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사상 최악의 세수입 여건이 계속되면서 국세청과 관세청 등 과세당국의 세무조사가 강도를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무조사를 통한 세수입이 전체 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연평균 2~3%에 그친다.
세무조사가 세수확보의 측면보다는 탈세방지를 위한 '경고성' 행정임을 감안한다면, 상식적으로 경기가 어려우면 국민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세무조사를 줄이고, 경기가 좋을 때는 세무조사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해보이지만, 실제 현실은 그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4일 국회 예산정책처와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경기흐름과 역진적으로 진행중이다.
세무조사의 대표적인 대상인 법인에 대한 법인세 세무조사의 경우 2007년 4174건에서 친기업정책을 펼친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2974건으로 큰 폭으로 줄었다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9년에는 3867건으로 오히려 급증했다.
이어 2010년에는 법인세 세무조사가 4430건으로 2007년을 뛰어넘는 수준까지 불었다. 2010년은 전년대비 경제성장률은 크게 회복됐지만 금융위기의 여파로 증시가 폭락하고 법인들의 수익이 곤두박질친 2009년의 세수입이 반영되는 시기였다.
세무조사를 통한 추징액 역시 경기상황과는 흐름을 달리했다.
2009년과 2010년 법인세 세무조사를 크게 늘린 덕에 추징액은 2009년 2조735억원에서 2010년 3조5501억원으로 올랐고, 유럽재정위기가 시작된 2012년에는 4조9377억원으로 2011년 4조4438억원보다 5000억원 가까이를 더 걷었다.
개인에 대한 세무조사도 유사한 흐름을 나타났다.
국세청의 개인사업자에 대한 종합소득세 세무조사는 2009년 3068건에서 2010년 3624건, 2011년 3669건, 2012년 4563건으로 확대됐다.
개인사업자에 대한 추징세액도 2009년에는 4771억원에서 2010년 5175억원으로, 2011년에는 7175억원으로 불었고, 자영업자들에게 제2의 IMF라는 소리를 들었던 2012년에는 8571억원까지 추징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세수입 진도상황에 따라 변동됐다는 점도 세무조사가 경기상황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세수추계과가 2006년 이후 세수진도비와 세무조사건수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주요 세목인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모두 세수진도비가 낮을수록 세무조사 건수 증가율이 높게 나타났다.
경기가 어려워 세수진도율이 떨어지면 세무조사를 늘려 세수진도율을 맞춰주는 임의적인 조세행정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올해도 지난 4월에 세무조사와 세원관리 등을 통한 이른바 '노력세수'의 비중을 전체 세수입의 7%에서 8%로 올리고, 세무조사비율을 상향조정할 것임을 발표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취임 직후인 올해 1분기 세수진도율은 22.4%로 2012년 1분기 세수진도율 27%보다 4.6%포인트나 뒤쳐진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은 결국 6조원의 세입예산을 깎아내리는 유래 없는 추가경정예산안으로 이어졌다.
세무조사 강화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면서 '기업 부담을 줄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과 함께 수위조절론이 부각됐고, 국세청이 7월 이후 기업 세무조사 건수를 줄이겠다는 계획도 내 놨지만, 이미 상반기 상당한 수준의 국세청 세무조사가 진행된 상황이다.
경기흐름이 좋지 않았고, 동시에 세무조사가 강화된 2009년과 올해의 분기별 세수진도율을 보면 2009년의 경우 1분기 24.4%, 2분기 49.6%의 낮은 세수입 진도율을 보였고, 2013년은 1분기 22.4%, 2분기 46.2%를 기록중이다.
통상 정부의 2분기 세수진도율 목표는 55%~60%이다. 반환점을 돌아선 2분기 이후 세수진도비가 50%를 밑돈 경우는 2006년 이후 2009년과 2013년 두 번 뿐이다.
심혜정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행정력으로 납세자의 세부담이 크게 좌우된다는 것 자체가 넓은 범위에서 조세법률주의를 위배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면서 "세입여건에 따라 조사의 강도를 달리하는 것은 납세자의 예측가능성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균형재정이나 재정건전성 확보차원에서 무리하게 세입예산을 짜고, 국세청이 단순하게 예산에 맞춰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구조적인 문제도 악순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2년~2016년 중기재정계획에는 올해 재정수지는 1조원의 흑자가 예상됐지만, 최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내 놓은 2013년~2017년 중기재정계획에는 올해 25조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정부는 공약가계부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27조원의 세입을 충원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적지 않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4일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가 시행되고 있고, 거래의 상당부분이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공약가계부에서 밝힌 것처럼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5년간 27조2000억원을 걷는다는 것이 실현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덕중 국세청장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목표한 세수입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며 "목표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에 대해 심혜정 경제분석관은 "세수입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당연한 책임으로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세행정이 국고주의적인 측면에서 벗어나 서비스적인 측면에서 하고 있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는 "과세권자의 재량 한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고, 납세자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여 부당한 세무조사로 납세자권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