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세이커스 선수 시절 현주엽. (사진=LG세이커스)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서정적인 멜로디와 첫사랑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노랫말로 올해 상반기 많은 인기를 얻던 '굿바이 마이 로맨스(Goodbye To Romance, 써니힐)'의 가사에는 "농구스타처럼 멋있었던 그댈 보는 게 그렇게 좋았죠"란 부분이 있다. 멋있는 모습과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첫사랑을 회상하며 농구 선수를 떠올린 것이다.
현란한 몸짓을 펼치던 훤칠한 키의 농구 선수들이 연예인 버금가는 매우 많은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추억의 드라마가 된 1994년의 '마지막 승부'(MBC)는 이같은 농구 인기에 불을 지폈다. 학교 운동장은 물론 공원에도 골대만 있으면 언제든 농구공을 지닌 청소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0년대 초까지 야구와 축구에 못지않은 많은 인기를 누려오던 농구의 대중 인기는 이후 급속히 몰락했다. '비인기팀'으로 꼽히는 구단은 물론 '인기팀'으로 불린 구단도 관중의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지난해 프로야구계의 목표인 '700만 관중'은 언감생심이다. 구단의 안정적인 존속을 위해 관중을 유치해야하는 상황에 왔다.
◇잇따른 사건사고에 시름을 앓는 국내 농구
농구계의 위기에는 다양한 요소가 한꺼번에 작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타'의 부재가 컸다.
유럽과 달리 국내 축구가 여름에 휴식기를 갖는 상황에서 농구는 충분히 겨울 스포츠의 주도권을 잡을 여건이 됐다. 그러나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 흔하게 배출되던 스타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고, 농구계의 '스타'로 불리워도 야구선수나 축구선수에 비해서 파급력이 적었다. 많은 팬들의 사인 공세로 인해 섣불리 길거리 다니기 힘들었다는 푸념은 이제는 오래전 이야기다.
게다가 왕년의 농구스타들이 저지른 잇따른 일탈 사례는 팬들을 농구계에서 외면하도록 만들고 있다. 최근 농구팬들은 '레전드'라고 불리울만한 선수들을 스포츠 뉴스가 아닌 사건사고 뉴스 등으로 접하고 있다. 승부조작(강동희·1심 재판 진행 중), 동업자 상습 폭행(방성윤·검찰 수사 진행 중), 쌍둥이 처형 살해 및 시체 유기(정상현), 음주운전 후 불법유턴 및 도주(현주엽) 등 범죄 종류도 폭넓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전날 오후 9시쯤 서울 강남구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피하고 달아난 현주엽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현주엽은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 경찰차를 보자 불법유턴을 했고 이후 차를 버린 채로 도주했다. 현주엽은 시민 2명에 의해 붙잡혔다. 당시 현주엽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인 0.053%였다. 현주엽은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동창으로 지낸 친구의 투자 권유로 17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사기를 당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주 전인 지난 3일에는 경기 화성동부경찰서가 아내의 쌍둥이 언니 최모(32)씨의 목을 졸라서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사체를 암매장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로 정상헌을 긴급체포했다. 정상헌은 고교 시절 방성윤과 고교랭킹 1·2위를 다투면서 '농구천재'로 불렸지만 대학 시절은 물론 프로팀에 입단한 후로도 팀 이탈을 밥먹듯 하다 2009년 은퇴했다.
정상헌과 같은 1982년생으로 농구 스타로서 군림하던 방성윤은 지인의 동업자를 아이스하키 스틱과 골프채로 폭행한 혐의로 최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휘문고 재학 시절에는 '차세대 대형 슈터'로 불리우고 연세대 재학 중이던 2002년에는 유일한 대학 선수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금메달의 주역이던 그는 잦은 부상끝에 결국 2011년 은퇴했다. 하지만 이번 불미스런 일로 지난해 9월 고소당해 매스컴에 거론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검찰에 다시 불려가기도 했다.
선수 생활은 물론 지도자로도 성공한 인물로 평가받던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 전 감독은 2011년 2월26일, 3월11·13·19일 경기 당시 브로커들에게 경기당 700만~1500만원(총 4700만원)을 받고 후보를 기용해 승부를 조작한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를 받고 있다. 결국 지난 18일 강 전 감독은 징역 2년과 추징금 4700만 원을 구형받고 다음달 8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 (사진=KBL Photo)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할 KBL
과거 국내 농구의 전성기를 이끌던 실업농구와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기량 쇠퇴와 잇단 범죄로 인해 오명을 쓰고 있지만 새로운 농구 스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사회적 인기와 파급력도 예전만 못하다.
김승현은 잇따른 부상과 이면계약 파동 등으로 전성기 기량을 되찾지 못하고 있고, 김주성이 그나마 뛰고 있지만 30대 중반이 넘는 나이로 기량저하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국보 센터' 서장훈이 최근 예능프로그램에 쫄쫄이 바지 차림으로 등장했다. 오랜 그의 팬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성기를 지난 '농구계 레전드'가 TV에 출연해서 어색한 몸개그를 펼치는 모습은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서장훈의 어려운 결단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으로는 '이렇게 망가지지 않으면 매스컴에 등장할 농구 스타가 없다'는 점에 씁쓸함도 느낀다.
그나마 현역 농구선수 중 예능에서 함께 뒹굴만한 선수는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국제대회 A매치를 TV에서 밤에 녹화방송조차 보기 어려운 상황은 현재 농구계가 처한 위기를 방증한다. 한국 농구가 다시 중흥기를 맞고자 한다면 KBL을 비롯한 농구 유관기관 및 농구인이 나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