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대선을 두달여 앞둔 10월 8일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처음으로 이른바 'NLL 포기 발언'을 주장했다.
그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이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앞으로 남측은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며 'NLL 발언'을 대선 한 가운데로 끌어들였다.
그는 당시 대화록 입수 경로에 대해 2009년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할 당시에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며 대화록을 직접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른다면 정 의원은 이미 대화록 내용을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알고 있으면서 계속 쥐고 있다가 대선에 즈음해 터뜨린 셈이 된다.
앞선 9월 13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서해에서 NLL만 존중된다면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해공동어로구역 및 평화수역 설정방안 등도 북한과 논의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입장은 최근 공개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속 노 전 대통령의 주장과 일치한다.
박 후보의 태도는 그러나 정문헌 의원의 의혹제기 이후 바뀐다.
박 후보는 이후 문재인 후보가 주장한 '공동어로구역' 공약에 대해 12월4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퍼주기를 통한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며 "NLL이 사실상 영해선이라는 문 후보 발언의 진정성을 못 믿겠다"고 공세를 폈다.
◇박근혜 대통령(사진=청와대)
NLL 논란은 첫 의혹 제기 이후 대선 기간을 내내 관통하며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NLL 논란을 틈날때 마다 제기하며 여론을 자극하고 나섰다.
박 후보는 10월29일 "NLL은 정치가 아닌 국가 안위의 문제인데 확답도 못하는 야당, 6.25 영웅을 민족반역자라고 부르는 당에 나라를 맡길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또 해군참모총장 출신의 김성찬 새누리당 의원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북한이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후 그것을 안 들어준다는 불만 때문에 저질렀다"며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마치 노 대통령의 책임인 것처럼 몰았다.
서상기 의원은 "문 후보가 NLL 포기 발언 의혹과 관련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 국가정보원장과 통일부장관의 서면 답변을 통해 확인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이같은 공세는 대선 투표 직전까지 계속됐다. 이 와중에 김무성 의원은 부산유세에서 NLL 대화록 내용이라며 그대로 읽어보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런 새누리당의 공세에 문재인 캠프 공보단장이던 우상호 의원은 "나라가 어떻게 되든 무조건 이기고 보자며 덤벼드는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며 개탄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경찰도 '새누리당 선거운동'에 적극 나섰다.
'국정원 대선개입'을 처음 세상에 알린 '댓글 사건'에서 경찰은 국정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증거를 발견하고도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해 대선 3일 전, 엉터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민주당이 국정원을 무고한 것처럼 만들었다.
시민사회에서는 이제 지난 대선 결과에 이같은 권력기관들을 동원한 선거운동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등은 지난 21일 ‘국정원 대선개입과 검경의 축소수사를 규탄하는 천주교 시국선언’을 통해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은 박빙의 승부였던 지난 18대 대선 선거결과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사안"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또 지난 대선 당시부터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도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것으로 18대 대선 결과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맹비난했다.
다만 민주당에서는 몇몇 의원들이 "대선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식의 개인 의견을 개진했을 뿐, 당의 공식 입장에서 '대선 결과'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선 결과'에 의문을 제기할 경우 선거결과에 불복종하는 모습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엄청난 사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국정원 사건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식으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여전히 "NLL 포기 발언은 있었고, 국정원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잘못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