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검찰이 참여정부 청와대가 기록원에 이관한 자료들을 전부 살펴보지 않은 채, 특히 청와대가 이관한 원본 e지원을 다 살펴보지 않은 채 '이관된 기록에는 대화록이 없다'고 단정해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검찰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2일 기록원에 넘겨진 자료에는 대화록이 없었으며 봉하로 가져갔던 e지원에서 대화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검찰은 봉하 e지원의 원본이며 기록관에 제출됐던 청와대 e지원은 지난 2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나중에 확인해 봐야 한다. 최종 확정해서 말하겠다'며 아직 제대로 살펴보지는 못한 것으로 설명했다.
◇靑 e지원이 원본임에도 "이관 기록물 중 대화록 없다" 단정 발표
검찰이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밝혔듯이 사본 e지원(봉하 e지원)에는 대화록이 있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정작 기록원에 제출된 원본 e지원은 다 살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관된 기록엔 대화록이 없다'고 단정 발표한 셈이 된다.
원본을 복사한 사본 이지원에 대화록이 있었다면 기록원 이관 전 원본에도 대화록이 있었다고 봐야 하며 그게 알수 없는 이유로 기록원 이관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는게 합리적이다. 또 검찰이 원본을 제대로 본 것인지 확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단계에서 원본에 대화록이 없다고 단정하기도 일러 보인다.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시점은 노인연금 공약 파기 논란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거세게 비난 여론이 일던 국회 긴급 현안질의 직후다.
이와 관련, 한국국가기록연구원장인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3일 "검찰의 애매모호한 발표에 문제를 삼을 필요가 있다"며 "검찰은 구체적 사실을 알 수 있는 수사를 진행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 내용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않게 해서 정쟁을 일으킬만한 발표를 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날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은 나스 장비에 있는 e지원(원본 이지원)은 거론 않고, 봉하마을 e지원에서 대화록을 발견했다고 애매하게 표현한 것"이라며 "검찰은 알고 있는데 발표를 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중간 발표로 공약 파기 국면 일거에 NLL 포기 의혹으로 전환
검찰의 발표 시점 역시 주목된다. 검찰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날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파기에 관한 국회 긴급 현안질의가 이뤄진 직후다.
공약 파기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가운데 지난 1일 긴급 현안질의에선 국민연금과 연계한 정부의 기초연금안이 미래세대들에겐 현행 기초노령연금제에 비해 매월 10만원의 손해가 발생한다는 점 등의 문제점이 집중 부각됐다.
또 신경민 민주당 의원이 이번 검찰 수사를 이끌고 있는 김광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에게 이중희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가기록원(NLL 대화록 실종 사건) 수사는 채동욱 총장에게 보고하지 말고 청와대에 직보하라"는 말을 했다고 주장한 것도 눈길을 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을 놓고 현 정권과 대립각을 보인 채 총장이 사퇴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화록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관에 관여했던 참여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는 물론 봉하 e지원보다 먼저 확인했어야 할 청와대 e지원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이관 기록물 중에는 대화록이 없다고 성급히 발표한 것은 국면전환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부관참시' 언제까지? 여권 단골 레파토리 "盧 NLL 포기"
청와대 e지원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음에도 참여정부에서 이관된 기록물 가운데 대화록은 없다는 검찰의 섣부른 단정 중간 발표로 '노무현 NLL 포기 의혹'은 또 다시 정가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이 그동안 수세에 몰렸을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물타기 신공'을 발휘했던 걸 상기하면 이번 역시 그와 같은 차원의 부관참시(剖棺斬屍) 공작이 행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대선 전 새누리당은 정문헌 의원을 시작으로 '노무현 NLL 포기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은 2012년 12월 14일 부산 유세에서 남재준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과 똑같은 내용을 낭독한 바 있다.
이에 앞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이었던 권영세 주중대사도 2012년 12월 10일 "컨틴전시 플랜",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대화록을) 까고"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 국정원이 보관하던 대화록 사전 유출 및 관권선거 기획 의혹이 증폭됐었다.
'노무현 NLL 포기 의혹'은 올해 들어서는 대선 개입 사태 물타기용으로 활용됐다. 지난 6월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대화록을 기습 공개한 일이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새누리당의 '사초 실종' 공세 등이 그것이다.
청와대 또한 검찰의 중간 발표 이후 "사초 실종은 국기문란"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노 전 대통령이 켕기는 데가 있어 대화록을 삭제했다고 총공세를 펴고 있는 새누리당과 보조를 맞추는 중이다.
이처럼 새누리당 정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의혹이 정국의 모든 상황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이 카드는 매번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 다른 이슈들을 빨아들이는 위력을 발휘 중이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4일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도대체 얼마나 국정운영에 자신이 없길래 돌아가신 전직 대통령을 궁지에 몰릴 때마다 이런 식으로 꼼수로 빠져나가려고 하냐"고 탄식했다.
◇대화록, 지정 기록물로 분류 안 된 듯..향후 규명돼야 할 부분은
지난 7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동의 절차를 거쳐 여야 열람위원들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 팜스(PAMS)를 검색할 당시 왜 대화록을 찾을 수 없었는지는 향후 수사에서 규명되어야 할 부분이다.
검찰의 중간 발표에 의하면 청와대 e지원을 복사한 봉하 e지원에서 대화록이 발견됐기 때문에 참여정부 기록물이 이관될 때 넘겨진 청와대 e지원에도 대화록이 있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다만 문재인 의원과 민주당의 기존 주장과는 달리 대화록은 분류권자인 노 전 대통령 이외에는 15년간 열람이 불가능한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는 분류되진 않았던 것으로 관측된다.
조명균 전 청와대 비서관 등 복수의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의 대북관계 참고용으로 국정원에 대화록 한 부를 건넸다고 진술했다.
김익한 교수는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해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건데 그래서 지정 기록물로 지정을 안 하고 대통령 기록 관리법말고 보안 업무 규정에 의해 국가 1급 기밀인 대통령 기록물로 관리했다면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지정 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NLL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새누리당의 공세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봉하 e지원에서 발견된 대화록이 국정원본과 사실상 동일하고, 청와대 e지원에도 이것이 애초엔 담겨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향후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참여정부는 34만건 가량의 기록물을 지정 기록물로, 이명박 정부는 24만건 정도의 기록물을 지정 기록물로 분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