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스토리)요금도 세금처럼 느껴지는 나라

입력 : 2013-06-10 오후 5:07:41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온 나라가 전기를 아껴쓰자고 난립니다. 이상기후로 예년보다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올해는 원자력발전소와 관련된 비리사실이 확인되면서 여러대의 원전이 동시에 가동을 중단, 전력수급이 그야말로 살얼음을 걷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뾰족한 대책없이 아껴쓰라는 말만하다보니 "전기세만 올려놓고는 나라에서 잘못한 일을 국민이 떠 안아야 하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실제로 전기요금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네 차례나 인상됐습니다.
 
고객인 국민의 입장에선 불만이 쌓일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 한가지 말꼬리를 잡자면 이러한 원성에는 한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바로 '전기세(稅)'라는 용어입니다. 전기요금은 세금이 아니라 엄연히 사용한 만큼 납부하는 요금인데요.
 
국어사전에도 세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이는 돈을 말하고, 요금은 남의 힘을 빌리거나 사물을 사용 또는 소비, 관람한 대가로 치르는 돈이라고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물론 한자어로 사용료의 의미를 지닌 '세'(貰)자를 쓴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상당수 국민들이 세금의 '세'(稅)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전기요금은 전기세로 불리울까요.
 
이런 용어사용의 잘못된 예는 전화세, 수도세 등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데요.
 
이는 과거 정부 공기업이 관련된 사업이거나 지금 현재 공기업이 관련된 사업이기 때문에 일종의 공공재의 성격으로 이해가 되면서 굳어진 관행적인 용어입니다.
 
전기는 1887년 고종황제 때 경복궁 건천궁에 첫 등을 밝히면서 도입되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한성전기라는 회사가 설립되고, 한미전기, 일한와사, 경성전기, 조선전업 등으로 발전하면서 전기가 유료로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전기세라는 표현도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태생이 고종 황실 권력층의 산업진흥책의 하나로 출발한 만큼, 이후 발전과정도 공기업의 형태로 운영되면서 전기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용요금도 세금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이죠.
 
전화요금 역시 지금은 KT로 민영화됐지만 옛 한국통신공사가 요금을 징수하면서 전화세로 불렸구요. 지금도 한국수자원공사가 광역상수도 요금 원가를 결정하고 있는 수도요금도 수도세의 어원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각종 세금고지서와 함께 꼬박꼬박 집으로 날아오는 요금고지서는 국민들에게 세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전화요금이나 수도요금, 전화요금은 세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해당 재화를 사용한 만큼 내는 요금이고, 이익금도 국고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과 그 주주들에게 돌아갑니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금, 고용보험금 등 매월 월급에서 떼가는 준조세와도 또 다른 개념입니다. 그야말로 내가 쓴 만큼 내는 비용지출이죠.
 
그럼에도 전기세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은 공공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이들 산업을 정부가 복지차원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은 우리가 흔히들 비교하는 선진국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 비해 크게 낮습니다. 정부가 명시적으로 공공요금을 낮게 가져가야 한다고 선언한 적은 없지만 민생안정의 대책으로 늘 공공요금을 억눌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별다른 복지정책을 내 놓은게 없다보니 손쉽게 할 수 있는 공공요금 억제를 복지정책 삼아 펼쳐왔던 것이죠. 정부가 관리하고 있으니 요금보다는 세금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최근들어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보육이나 노인복지 등 복지지출이 늘고, 정부 재정난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요금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해왔던 공기업 적자 탕감도 어려워지고, 공공요금의 현실화문제도 급작스럽게 제기되고 있죠. 불과 1년여 만에 네 차례나 전기요금이 인상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국 공공요금도 눌러야 하고, 복지는 복지대로 늘려야 하는 정부 입장에선 억울하겠지만 당분간은 요금대신 세금이라는 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표현은 체감하는 국민의 자유이니까요.
 
더군다나 올해처럼 정부의 관리소홀과 공기업의 비리행위로 발생한 전력위기는 전기요금은 요금이 아닌 세금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을 더 늘어나게 만들겁니다.
 
(사진=한국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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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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