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중단, 위조부품사용 사실 확인으로 불거진 원전사태는 단순히 발등의 불로 떨어진 전력위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속 깊은 곳부터 썩어 문드러진 뿌리 깊은 구조적인 문제였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7일 원전리비 대책을 발표하면서 "상호 감시와 견제라는 공정한 경쟁문화가 실종되면서 원전마피아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원전마피아'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마피아'는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는 기득권을 비꼰 말이다. 대한민국 원전에도 마피아와 같은 기득권이 썩고 있다는 것을 국무총리가 시인한 것이다.
부품제작사와 시험기관, 그리고 발주처 사이의 폐쇄적인 유착관계를 넘어 학계와 산업계 정부인맥까지 독점과 나눠먹기가 난무하는 이른바 '원전마피아'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소수의 전문성을 무기로 관련기관을 넘나들며 피감시자가 감시자가 되고, 감시자가 다시 피감시자도 되는 회전문인사는 수십년간 원전마피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운데)가 관계부처 장관 등과 함께 7일 원전비리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국무조정실)
◇ 소수인력이 국가기간산업 점령
원전마피아의 출발은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 원자력학과를 두고 있는 국내 9개 대학이다. 소수의 인력자원만이 원자력이라는 국가기간산업의 핵심인력으로 활용될수 있는 환경이 원전 마피아를 탄생시킨 것.
한국원자력산업회의에 따르면 2010년 원자력 전공관련 배출인력은 학사출신이 148명, 석사가 66명, 박사가 24명으로 238명에 불과했다. 1만명이 넘는 전기전자 전공인력 등 다른 전공인력에 비하면 극소수에 가깝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진출하는 곳은 대부분 산업통상자원부 등 원전 관련 정부 정책공무원이나 원자력 관련 학계와 산업계 전반이다.
특히 원자력학과 박사의 대부분을 배출하는 서울대와 카이스트는 원전마피아의 중심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박사의 40% 이상을 배출하는 서울대의 권력은 막강하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의 2010년 대학별 원자력 관련학과 재학생수 현황에 따르면 전체 204명의 박사과정 학생중 서울대가 60명, 카이스트가 87명으로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초대위원장과 부위원장인 강창순 전 위원장과 윤철호 부위원장, 이은철 현 위원장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원자력안전 전문위원회 위원장인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도 서울대 출신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 안전과 규제업무를 위한 기관이지만 구성원은 원자력산업과 학계 전반에서 채워졌다.
강창순 초대위원장과 윤철호 초대부위원장, 이은철 현 위원장은 각각 한국원자력학회의 제16대, 제23대, 제18대 회장을 지냈다. 장순흥 전문위원장 역시 제24대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이었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원자력에 관한 학술과 기술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수력원자력과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등 원전 사업자들도 참여하고 있어 사실상 원자력 산업의 진흥에 더 관심이 많은 단체다.
한국원자력학회의 감사는 박정용 두산중공업 전무가 맡고 있으며, 이영일 삼성물산 상무는 재무이사자리를 꿰차고 있다.
원전비리의 원흉인 한국수력원자력과 유관기관간의 연결고리도 끈끈하다.
한수원 출신 간부들이 원자력발전소의 살계부터 건설, 정비, 품질안전검사와 관련된 업체에 모조리 재취업돼 있는 상황이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원전 발전소 본부장을 지낸 73명 전원이 한수원 출신이다.
원전사태의 관심에서 슬쩍 비껴나 있는 한국전력과의 관계도 돈독하다. 역대 한수원 사장들을 보면 1대 최양우, 2대 정동락, 3대 이중재, 4대와 5대 사장을 지낸 김종신 전 사장까지 모두 한국전력 출신이다.
공직출신인 김균섭 사장도 지난해 6월 한수원 개혁을 목표로 부임했지만, 결국 원전마피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 원전마피아 해체 가능한가
원전 1기당 건설비용은 2조원에서 3조원에 이르며 원전 점검을 위해서도 수십억에서 수천억원의 비용이 든다.
거대 먹을거리를 놓고 물고 물리는 원전마피아들의 연결고리를 해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위조된 품질검증서가 부품이 사용된지 5년이 지난 후에야 세상에 알려진 것도 이런 끈끈한 연결고리 때문이다.
김균섭 전 한수원 사장은 신고리원전 1·2호기와 신월성원전 1·2호기에 불량부품이 사용된 사실이 드러난 지난달 28일 "추가로 위조품질검증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사건의 확대가능성을 부인했지만, 검찰수사에서 곧바로 다른 회사의 시험성적서 위조사실이 확인됐다.
유착의 깊이가 너무 깊어 제대로된 검증이 되지 않는 상황임을 증명해준다.
정부는 우선 한수원과 검증기관 퇴직자들이 부품업체나 협력사에 재취업하는 것을 금지하고, 퇴직자를 활용한 입찰참여도 제한하기로 했다.
취업제한은 원전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성을 가진 부장급 이상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전 직원에 대한 취업제한을 할 경우 개인의 취업자유를 제한하는 헌법위배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외부인사도 적극 영입하기로 했다.
한진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원전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반드시 원자력에 대한 전문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면서 "물론 전문성 있는 인재도 필요하디만 순혈주의 타파를 위해 개방형 외부인사 영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품 구매나 기획 등의 업무에는 원자력 기술 이외의 전문성이 필요한데도 그동안 원자력 전문인력이 이를 점령해왔다는 것이다. 외부인력은 2017년까지 처·실장급 50% 비중으로 상향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는 국책시험연구기관이 민간시험검증기관을 재검증하는 이른바 더블체크 시스템도 도입키로 했으며, 관련 비리가 있을 경우 가중처벌키로 했다.
질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비위행위가 적발되면 계약금액을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 대책이 원전마피아 근절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이은철 원자력안전위 위원장은 이날 원전마피아 근절대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원전 마피아가 뭐냐. 정의를 내려달라"고 반문한 뒤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나오면 다 마피아인가"라며 "원자력안전위원회로서는 거기에 대한 조치를 할 생각은 당분간 없다"고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