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의 '고혈', 하우스푸어를 살리다(?)

급등한 전셋값으로 대출 상환해 금융 부담에서 탈출

입력 : 2013-08-21 오전 10:56:21
[뉴스토마토 한승수기자] #5년 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아파트를 매입한 조 씨. 조 씨는 이 아파트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4억8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상환해야하는 월리금만 300만원 가까이 된다.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파트 값이라도 올라주면 괜찮았겠지만 9억3000만원에 매입한 이 아파트의 최근 시세는 8억6000만원~9억원 선이다. 이 마저도 매도가 쉽지 않다. 상투에서 추격 매수에 들어간 전형적인 하우스푸어다.
 
그런데 최근 조 씨의 숨통이 트였다. 전셋값이 급등하며 시세가 6억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조씨는 전세 보증금으로 받은 돈으로 남은 대출 3억5000만원을 상환하고, 위치상 불편함을 감수하고 한강신도시에 2억원짜리 전세집에 들어갔다.
 
조씨는 1~2년 후 시장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며 강남의 집을 놓지 않고 있다.
 
전세난으로 인해 세입자들의 곡소리는 점차 높아지는데 반해 지난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하우스푸어의 하소연은 조금 잦아들었다. 급등하는 전셋값으로 대출의 일부를 상환하거나 반전세로 원리금을 충당하며 일단 숨통이 트인 듯 보인다.
 
21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금융 위기 이후 5년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평균 33.1% 상승했다. 같은 기간 경기도 화성시는 59.4% 상승했으며, 서울에서는 송파구가 43.3%로 가장 많이 올랐다.
 
실제 경기 화성 주공 전용 59.47㎡는 2008년 8000만원 선이었던 전셋값이 현재 1억4000만원으로 뛰었다. 이 아파트의 매매시세는 1억6000만원~1얼6800만원이다. 전세가율은 83%에 달한다.
 
송파구 잠실 리센츠 전용 84.99㎡는 같은 기간 2억4000만원에서 5억원~6억원 대로 급등했다. 전세가율은 26%에서 66%로 높아졌다.
 
(사진=한승수)
 
전셋값 급등에 급매물도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있다. 급등한 전세금으로 자금 압박에서 벗어나자 정부의 부동산 정책 동향을 살피며 매도 타이밍을 늦추는 눈치다.
 
박찬식 용인 동천태양공인 대표는 "매물을 찾는 매수인도 없지만 급매물을 내놓는 매도인들도 없어 거래는 거의 없다"며 "올라간 전세가격으로 인해 자금 급한 매도인들이 시장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매·거래 시장이 살아나지 못한 채 전세값 상승액으로 봉합한 하우스푸어의 상처는 미봉책에 그칠 수 있어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전세시장이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더 큰 피해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보증금은 이자가 없을 뿐 세입자에게 빌린 빚이다. 전세난이 진정될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세입자와 돌려줄 돈이 없는 집주인의 다툼이 거세질 수 있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는 "천정부지로 올라간 전세금은 양날의 검이다"면서 "전세보증금은 이자가 없을 뿐 은행 대출과 마찬가지로 빚이다.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만약 전세가 내려가고 이주 수요가 생길 경우 이로 인한 부작용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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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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