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경진기자]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서민층과 증산층의 세금부담이 가중된다는 비판이 제기된 내년도 세제개편안에 대해 전면 수정을 지시한 것은 여론악화로 인해 하반기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에 분노한 각계 각층의 시국선언과 촛불시위가 전국에 걸쳐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자칫 '증세논란'까지 더해져 하반기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오히려 세제개편안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박 대통령의 무책임하고 뒤늦은 재검토 지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기획재정부가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직후 서민과 중산층 부담이 크다는 비난이 거세지자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9일 봉급생활자의 소득공제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비판에 대해 "그 부분은 참 죄송스러운 부분이 있다. 입이 열개라도 다른 설명을 못드리겠고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수석은 "봉급생활자만 비과세 감면을 축소한 것은 아니고, 종합소득세를 내는 고소득 자영업자한테도 부담이 확대된다"면서 "아무래도 봉급생활자들은 다른 분들보다 여건이 낫지 않나. 이해를 해주십사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그는 청와대가 세제개편안이 봉급생활자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재검토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내비쳐 논란을 키웠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입장은 며칠만에 급선회했다.
야당이 '증세논란' 문제를 집중제기하면서 박 대통령의 책임을 추궁하고 여권 내에서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자 청와대가 긴급 진화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세제개편안은)정부가 추진하는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한 것은 사실상 여론에 백기를 든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박 대통령의 세제개편안 원전 재검토 지시에 대해 "최근 며칠간 분노한 국민에 대한 항복 선언"이라며 "박 대통령은 심각한 국정 혼란을 야기한 이번 사태에 대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당정청 협의과정에서 세제개편안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바닥 뒤집듯이 재검토를 지시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여론에 밀려 재검토를 지시했지만, 여전히 세제개편안의 방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가운데 한편으로 서민층 지원을 강조한 점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세제개편안은 저소득층은 세금이 줄고 고소득층은 세 부담이 상당히 늘어나는 등 과세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이라며 "내년도 예산안 편성에 서민, 중산층 예산 지원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정원 댓글사건과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 등 정부와 여권이 수세적인 입장에 몰렸던 사건에는 느긋했던 박 대통령이 증세논란에 발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은 정치 이슈와 달리 민생 이슈가 갖는 파급력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민과 중산층의 경제적 피해를 수반하는 증세논란이 가시지 않을 경우 민생을 강조하면서 주도권을 쥐려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하반기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10월 재·보선 결과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정책실패를 자인하는 모양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