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재벌총수 '빅딜' 성사..상법개정안 '원점'

30대그룹, 155조 투자 및 14만명 고용 계획 전달

입력 : 2013-08-28 오후 3:20:04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청와대와 재벌그룹 간의 빅딜이 성사됐다. 재계의 투자와 고용 카드는 여전히 유효했다. 대신 상법 개정안을 비롯한 일련의 경제민주화에 있어 재검토 선언을 얻어냈다. 양측 다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10대 재벌그룹 총수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경제민주화에 대한 재계의 우려 덜기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특히 최근 경제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도 잘 알고 있다”면서 “정부가 신중히 검토해서 많은 의견을 청취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먼저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노력해주고 계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며 “지난 4월 초 30대 그룹이 149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과 12만8000명의 신규채용 계획을 발표한 것이 경기부양 노력에 큰 힘이 됐다”고 인사했다.
 
그는 “기업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정부도 추경을 비롯해 경기활력 회복을 위해 정책을 펼친 결과, 최근 취업자 수가 2개월 연속 30만명 이상 늘고 2분기 성장률도 9분기 만에 0%대 성장에서 벗어나게 됐다”면서도 “하지만 아직은 어려운 점이 많다”고 고백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과 신흥국의 금융위기 우려를 비롯해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며 “경제 활성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가 투자 확대인데 요즘같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를 늘리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곧 본론을 꺼냈다. 그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맞을 때마다 과감한 선제적 투자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또 경제를 새롭게 일으키는 동력이 되어왔다”며 “지금이야말로 각 기업에서 적극적이고 선도적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일자리 창출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기업인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제도를 만들어서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역할을 정의했다.
 
그러면서 “규제 전반을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불합리한 규제가 새로 도입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경제민주화 입법 과정에서 많은 고심이 있으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회장단 여러분의 협조와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며 “그 길을 가는데 어려움이나 해결할 일이 있으면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도와드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재계를 대표해 30대 그룹의 상반기 투자 및 고용 실적과 하반기 계획을 전달했다. 그는 “산업부 발표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상반기 투자 집행률이 연초 계획 대비 다소 부족했다”며 내수와 수출의 동반부진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현재 30대 그룹은 금년도 연간 전체 계획으로는 오히려 연초 대비 약 6조원 증가한 155조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면서 “연간 투자계획이 이행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30대 그룹의 상반기 고용 실적은 약 8만명으로, 연간계획인 12만7000여명의 62%가 진행된 상황”이라며 “하반기에도 고용 확대 노력을 통해 연간 계획에 비해 1만3000명 증가한 연간 약 14만명의 고용이행 계획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들은 정부의 경제 활성화 대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면서 “연간 투자 및 고용 계획이 차질 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기업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기업 활동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경제 활성화에 앞장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바랐다.
 
재계가 이른바 통 큰 투자와 고용 계획을 준비하자 박 대통령은 대선공약 후퇴라는 부담을 무릎 쓰고 상법 개정안의 완화와 속도조절로 화답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경제민주화, 특히 재벌개혁의 시금석으로 평가됨에도 경제 위기가 생각보다 심하고 재계 등 보수층의 반발도 커짐에 따라 청와대가 한발 물러섰다는 분석이다.
 
당정청이 이미 입법 예고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수위 완화와 속도조절 등 사실상 원점 재검토에 착수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이날 상법 개정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함에 따라 이 같은 움직임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반면 여권 일각에서는 10대그룹의 상반기 투자가 당초 계획에 비해 크게 못 미친 점을 지적하며 재계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실제 정부와 민간 통계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오전 내놓은 '2013년 투자·고용 계획 및 상반기 실적'에 따르면, 30대그룹의 올 상반기 투자실적은 61조8000억원으로 연초 계획(154조7000원) 대비 41.5%에 그쳤다. 69조원을 집행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10.4% 줄었다.
 
앞서 26일 CEO스코어는 대상을 10대그룹으로 좁힌 결과를 내놨다. 그 결과, 상반기 10대그룹의 투자 집행은 전년 대비 8.2% 감소한 36조70억원으로 집계됐다. 포스코(+52.0%)와 현대중공업(+40.1%), 현대차그룹(+15.9%)을 제외한 7개 그룹은 일제히 투자를 줄여 연초 약속을 무색케 했다.
 
특히 삼성그룹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27.8%(4조6180억원) 줄어든 12조170억원만을 집행했다. 삼성전자의 투자감소분만 4조8630억원으로 10대그룹 전체의 감소분보다 컸다. 반면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현금흐름표상 단기금융상품의 증가액만 10조230억원에 달했다.
 
청와대 인왕실에서 진행된 이날 오찬간담회에는 정부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경제 관계 부처 장관들이, 청와대에서는 김기춘 비서실장, 조원동 경제수석, 윤창번 미래전략수석 등이 배석했다.
 
재계를 대표해서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 양대 경제단체 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성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홍기준 한화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한편 이날 초청 대상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빠져 그 배경을 놓고 의혹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순수 민간기업으로 대상을 제한했다고 설명했으나,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전임 이명박 정부의 사람인 점을 들어 교체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애써 불편한 자리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해석을 내놨다. 
 
정 회장은 지난 6월 박 대통령의 방중 때 경제사절단에 포함됐음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만찬에는 초정 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허태열 전임 실장의 경질 배경에 지지부진한 공기업 인사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인수위 출범을 전후로 돌았던 정 회장 교체설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사진=뉴스토마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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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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