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한승기자] 품질경영.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제품 품질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며 지난 2011년 내세운 경영철학이다.
반면 최근 수년간 현대·기아차의 행보는 이 같은 방침이 무색할 정도로 역주행하고 있다. 지난해 연비 과장 논란에 이어 올해 누수와 브레이크 불량까지, 품질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 또한 예전 같지 않다. 자동차결함신고센터에 접수된 건수만 300여건에 달하는 데다,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등에서는 수천건의 품질 불만 사례들이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25일에는 브레이크 스위치 접촉 불량이 확인된 현대차와 기아차의 15개 차종, 66만여대에 대한 대규모 리콜이 실시된 바 있다. 국토교통부는 빠르면 이달 중으로 물 새는 싼타페, '수(水)타페'의 리콜 여부도 결정할 계획이다.
위험성으로 따지면 브레이크 스위치 접촉 불량은 물론, 단순결함으로 치부되는 누수 또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물이 닿은 금속 부품은 녹이 슬어 쉽게 고장날 수 있는데다 전기 부품에 물이 들어갈 경우 합선으로 인한 화재 우려도 상존한다.
70%를 상회하던 현대·기아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지난 8월 이후 60%대에 머물러 있다. 수입차의 파상공세에 과점시대가 막을 내릴 것이란 주장마저 제기됐다.
현대차 측은 지난달 추석 연휴로 인한 조업일수 감소와 불경기 등을 점유율 하락의 이유로 들었지만 국내 자동차 시장의 맹주로 자리하던 현대·기아차의 제동은 단순하게 볼 사안만은 아니다.
반대로 지난 8~9월 수입차는 국내시장 점유율 11%를 넘어서며 빠르게 세를 넓혀가고 있다. 리서치전문회사인 마케팅인사이트에 따르면 오는 2016년 수입차의 점유율은 20%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국산차 업계의 목을 점점 죄어오는 형국이다.
게다가 과거 중대형 차량에 집중하던 수입차가 최근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합리적 가격대로 무장한 3000cc 이하 준중형 차량을 내놓으며 시장을 넓혀 나가는 점은 현대·기아차에 있어 큰 위협이다.
현대차는 지난 4~6일 경기도 연천군에서 현대차 동호회를 대상으로 오토캠핑 '헬로 캠프'를 진행하고 소비자들에게 사과하는 깜짝 이벤트를 진행했다. 캠핑장 진입로 곳곳에는 '간혹 저희가 걱정을 끼쳐드리기도 했지요', '그럴 땐 따끔하게 혼내주세요', '반성하겠습니다' 등의 사과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현대차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문제를 방치할 경우 속수무책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이 같은 회유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말로 그치는 일회성 사과가 아닌 문제의 근원을 살피는 실질적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게 소비자들 요구다.
누수 문제에 대해 현대차는 문제 차량에 대해 무상수리나 보증수리기간 연장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방안만 내놓고 있다. 이 또한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언론을 통해 파문이 확산되자 뒤늦게 나선 마지못한 대책이다.
차를 사는데 수천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들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탈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차를 원한다.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품질이 담보돼야 한다는 얘기다.
말로는 등 돌린 고객들의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다. 시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는 실질적 대책을 낳은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고객의 소리를 듣지 않는 안하무인식의 회사로 인식될 경우 이미지 실추와 함께 판매량 저하로 인한 점유율 하락은 불가피하다. 결국 제 목에 칼을 겨누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품질경영'에 쌓인 묵은 때를 벗겨내야 한다. 시장은 결코 오래 기다려 주질 않는다. '봉'에서 '칼'이 되고 있는 국내시장의 변화를 굳이 현대차만 외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