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LG전자 TV연구소와 디자인연구소는 55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내놓기까지 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냈다.
'무'에서 '유'로의 도전이었고, '불가능'을 '가능'케 해야만 했던 의무였다. 어깨에 얹혀진 짐은 시장 선도냐, 만년 2위냐를 결정하는 LG전자 명운이 걸렸던 사안이었던 만큼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특히 '초경량', '초슬림', '시네마 디자인' 등 삼박자를 골고루 갖춰야 했기에 이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초슬림, 치열한 논쟁과 협업의 '결정체'
LG전자의 55인치 OLED TV는 치열한 논쟁의 결과물이다. 논쟁의 주축은 혁신적 스타일을 추구하는 디자인연구소와 신기술 개발을 사명으로 여기는 TV연구소.
논쟁의 불씨를 제공한 쪽은 디자인이다. LG전자는 8.8mm 두께의 발광다이오드(LED) TV를 이미 출시한 터라 5mm 이상의 두께는 의미 없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다. 때문에 디자인연구소는 이보다 훨씬 얇은 3mm대의 디자인을 제시했다.
문제는 디자인연구소가 제시한 안은 기술적 구현에 있어 한계가 있다는 데 있었다. TV연구소로선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기술 구현의 어려움을 모르고 디자인연구소가 무리하게 밀어 붙인다는 볼멘소리도 흘러나왔다.
그때부터 두 연구소는 치열한 격론에 휩싸였다. OLED TV 디자인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오고간 논의만 수 백 번. 거듭된 논쟁 끝에 TV연구소는 마침내 디자인연구소로부터 0.5mm 정도의 양보를 얻어냈다.
두 연구소는 얇은 패널과 최고의 기술을 집약하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이상적 디자인을 4mm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LG전자의 55인치 OLED TV는 치열한 논쟁과 협업이 만들어낸 결정체인 셈이다.
◇초경량, 소재 선택 '모험'에서 답을 얻다!
난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얇은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TV 후판 부문의 소재다. 철판에 버금가는 강도를 유지하면서 무게는 가벼운 소재를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LG전자는 알루미늄, 마그네슘, 드랄미늄,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를 검토한 끝에 최적의 재료를 마침내 찾았다. 내구성이 강한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으로 최종 낙점한 것이다.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은 플라스틱에 탄소섬유를 넣어 강화시킨 것으로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쇠보다 강하다는 게 장점이다. 때문에 비행기 동체와 인공위성을 만들 때 주된 소재로 사용한다.
소재에 대한 답을 구했지만 그렇다고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비싼 가격 탓에 TV 후판에는 적용된 사례가 없었던 게 걸림돌이었다. LG전자로선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을 선택하는 것이 일종의 '모험'이었던 셈이다.
다행이 LG전자의 간 큰 도전은 값진 결과로 돌아왔다. 10kg의 무게를 구현하며 초경량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이는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의 구매선을 다변화해 소재의 가격을 낮추는 전략과 생산성 혁신을 통한 원가절감이 시너지를 내며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시네마 디자인, 끊임없는 연구 노력의 결과물
시네마 디자인을 완성하는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LG전자는 공중에 OLED TV의 화면만 떠 있는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 디자인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서는 TV 받침대의 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LG전자는 공중에 TV가 떠 있는 듯한 '플로팅' 기술을 구현하고자 투명 받침대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받침대의 디자인이었다. 투명 플라스틱은 디자인이 최적화되지 않을 경우 빛 반사로 인해 화면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었다.
더구나 안정적으로 OLED TV를 지지해 줄만큼 튼튼해야 했기에 소재까지 함께 고려해야 했다. LG전자는 이런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소재를 찾는데 적지 않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유리와 아크릴, 레진 등 다양한 소재를 테스트한 결과 레진(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번엔 두께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전자업계에서 레진 사출은 15mm가 일반적이고, 얇은 TV 베젤이나 냉장고 판은 대부분 10mm 이내다. 반면 플로팅 기술 구현에 필요했던 레진의 사출은 35mm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두께의 사출을 필요로 했다. LG전자가 원하는 두께의 사출 업체를 찾기란 '하늘에서 별따기' 만큼 힘든 일이었다.
수소문 끝에 사출 기술이 뛰어난 독일 업체를 찾았으나 이 업체 역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LG전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당 업체에 35mm의 레진 사출을 맡겼으나, 이 업체는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LG전자가 직접 모든 것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와 좌절, 또 다른 도전 끝에 플로팅 기술을 구현한 투명 받침대를 탄생시켰다. 초경량화, 초슬림에 이어 시네마 디자인의 목표를 실현하며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이었다. 시장 선도가 현실화됐다.
LG전자 관계자는 "OLED TV는 명품으로 포지션이 된 만큼 섬세한 부분까지 품질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내부적으로 확고했다"면서 "소비자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철저히 품질을 관리하며 제작했다"고 말했다.
◇LG전자가 지난 1월 세계 최초로 출시한 55인치 OLED TV.(사진제공=LG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