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국정원의 잇따른 정치개입을 규탄하는 '범국민 촛불집회'가 13일 저녁 8시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250개 '국정원 대응 시국회의' 주최로 지난달 28일과 지난 6일에 이어 세번째로 열린 집회다. 이날 행사에는 주최측 추산 2만3000여명(경찰추산 5000여명)이 참가했다.
정청래·박영선·김제남 의원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 등 주요 정치인들도 20여명 참석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일부 참가자들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으로 지난 대선의 정당성이 훼손됐다며 박 대통령의 정통성의 문제를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첫 발언에 나선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국정원에 의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납치되고 공격 받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무처장은 "오만불손한 국정원이 아직도 정치개입을 하고 있는 '정치공작권력'을 가만히 둘 수 없다"며 "국정원이 지금 자기 무덤을 파 박 대통령의 책임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새누리당의 짓거리가 합리적이라 생각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새누리당은 민심을 착각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발언자로 나선 한 철도노동자는 "박 대통령이 국정원의 행태를 알았다면 철도민영화처럼 쌩깐 것이고, 몰랐다고 한다면 국정원과 MB(이명박 전 대통령) 입에서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 했다'고 답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부끄러움이 있어야 한다"며 "더러운 술수로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노원구 월계동에 사는 조은율 아기의 엄마·아빠는 무대 위에 올라 "국정원에 강탈된 민주주의를 갖고 오지 못하면 지금뿐만 아니라 아이들 세대까지도 민주주의를 찾지 못할 것 같다"며 "시민 의무를 다하는 멋진 가족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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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의 이광철 변호사는 "국정원의 정치, 대선 개입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국정원의 행태의 연장선에서 너무도 당연히 발생한 사실들"이라며 이명박 정부 하에서 국정원이 저질렀던 정치인 사찰·UN인권특별보조관 사찰·민간인 사찰 등의 행태를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국정원의 이같은 행태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대선은 하나마나하게 된다. 새누리당이 영구집권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지금은 민주공화국을 지키는 중차대한 시기"라고 현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회사측의 손해배상과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비관하며 자살한 故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을 언급하며 "부정선거가 아니었다면 최강서가 목맥겠나"고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했다.
김 지도위원은 "국정원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며 "안기부 시절에는 간첩을 만들더니, 지금 국정원은 대통령을 만든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참석 의원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정청래 의원은 '귀태' 발언으로 국회 일정을 올스톱시켰던 새누리당의 행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정 의원은 "현직 대통령이 소중하면 전직 대통령도 소중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가 소중하면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의 명예도 소중하다"고 말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1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비판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정 의원은 새누리당 등이 '서해평화수역 조성을 위해 NLL 인근의 군대를 후방으로 미루는 것은 NLL 포기'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의 공약을 거론하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DMZ 세계평화공원도 군대를 뒤로 물리고 청원경찰 등을 통해서 관리하자는 것 아닌가. 군대를 후방으로 물리면 휴전선을 포기하는 것 아닌가"라며 "이것이 바로 종북세력"이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아울러 국정조사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 12월14일부터 16일까지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밝히겠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없었단 것도 증명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미국 LA교포들이 국정원 규탄 집회를 하며 든 '바뀐 애는 방 빼'라는 피켓의 내용에 빗대 "바꾼 애들 몽땅 처벌하라"며 "박 대통령은 본인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분명히 밝히고, 제1 국기문란 원세훈과 제2 국기문란 남재준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게 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그들은 범죄행각이 드러나자 국가기관을 총 동원해 NLL 논란 일으켜 노 대통령을 부관참시하고 10.4 선언을 짓밟고 있다"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의 미래를 짓밟는 저들, 역사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이라고 맹비난했다.
이 대표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법으로 금지된 지 벌써 16년 전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고스란히 '중앙정보부'로 돌아갔다"며 "국정원이 휘두르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박탈해야만 국정원의 정치개입 여지가 없어진다. 국제테러, 국제 마약범죄 등을 정보수집을 전담하는 별도 기구를 만들고, 민주주의 파괴집단인 국정원은 해체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원 대응 시국회의' 소속 회원이 모금함을 들고 촛불집회 참석자들에게 자발적인 후원금을 걷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국정원 사건은 나와 무관하다'고 밝힌 박 대통령 발언을 언급하며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란 말이 있다. 누가 관련이 있다고 했나. 직속기관이니까 사과하라고 한 것"이라며 "그럴 일 전혀 없는 일이지만 국정원이 설사 문재인 후보를 위해서 불법선거운동을 했더라도 지금 사과할 당사자는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니. 저는 묻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님, 당황하셨습니까. 무슨 일이 있길래 그리 당황하셨습니까"라고 비꼬았다.
노 대표는 "남재준 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불법적으로 공개했다. 두 가지가 가능하다. 대통령 지시했거나 지시가 없었음에도 공개했거나다. 남 원장이 대통령 지시 없었음에도 무단으로 공개했다면 즉각 해임하라. 만약 그게 아니라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공개했다면 남 원장 해임하지 말고 박 대통령이 사임하라"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를 향해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새누리당을 내세워 국정조사를 방해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새누리당을 상대하지 말고 오직 청와대만을 상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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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전날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의 집회를 언급하며 한 참가자의 전날 집회 발언을 소개했다.
김 총학생회장에 따르면, 전날 집회의 한 참가자는 "새누리당과 대통령은 귀태 발언으로 인해 국가의 정체성이 훼손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권의 정체성과 정당성은 깨끗한 선거로부터 나온다. 원세훈이 선거개입으로 기소된 순간 정체성은 흔들린 것이다. 더 이상 국면을 새로운 소재들로 전환하지 말고 국가기관, 국정원, 국방부가 더 이상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수 있도록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말했다.
김 총학생회장은 "학교로 돌아가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있다. 학생들도 함께 나가자'고 전달해 다음부터 함께 나오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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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참가자들은 언론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지난해 MBC노동조합 파업 당시에 박근혜 당시 후보는 노동조합이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하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될 것이라고 했다. 믿지 않았지만 믿으려 노력했다"며 "이게 순리인가"라고 박 대통령에게 반문했다.
이 기자는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다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국정원에 의해 민주주의가 유린되도 언론의 자유 없이는 민주주의의 자유가 없다. 시민 여러분이 다음에 언론개혁을 위해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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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 나선 밴드 '블랙스완'도 "정치가 잘못되도 언론이 잘되면 그 나라가 잘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치도, 언론도 잘못돼 있다"며 "보수언론, 공중파가 제대로된 보도를 내보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대 위 발언 이외에 집회 참가자들도 국정원 규탄에 목소리를 높였다.
들꽃향민교회 교우인 대학생 김샘(25)씨는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가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의한 것이었다. 당선 이후에도 쌍용차 분향소의 철거,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 등의 하나님의 정책에 맞지 않아 기독교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이곳에 나왔다"고 말했다.
개인택시업을 하는 이규한(60)씨는 "새누리당과 그 전신 정당들이 북한을 이용하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때부터"라며 "북한과 평화로우면 할일이 없어져 일부러 '북풍'을 통해 긴장을 조성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