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대화록 실종으로 누가 가장 득을 보고 있나

입력 : 2013-07-24 오후 3:40:27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 불법적으로 인터넷 여론을 조작해 새누리당에 유리하도록 '공작'을 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내내 방어모드에 수세의 처지였다.
 
박 대통령은 아예 입을 닫았고 새누리당은 여직원 인권 유린이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국정원의 불법 선거운동을 조사하려는 시도를 가로막고 나섰다.
 
이때 김무성 의원이 대선때 대화록을 봤다는 '셀프고백'이 터지고 박근혜 후보도 참석한 부산 유세에서 대화록 일부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말하는 장면이 언론보도로 드러나면서 새누리당은 결정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이 시점에서 새누리당이 선택한 국면전환 카드는 역시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대화록이었다.
 
새누리당은 '찔릴 것 없으면 까봐라'라는 식으로 사초를 들춰보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고 문재인 의원은 NLL 논란이 반복적으로 악용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이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로 대화록 공개에 응하게 됐다.
 
여기까지가 대화록 실종이 벌어지기 전까지 상황이다.
 
국회가 재적의원 2/3의 찬성 절차까지 밟아가며 대화록 열람에 나섰지만 정작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넘기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수세모드에서 공세모드로 돌변한다.
 
대화록을 찾지 못한 상황을 노 대통령의 기록 미이관으로 몰아부치며 일거에 국면을 전환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러한 공세에 이렇다할 대꾸 한마디 못하고 새누리당의 공세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만들어 주고 있다. '다같이 혼란한 상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나만 불리한 상황'으로 만들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가 대화록을 넘기지 않았다는 새누리당 주장의 근거는 NLL 포기 발언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해 기록을 폐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겨자씨만한 상식만 있어도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다.
 
국정원에 대화록을 남기라고 지시한 노 대통령이 왜 기록원에는 자료를 넘기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노 대통령은 자료가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기록원에 들어가면 수십년간 아무도 열람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후임 대통령이 보고 참고할 수 있도록 따로 국정원도 대화록을 갖고 있으라고 지시한 사람이다.
 
국정원이 대화록을 갖고 있을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 바로 노 대통령이란 얘기다.
 
새누리당은 지금 노 대통령이 국정원에 대화록을 준 사실엔 입을 다물고 기록원에 대화록을 넘기지 않았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는 중이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공세에 맞서 이명박 정부가 대화록을 유실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부가 대화록을 없애서 무슨 이득이냐며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실제로 이 논리는 지금 상당히 그럴싸하게 인식되는 듯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무슨 이득을 얻고 있는 지는 지금 돌아가는 정국이 설명해 주고 있다. 대화록 실종으로 덕을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수세모드에서 공세모드로 유리한 국면을 얻은 새누리당이다.
 
또 애초에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이 의심했듯 국정원 대화록과 기록원에 넘긴 대화록이 다를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명예를 지킨다'며 세계 어느나라도 유례가 없는 정상간의 회담 대화록을 공개했을때 이미 원본과 다를 가능성이 제기됐다. 국정원과 여당에 유리하게 내용이 첨삭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화록과 비교를 해보면 국정원 대화록의 편집 여부는 당장에 드러나게 된다.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이 가장 핵심적으로 확인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화록이 없었으면 하고 진짜 바랄 사람들이 누구겠는가. 이런 판단엔 겨자씨만한 상식도 필요없다.
 
노무현 정부가 대화록을 넘기지 않았다는 주장의 또 한가지 근거는 조명균 전 청와대비서관이 검찰에서 증언했다는 내용이다.
 
일부 언론과 새누리당은 조 비서관이 검찰 소환조사에서 노 대통령이 대화록 폐기를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기록이 폐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같은 언론보도는 조 비서관이 직접 말한 게 아니다. 또 그러한 취지의 진술을 했다는 식으로 '전언에 전언'을, 그것도 부정확하게 인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조 비서관의 직접 증언을 들은 것은 노무현 재단이 유일하다.
 
재단은 지난 23일 언론보도가 나온 직후 조 비서관과 직접 통화해 "대통령이 대화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며 검찰에서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24일 국정원 국정조사에서도 황교안 법무장관은 "(조 비서관이) 확정적 진술은 하지 않았으며 언론보도는 검찰 진술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분명히 말했다.
 
전언을 반복하는 것보다 당사자 본인이 직접 설명한 내용이 우선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함은 당연하다.
 
지금 상황은 노 대통령이 기록을 넘기지 않았을 증거나 이유는 결국 하나도 없고 기록을 분명히 넘겼다는 증언만 숱하게 나오는 한편 새누리당과 전현 정부가 원래의 기록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할 가능성은 나타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볼 때 대화록 유실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새누리 출신 전현직 대통령들이 받는게 이치에 맞다.
 
이제 민주당이 할일은 국정원 국정조사와 함께 대화록을 더 찾아보는 일이다. 스스로는 국정조사에 집중하는 한편 믿을 수 있는 공정한 기관과 방법을 통해 대화록을 찾아보고 그것이 망실되었다면 누가 왜 없앴는지 확인해야 한다.
 
국정원 대화록이 NLL 논란을 부추겨 대선에 악용된만큼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조사해야 하는 국정조사에서 이 문제를 밝히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호석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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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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