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곽보연기자] 1993년 6월7일. 이건희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삼성 전 계열사 임직원을 소집하고,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유명해진 삼성의 '신경영 선언'이다.
한국경영학회는 20일 삼성의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맞아 서울 양재동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삼성 신경영 20주년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국내외 석학들과 함께 삼성 신경영의 의미를 학문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흥수 한국경영학회장의 개회사와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의 축사를 필두로 시작된 이날 학회는 삼성 신경영의 경영학적 의미부터 ▲브랜드 ▲인사 ▲상생 ▲마케팅 ▲전략 등 다방면에서 삼성 신경영의 의미를 풀었다.
첫번째 연사로 참석한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신경영의 경영학적 의미'라는 주제 발표에서 "삼성그룹은 지난 1987년 10조원에 그쳤던 매출을 지난해 380조원까지 늘렸고, 세계 1위 제품을 26개나 가지고 있다"며 "신경영 이후 삼성은 비약적인 발전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첫번째 세션의 연사로 참석한 송재용 서울대 교수가 '신경영의 경영학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곽보연 기자)
송 교수는 "낮은 원가우위에 기반한 OEM 제조사에 불과했던 삼성이 어떻게 강한 브랜드와 프리미엄 제품을 갖춘 세계 수준의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겠느냐"며 "그 답은 패러독스 경영 시스템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신경영 이후 삼성의 경영방식은 극단이 공존하는 3가지 패러독스로 변화한다.
조직적 측면에서는 거대하면서도 스피드하고 유연한 조직으로, 전략적 측면에서는 과거 단순 제조중심의 원가우위 전략에서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지닌 전문화, 프리미엄·차별화 등의 전략으로 수정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식 경영시스템에 미국식 경영시스템을 접목시킨 '하이브리드 경영 시스템'을 갖춰 나갔다.
송 교수는 국내 대학 교수로는 최초로 권위의 학술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삼성 성장의 패러독스(The Paradox of Samsung's Rise)'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송 교수 발표에 이어 케빈 켈러(Kevin L. Keller) 다트머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삼성 글로벌 브랜드의 성과와 전망'이란 주제로 삼성 마케팅 프로그램의 특징과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켈러 교수는 삼성의 마케팅은 ▲소비자 중심이면서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디자인 중심 ▲글로벌 트렌드와 니즈에 적합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향후에도 삼성이 글로벌 브랜드로서 경쟁력을 지니려면 도전자와 다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며 "자신감 있는 소통과 과감한 행동으로 혁신을 지속하면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켈러 교수는 18일 삼성그룹 수요사장단회의에 연사로 참석해 '월드 클래스 브랜드를 만들고 관리하는 방법(Building and Management World Class Brand)'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이날 학회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교의 카타야마 히로시 교수가 '삼성의 인재와 기술을 통한 품질경영'을 주제로 강연했다.
1부 학회를 마친 뒤에는 점심식사와 함께 '신경영 20년 회고'라는 주제로 중국의 쉬바오캉 전 인민일보 기자가 나와 특별 강연을 했다.
38년 동안 기자로 재직하며 삼성의 신경영을 중국어로 해석해 책을 펴낸 그는 이날 런천 특강에서 삼성 신경영이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훌륭한 이정표와 모범답안이 됐다고 말했다.
◇중국의 인민일보에서 38년동안 기자로 활동했던 쉬바오캉 전직 기자가 자신이 직접 번역한 '삼성 신경영' 책을 손에 들고 있다.(사진=곽보연 기자)
오후에는 삼성의 인사와 상생, 마케팅, 전략 등에 대한 구체적 강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김성수 서울대 교수가 '삼성 신경영과 신인사' 주제 발표를 통해 "기술과 경쟁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미래 경영을 선도할 인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며 "축적된 인적 자본을 활용해 시장 대응 방식이나 전략을 수시로 변경해 가는 삼성의 전략적 인사는 학술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연구대상"이라고 말했다.
패트릭 라이트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경영대학장은 '효과적인 인사모델을 통해 본 삼성인사의 의미 및 성과'에 대해 강연했고, 이어 원기찬 삼성전자 인사팀 부사장과 배종석 고려대 교수가 토론 패널로 나섰다.
'사회공헌과 상생경영의 실천'이라는 주제로 열린 상생 섹션에서는 이장우 경북대 교수가 '삼성 상생경영의 성과와 미래'를 주제로, 사회공헌 분야의 전문가인 켄 알렌 시민사회컨설팅그룹 CSC LLC 대표는 '삼성의 글로벌 기업시민 활동'을 주제로 발표를 했다. 토론자로는 장인성 삼성사회봉사단 전무와 곽수근 서울대 교수가 나섰다.
마케팅 분야에서는 박찬수 고려대 교수가 '삼성의 신경영과 브랜드 경영', 유영진 템플대 교수는 '신경영에서 디자인의 전략적 역할'을 주제로 발표했고, 전략 분야에서는 '삼성과 소니'의 저자로 유명한 장세진 카이스트대 교수와 마샤 마흐무드(Pasha Mahmood) IMD대 교수가 연사로 참석했다.
이날 학회에는 교수와 학생, 기업체 임직원 등 700여명이 글로벌 연사들의 강연을 듣기 위해 자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