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축소 시기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경제 회복세를 놓고 연준 내부 위원들이 의견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 개선되고 물가가 상승하는 등 경기 활성화의 기미가 보이면 양적완화를 축소한다는 연준 내부의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이나 경제지표를 놓고 해석차가 존재해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버냉키 의장은 지난 5월말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언급한 후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자 의사록 공개후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양적완화 이어가자..노동시장 회복 증거 '필요'
이날 공개된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 의사록이 공개된 이후 전미경제연구소(NRER)가 주최한 행사에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당분간 상당 수준의 경기부양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연방 정부 지출이 삭감되는 ‘시퀘스터’가 이어지고 증세가 이루어진 마당에 양적완화가 조기에 종료되면 노동시장 회복세가 더딜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버냉키 의장은 또 "최근 실업률이나 인플레이션을 보면 경기부양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현 7.6%의 실업률로 노동시장이 건전하다고 평가해서는 곤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실업률이 6.5% 아래로 내려가도 금리를 바로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준금리 인상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버냉키의 발언은 올해 말쯤 자산매입 축소를 검토하고 내년 중순에 종료할 것이라는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이다.
더불어 표결권이 있는 FOMC 이사 12명 중 다수(many)도 양적완화를 조속히 축소하기보다 노동시장이 개선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다수의 연준 위원들이 미국 경제에 자금 공급이 필요하다고 판단, 양적완화 조기 축소 의견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의 실업률은 여전히 7.6%로 양적완화 개시 이전보다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연준이 정한 실업률 목표치인 6.5%보다 1.1% 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에릭 그린 TD증권 연구원은 "9월부터 채권 매입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게 다수 의견이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대다수 위원은 노동시장이 개선되고 있다는 증거를 보고 싶어 한다"고 진단했다
◇연준, 양적완화 유지 암시..시장 '안도'
버냉키의 발언에 미국, 아시아를 비롯한 주요국 증시가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미국 중앙은행이 풀었던 돈을 거둬들일 것이라는 불안감이 누그러진 것이다.
◇S&P 선물 <자료제공=마켓워치>
골드만삭스가 아시아 주요국 증시 상황을 반영하는 MSCI 아·태평양 지수는 버냉키의 양적완화 유지 발언 이후 0.8% 상승했다. 비슷한 시각, 미국의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500 선물은 1.0% 올랐다.
아시아 국가별로는 중국의 상해종합지수가 장중 3.41% 뛰었고 코스피 지수도 2.93% 도약했다. 달러 대비 엔화 강세에도 일본 닛케이 225지수도 0.39%, 홍콩 항셍지수는 2.65% 급등 중이다.
내털리 트루나우 칼버트 인베스트먼트 수석 투자 전문가는 "증권시장은 경기부양책을 좋아한다"며 "주가에 상승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적완화를 이어가겠다는 버냉키의 발언은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강세를 나타내던 달러화는 버냉키 발언에 주요국 통화 대비 약세 전환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요 6개국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ICE달러 인덱스는 이날 84.027로 전일의 84.156보다 내려갔다.
달러·엔 환율은 전날대비 1.46% 떨어진 99.67엔으로 거래됐고, 유로·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1.54% 상승한 1.2978달러를 나타냈다.
채권시장도 움직였다. 장 중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전장대비 1bp 하락한 2.626%를 기록했고 한국 국고채 10년물도 전날보다 10bp 내린 3.43%로 집계됐다.
미구엘 오덴시알 CMC마켓 트레이더는 "버냉키의 이번 발언은 미국증시뿐 아니라 아시아시장 전체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美 고용·경기 회복이 관건..출구전략 시간표에 '여지'
이번 FOMC의사록과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점진적이지만 출구전략의 추세적인 방향은 확인하면서도 시행 시기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겨뒀다.
월가 전문가들은 경제 회복세가 완연하게 눈에 띄면 연준이 올해 말부터 양적완화를 축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루퍼트 액션이코노민스 고정 자산 분석가는 "연준 위원들의 의견이 각각 달라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짙어진 상황"이라며 "다만 대부분의 위원들은 오는 10월에 양적완화가 축소될 것으로 예견하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JP모건 프라이빗뱅킹은 "최근 미국 국채 금리 추이를 볼 때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9월 정책회의에서 양적완화 축소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준 내부에서도 표결권이 없는 위원들을 합한 총 19명의 연준 위원 중 절반이 올 안에 양적완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이후 실업률이 하락세로 접어드는 등 노동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6월 실업률은 7.6%로 전월과 차이가 없었지만, 비농업 부문 고용자 수는 19만5000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문가 예상치인 16만5000명을 웃도는 수치다.
다나 사포르타 트레디트스위스 이코노미스트는 “6월 고용지표는 연준 위원들이 바라던 노동시장의 회복세를 보여준 것”이라며 “이는 양적완화 축소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도 양적완화 조기 축소 의견을 뒷받침해주는 부분이다.
연준은 미국 경제가 올해 2.4%-2.6%, 내년에는 3%-3.5%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올해와 내년 전문가 예상치인 1.9%, 2.7%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버냉키 의장도 이날 "주택시장은 미국의 여러 경제 분야 중 밝은 부문"이라며 "미국 경제 전망은 꽤 낙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양적완화 축소 시기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는 17~18일로 예정된 버냉키 의장의 상·하원 청문회와 오는 17~28일에 열리는 FOMC 정례회의에 일찍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브라이언 에드먼즈 캔터 피츠제럴드 금리 책임자는 “현재 상황에서 연준의 출구전략을 예상하기보다 관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