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사진제공=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열정樂서')
[부산=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텍사스에서 야구를 잘 하지 못할 때) 모든 사람들이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라'고, '이제 할만큼 했다'고 했다. 부모님도 안타까운 마음에 한국으로 돌아오길 바랬다. 하지만 단 한 명, '한 번만 더 해 봐. 한 번만 더 하면 될 거야.'라고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간절함이 아시아 메이저리거 최초의 124승을 이루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해 한화 이글스의 유니폼을 벗고 19년의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친 박찬호. 그는 거구의 타자들을 강속구로 휘어잡듯 수천여 명의 대학생 청중 앞에서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를 섞어 자신의 성공 일화를 풀어놓으며 좌중을 쉽게 휘어잡았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열강이 마무리되자 행사장의 청중들은 기립박수로 '우리 시대의 영웅'에게 감사해했다.
박찬호는 2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삼성그룹의 대학생 대상 강연 콘서트 '열정樂서'에 첫번째 연사로 출연해 최근 출간한 책 제목과 같은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라는 주제로 2500여 명의 젊은 대학생 앞에 섰다. 그는 이번 강연을 통해 메이저리거로 성공하기까지 겪은 과정과 깨달음, 더욱 나은 제2의 삶을 위해 필요한 가치 등을 말하며 고뇌하는 청춘들을 격려했다.
◇"먼저 다가가고 어려움을 극복하려 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박찬호는 지난 1994년 메이저리거로 진출할 당시 100년에 달하는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17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경험하지 않고 MLB로 바로 올라선 선수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MLB 데뷔에 따른 기자회견을 한지 18일만에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수모도 겪었다.
마이너리그는 메이저리거로 올라서고자 같은 팀의 멤버끼리도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그 속에서 박찬호는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결국 '한국인'이라고, '마늘 냄새 난다'고, 다른 선수들의 따돌림을 받았다.
박찬호는 '껌종이 사건'을 언급했다. "다른 선수가 껌종이를 접어서 그에게 던졌고 싸움이 붙었는데 영어가 달려 상황을 설명하지 못했던 그가 모든 잘못을 뒤집어써 혼나고 벌금도 내야했다"는 것이다.
속이 상했던 그는 다음날 집에 "야구를 그만 두겠다"고 말하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막상 아무런 얘기도 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잘 지낸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이 마음이 슬퍼지며 울게 된 그는 '죽으려고' 구입한 맥주 6캔은 물론 냉장고 안의 김치와 갈비도 모두 버렸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과의 적응, 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했고 결국 마침내 다시 주목받는 메이저리거로 부활했다.
박찬호 야구 인생의 호된 시련은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에 다시 찾아왔다. 한국에서조차 종종 '먹튀'와 '매국노' 등으로 불리웠던 시절로, 박찬호는 당시를 회상하며 "너무 힘들어서 살고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끝났다고 했다. 한국의 어느 감독님 인터뷰도 방영됐고, '구질구질하기 전에 은퇴함이 좋다'라는 얘기도 들었다. 부모님조차 안타까우니 미국을 떠나길 바랬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 가여워 '다시 한 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감독이 무서워 피하던 태도를 바꿔 매일 자리에 찾아가 먼저 인사를 했고, 선수들에게도 먼저 다가가며 어려움을 극복하려 했다. 결국 그는 그렇게 위기를 극복했다.
◇박찬호. (사진제공=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열정樂서')
◇"간절하면 에너지를 만들고 거울 속으로 이야기하면 진실해진다."
박찬호에게 MLB 소속팀으로 마지막이었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소중하다. 그가 124승째를 올려 노모 히데오를 제치고 아시아계 선수 MLB 최다승 대기록을 안겨준 팀이기도 하지만, 리더로서 보람을 느끼게 했고 목표를 이루는 간절함을 체감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아시아계 메이저리거 개인통산 124승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간절했다. 그렇게 했더니 시속 88마일도 못 기록하던 내가 시속 90, 92, 97마일까지 던졌다. 결국 3이닝동안 삼진 6개를 잡으며 승리를 따냈다"며 "지난 10년간 그랬던 적이 없다. 내 잠재력을 나 스스로 막고 있었다. 어려움의 극복은 결국 누군가 도와줘서 이뤄지지 않는다. 자기 혼자서 찾아야 한다"고 당시의 깨달음을 말했다.
