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영택기자] 3세경영이 끝내 경쟁 대열에서 밀려나고 있다. 앞선 1·2세대가 일궜던 ‘성공신화’는 어느덧 옛말이 돼 버렸다.
1세대는 맨손으로 기업의 기틀을 다잡았고, 2세대는 영토 확장을 통해 대기업으로의 면모를 갖췄다. 반면 3세대에 이르러 내실 강화보다는 외형 확장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유동성의 벽에 치였다.
내실은 부실이 됐고, 영예는 추억이 됐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의 흐름을 읽지 못한 대가는 가혹했다. 수많은 근로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수익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세습경영의 근원적 한계를 탓하기도 한다. 경영수업이라지만 황태자 신분으로 현장과 괴리를 두는 탓에 책임경영의 철학을 잃었다는 게 지적의 핵심이다.
최근
대한전선(001440) 설윤석 사장이 경영권을 포기했다. 초우량 기업에서 몰락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한전선은 창업자 설경동 회장과 2세 설원량 회장이 이끌면서 국내 1위의 전선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53년간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낸 적 적 없는 그야말로 ‘알짜 기업’이었다.
하지만 2004년 설원량 회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당시 대학생이던 설윤석 사장이 경영권을 이어받게 되면서 상황은 180도로 바뀐다. 냉혹한 시장은 초짜 경영자를 가만두지 않았다. 하이에나처럼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고, 설 사장은 이를 감당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결국 설 사장은 ‘경영권 포기’라는 극단적 결단을 내리게 됐다. 설씨 일가는 조부인 고 설경동 회장이 맨손으로 일으킨 대한전선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대한전선이란 명패는 33세 오너 3세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짐이었다.
세아그룹 역시 지난 3월 이운형 회장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룹이 전반적으로 혼란스런 분위기다. 장기화된 대내외 경기침체 탓에 철강 경기는 부진의 늪에 빠졌고, 중국과
현대제철(004020) 등 경쟁사들은 가격과 몸집으로 승부를 걸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룹의 구심점마저 사라지자 위기감이 증폭됐다.
여기에다 노사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세아제강(003030) 창원공장에 이어 포항공장까지 직장폐쇄에 이르렀다 지난 7일 정상화됐다. 국내 철강사들 가운데 포스코와 함께 가장 내실 있는 기업으로 꼽히던 세아제강이 생존의 기로에 처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1주기 당시 이운형 회장은 동석한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지금의 세아그룹을 지탱해 준 원동력은 ‘신뢰’다. '고객과의 신뢰'는 경쟁사의 저렴한 제품에도 우리 제품에 대한 믿음으로 거래를 이어갔고, ‘직원들과의 신뢰’는 무분규라는 화합의 선물을 줬다.”
그가 떠난 지 8개월. 연이은 악재에 휘청이는 세아그룹을 보면서 그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였다.
앞선 두 사례는 극히 일부분이다. 웅진과 STX, 동양그룹이 처참히 무너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내 대기업들의 경영환경은 극도로 악화됐다.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차(005380) 착시현상에 가려 이면을 보지 못하는 사이(애써 외면했을 수도 있다) 이들의 부채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영업이익으로 차입금의 이자비용조차 감당치 못하는 부실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산소호흡기에 연명한 채 가쁜 숨으로 내쉬고 있을 뿐이란 게 내부 관계자들의 고백이다. 그런 가운데 3세 경영자들은 잔혹한 시험의 무대에 섰다. 위기가 기회가 될 지, 무대 뒤편으로 쓸쓸히 사라지는 촉진제가 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선대가 이룬 성공신화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