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경제력은 왜 특정한 곳에 집중되는가." 이같은 문제는 구조적 해결만이 답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강조하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해법도 여기에 있다. 대기업의 지배구조개선이 우선적으로 논의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책이 한국사회의 최우선 현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폐단이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책을 두고 '재벌 총수와 소액주주의 평등'을 구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순환출자를 막는다고, 지주회사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구조적 시스템이 달라지진 않는 것처럼 경제민주화로 기업이 당장 결딴나지 않는다. 집중된 경제력이 분산돼야 한다면 주주간 평등이 아니라 전체사회에 고루 퍼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바로 이점 때문에 경제민주화 논쟁은 `후퇴` 해서는 안된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과제의 쟁점과 대안을 3편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기업집단 내 고리 모양 출자를 뜻하는 순환출자. 이 가운데 특별히 금융사와 기업간 출자가 나타나는 금산복합그룹. 이런 지배구조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지주회사제도. 기업 지배구조 이슈의 핵심으로 꼽히는 세 과제가 하반기에 재차 부상할 조짐이다.
이는 야권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 실종사건'의 중요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개선'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장 '순환출자'가 현안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순환출자는 기업 지배구조 이슈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내용 중 하나로, 재벌그룹이 '부당한 세습'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책의 맨 앞자리에 놓이곤 했다.
지난 대선기간 여야 후보 공히 순환출자 규제 정책을 공약했고, 박근혜 당시 후보가 '기존 것은 그대로 두겠다'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자 야권에서 당장 '개혁 후퇴'라는 비판을 제기해왔다. 순환출자가 대체 뭐기에 이럴까.
순환출자는 '고리'를 이루는 출자 방식을 가리킨다. 즉 A사가 B사에, B사가 C사에, C사가 다시 A사에 출자하며 A사가 출자한 돈이 A사로 다시 돌아오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기업집단 내 계열사는 그것대로 늘고, 자본금은 처음 장부에 적힌 것보다 불어서 돌아온다.
기업집단의 오너가 손쉽게 지배력을 넓힐 수 있는 수단이라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만일 고리를 이루는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덩달아 다른 계열사가 부실해지기 때문에 주주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순환출자..소유권 강화, 승계가 주된 이유
물론 주주 아닌 기업 입장이라면 순환출자는 장점도 있는 시스템이다. 또 급속히 성장한 기업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고 국내의 경우 과거엔 정부가 직접 계열사 확장을 독려했다는 사실이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 5월 발표한 '대규모기업집단의 순환출자 형성 과정과 배경'에 따르면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롯데그룹 등 13개 기업집단의 81개 순환출자 내역을 분석한 결과 승계를 위한 경우가 47.62%, 소유권 강화를 위한 경우가 21.43%, 계열사 지원을 위한 경우가 30.95%로 나타났다.
사실 순환출자는 정부가 상호출자를 법으로 막자 편법으로 등장한 것이다. 상호출자는 말 그대로 A사와 B사가 맞출자 하는 방식으로, 기업집단 안에서 계열사끼리 이뤄지면 결속이 강화되는 동시에 경쟁이 제한되기 때문에 규제장치가 도입됐다.
정부는 그동안 자산규모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을 특별히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해 관리해왔는데 이번엔 순환출자를 규제하기 위한 법제도를 만들려고 하는 중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순환출자가 법적으로 허용돼왔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건물 설계도 보다 훨씬 복잡해 보이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자료제공: 공정위)
◇"신규 순환출자 막자" 공감..기존 출자문제는 이견
현재 국회에는 여야에서 각기 발의한 순환출자 규제법안이 여럿 계류돼 있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 여야의 견해차가 불거진다. 양쪽 모두 신규 순환출자를 막아야 한다는 데 공통된 시각을 보이면서도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문제에 대해선 야당이 찬성, 여당이 반대 입장에 서 있다.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방법도 의견이 분분하다. 기존 출자분에 대해 야당 안은 유예기간 3년을 두고 해소하도록 한다는 것이지만, 여당 안은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것부터 그대로 두자는 안까지 나와 있다. 요컨대 순환출자 이슈는 규제범위는 물론 규제방법 등이 쟁점인 상황이다.
정부는 현재 여당과 같은 입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 4월 청와대에 보고한 업무계획에서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자발적 해소를 유도" 한다고 밝혔다.
이는 대통령의 공약과 일치하는 내용으로, 공정위는 "원칙적으로 순환출자는 실질적 자본투자 없이 지배력을 확장하는 가장 악성의 계열사간 출자유형이므로 완전해소가 바람직"하다면서도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이런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그러면서 "단기적으로는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자발적 해소를 유도하되 해소범위는 기업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 판단케 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출자분 인정? 재벌 기득권 인정하자고?"
하지만 공정위가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시제도 강화' 등을 거론한 데 대해선 대다수가 실효성을 의심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개인적으로 의결권 제한이나 매각 같은 시정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존 순환출자를 강화하는 것도 아예 금지한다는 내용을 공정거래법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존 순환출자를 인정한다는 건 재벌총수 기득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라며 "기존 순환출자도 해소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채 연구위원 역시 "기존 순환출자가 강화되는 부분은 어떻게 할 건지 정부는 아직 입장이 없는 듯 보인다"며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정하고 구체적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 도식화해서 금산분리가 삼성, 지주회사가 SK 문제라면 순환출자는 현대차그룹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현대차는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데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재벌이며 그 액수는 최소 6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뉴스토마토 자료사진)
물론 이는 원칙적으로 지극히 타당한 이야기이지만 현실적으론 간단치 않은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단순 도식화해서 금산분리가 `삼성`, 지주회사가 `SK` 문제라면 순환출자는 `현대차그룹`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현대차는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데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재벌이며 그 액수는 최소 6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순활출자 고리를 끊으려면 일단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뒤이어 필요에 따라 오너 등이 이를 취득해야 하는데 이때 드는 비용이 많게는 수조원에 이를 것이란 예상이다.
같은 시기 '재벌닷컴'이 조사한 데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지금의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한 단순비용만 6조860억원, 삼성그룹은 4조3290억원, 롯데그룹 2조457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됐다.
심지어 재벌닷컴은 현대차가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고 현대차를 지주회사로 전환할 때 10조782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치를 내놓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총 3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있다. (자료제공: 경제개혁연구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만일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싶으면 10조원 돈을 들여 지분을 취득해야 하는데, 아무리 재벌 총수라 해도 조 단위 자금을 기한 내 조달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면 누가 이를 대신 살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외국계자본 정도가 가능할 것이란 게 재계가 매번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국부 유출'이 일어날 것이라는 논리는 다분히 엄살과 과장이 섞인 것이라 해도, 순환출자 해소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 혹은 '누가 이득을 봐야 하는가' 하는 점은 곰곰이 따져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