '밸류이채원펀드'룰 개발·운용했고, 1999년 기술주 열풍속에서도 끝까지 투자원칙을 고수했다. 2000년 4월부터 2006년 2월까지 한국투자증권의 고유계정을 맡아 코스피지수가 56.4% 상승하는 동안 무려 435%의 수익을 달성해 한국에서도 가치투자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부사장은 '가치투자의 전도사'로 한국 가치투자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