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도 국내외 증시가 급락세를 나타내면서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각) 뉴욕증시는 2개월 만에 다우 지수 8,000선이 무너지는 급락세를 보였으며, 국내 증시도 코스피지수가 21일 개장 직후 40포인트 넘게 하락하는 등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기업 실적 악화, 국내 증시의 매수기반 부족 등 내우외환이 겹치는 모습이라며 증시의 본격적인 회복을 기대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해외서는 2차 금융위기 우려 =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으로 전 미국이 들썩거렸던 전날 뉴욕증시의 급락을 불러온 것은 지난해 10월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한 금융위기가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작년 말부터 신용경색이 점차 해소되고 있다는 투자자들의 안도감을 무참히 짓밟기라도 하듯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대형 금융기관은 엄청난 규모의 손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영국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자산 상각 등으로 작년 420억달러의 손실이 예상되며, 미국의 대형 자산운용사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채권 관련 미실현 손실이 작년 9월말 33억달러에서 12월말 63억달러로 급증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금융위기에 따른 미국의 손실은 3조6천억달러에 달할 것이며, 이 예상이 현실로 나타나면 미국 금융시스템은 지급불능 상태로 빠져들 것이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 악화도 증시의 투자심리를 더욱 싸늘하게 얼어붙게 하고 있다.
알루미늄 제조업체 알코아를 비롯해 씨티그룹, JP모건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등이 예상보다 못한 실적을 내놓으면서 올해 기업 이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
◇ 국내도 수급 악화 등 악재 산적 = 해외 악재와 더불어 국내 증시의 암초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국내 증시의 가장 중요한 매수 주체인 투신권의 매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악재로 지적됐다. 이는 주식형 펀드의 자금 유출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올해 들어 지난 19일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의 자금 유입을 살펴보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하고 1천238억원 순유출을 기록했다. 작년 11월 2천948억원, 12월 1천451억원 순유입을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미래에셋증권 정승재 애널리스트는 "연기금이나 증시안정펀드가 지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만 증시의 본격적인 상승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신권의 적극적인 주식 매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가 미약하다는 시장의 평가도 주가 상승을 막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시공능력 상위 100위 내 92개 건설사와 19개 중소 조선사 중 겨우 16개 기업만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투자심리 회복을 불러올 만한 `옥석 가리기' 수준이 결코 아니라는 평가이다.
굿모닝신한증권의 정의석 투자분석부장은 "이번 구조조정의 의미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으나 구조조정다운 구조조정으로 보기는 힘들다"며 "차라리 요식행위에 가깝다"고 혹평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이같은 대내외 악재로 인해 당분간 상승세 전환이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동부증권의 지기호 투자전략팀장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본격적으로 집행되기 전까지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과 실적악화 우려 등으로 글로벌 증시는 당분간 상승 동력을 찾기 힘든데다 국내 증시는 내부적인 악재까지 겹쳐 상승세 반전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지나친 비관론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KB투자증권의 김성노 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 1차 금융위기 당시보다는 금융시스템이나 거시변수 등이 더 우호적이어서 추가 하락은 제한적일 전망이며 단기적으로 주식비중 확대를 고려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