이어 "하고자 하는 것이 간절할 때 강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간절함이 있으면 절제가 쉽다"며 "자기 혼자 찾기 힘들면 거울 속을 보라. 거울 속에서 대화를 한다. 100% 진지할 수 있다. 거울 속에서 얘기하면 감정이, 느낌이 한결 진실해진다"라며 해결책도 제시했다.
당시 피츠버그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그는 "피츠버그는 1승의 소중함, 1승의 의미, 개개인의 의미, 개개인의 명예, 이것을 더 존중한 팀"이라며 "늘 소외되고 늘 꼴찌였던 팀이었다. 나를 데려간 것도 우승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선배로서) 좋은 메시지를 전할 사람을 위해 60만불을 썼다. 그리고 124승에 1승만을 남겨둔 시즌 마지막 경기에 저를 (소속팀이 이기던 4회 이후에) 올렸고, 마침내 1승을 더하자 모두 자신의 일처럼 무척 기뻐했다. 제게 명예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하고 피츠버그 구단과 당시 선수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렇지만 박찬호는 124승을 이루고서 공허했다. 언젠가는 124승이란 대기록도 깨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힘들었다. 공허했다. 순간 노모 히데오가 생각났다. 언젠가 125승의 선수에 의해 박찬호의 124승도 없어지게 된다 느꼈다"고 말했다. 다만 이어 "그러다 생각했다. 124승은 숫자에 불과하다. 정말 나를 자랑스럽고 기쁘게 하는 것은 124승을 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순간순간 고비로 절망을 느꼈을 때 나를 일으켰고, 나를 다잡게 했고, 나를 다시 도전하게 한 계기가 무언지 그 생각을 하니 느끼는 것이 많았다"고 당시 시련과 시련 속에서의 깨달음을 얘기했다.
◇박찬호. (사진제공=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열정樂서')
◇"시련이 성장을 부른다. 의심하지 말고 실패에 대해 도전해라."
박찬호는 강연시작 1시간이 다다를 무렵 강연을 정리하며 시련이 삶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말하고 포기하지않기를 조언했다. 그리고 열정과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적극 강조했다.
박찬호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을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의심하는 것"이라며 "의심하지 말라. 계속 가면 '그 날'이 온다. 상처를 받고 힘든 순간이 와도 미래는 온다. 잘 하고자 준비하는 사람보다 시련이 올 때 준비한 사람이 더 용감하고 에너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오늘 꼭 이겨야지'라고 생각한 날은 이겨본 적이 없다. '컨디션 대박이야'라고 생각하면 오버했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확률이 많을 때 이길 확률이 높았다"고 덧붙였다.
박찬호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그는 "실패에 대한 도전을 해라. 실패는 분명히 여러분을 성장시킬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한 또 다시 강해지고 더 지혜로워질 것"이라며 "포기만 안 하면 된다. 지금 이 순간만 집중해라. 필요하면 한 시간동안 할 일, 10분만 할 일, 1초 할 일만 집중하면 쉬워진다"고 역설했다.
한편 박찬호는 강연 이후 청중들의 질문을 받았다. 박찬호는 "인생을 투수의 구종에 비교한다면 어떻게 정의를 내릴까?"라는 질문에는 "다양함은 많은 정보다. 많은 정보가 있으면 확률이 많다"며 "정답은 '다양하면서도 정확한 구종'이다. 단, 한 가지라도 정확한 일을 할 수 없을 경우는 무의미하다"고 해답과 전제 조건에 대해 제시했다.
더불어 마인드 컨트롤을 묻는 질문에는 "투수는 던지는 사람이다. 타자를 못 치게 하는 것보다 공을 더욱 잘 던지도록 집중한다"며 "불안해지고 복잡해지면 마운드를 내려와 조그마한 뭔가를 찾아본다. 잔디 속에 개미도 없을 경우 목표를 (만들어) 찾는다. 1~2초 집중하고 내가 할 것을 생각 후 마운드에 올라서 공을 던졌다"고 답변했다.
끝으로 박찬호는 "여러분들 모두 자신의 에너지를 확인하고 집중하면 원하는 바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외적인 것에 집중하지 말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노력하고, 도전하고, 나를 아는 일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이날 강연에 참석한 많은 청춘들에게 격려를 전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