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아시아 정상을 놓고 벌어질 승부를 앞두고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운동장 환경'을 거론하며 FC서울을 포함한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긁었다. 하지만 FC서울도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두 팀의 치열한 승부를 예고했다.
두 팀은 오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이하 ACL)결승 1차전을 치른다.
이에 앞선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두 팀 감독들과 서울 주장 하대성, 광저우 주장 정즈가 참석한 가운데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리피 감독 불만 "30년 동안 이런 대우 처음"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 (사진제공=FC서울)
이날 광저우의 마르첼로 리피(65·이탈리아) 감독은 "광저우 팀은 서울에서 운동장도 없었고 환경이 너무 안 좋았다"면서 "그래서 (어제)호텔 홀에서 30분 동안 연습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대부분의 미디어데이에서 간략한 소감으로 말문을 여는 것과 비교했을 때 다소 의외의 발언이었다.
이어 그는 "조명, 훈련시간, 운동장 등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들었는데 우리는 불공평한 환경을 제공 받았다"며 "우리는 불공평한 환경을 받았지만 서울이 광저우에 오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순간 15명 내외의 중국 기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등 국내 취재환경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을 연출했다. 중국어로 먼저 통역되고 한국어 통역이 진행됐기 때문에 한국 취재진들은 일순간 어리둥절했다.
끝내 그는 "30년 동안 일을 하고 (유럽)챔피언스리그 등 모든 경기를 통틀어 다섯 번째 결승전에 올라오는데 이렇게 연습할 수 있는 경기장이 없던 것은 처음"이라고 다소 강한 발언을 늘어놨다.
결승 1차전에 어떤 전술로 임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세계 어떤 감독과 코치도 경기 전에 자신의 전술을 말하지는 않는다"면서 "24시간이 지나고 내일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그는 지난해 5월 부임해 지휘봉을 잡고 있다. 리피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맡아 우승을 경험했다. 5차례 이탈리아 리그 우승과 1996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장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가 자신의 경력을 과시하며 아시아 축구를 한 수 아래로 보는 일이 많으며 무시하는 경향도 짙다고 평한다.
한편 리피 감독은 기자 회견 막바지에 "자신이 묵는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바란다는 한국 측의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최용수 감독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
◇FC서울 최용수 감독. (사진제공=FC서울)
최용수(40) 감독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K리그의 강점을 강조하며 우회적으로 광저우의 '머니 파워'를 비판하기도 했다.
최 감독은 "저희 K리그가 아시아에서 훌륭한 팀이라는 걸 5년 연속 보여줬다고 본다"며 "그건 아시아에서 K리그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고 상대 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뛰어난 정신력이 밑바탕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K리그는 포항(2009), 성남(2010), 전북(2011), 울산(2012), 서울(2013)이 5년 연속으로 이 대회 결승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특정 국가 프로팀이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5년 연속 진출한 것은 아시아 클럽 대항전이 출범한 1967년 이후 처음이다.
최 감독은 축구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 것 같냐는 질문에 "프로스포츠에서 돈을 결부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면서도 "인생을 살면서 소중한 행복을 절대 돈으로 가져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많은 투자를 해서 상대도 여기까지 왔지만 축구는 손이 아닌 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중국 재벌 그룹으로 꼽히는 헝다 그룹은 2010년 광저우를 인수해 거액의 투자를 해오고 있다.
이번 ACL에서 우승할 경우 광저우 선수들은 총 1억3000만위안(약 226억원)의 승리 수당을 지급받는다. 외국인 선수 3명(무리퀴, 다리오 콘카, 엘케손)의 몸값도 22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축구연맹 "운동장 문제는 이미 AFC에 자료 제출"
화두가 된 리피 감독의 '운동장 불만'에 대해서 프로축구연맹은 "서울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미 2주 전에 광저우가 쓸 보조구장에 대해 AFC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고 규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광저우에게도 이미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보통 경기 하루 전 그라운드 적응을 위해 훈련하는 공식 경기장을 광저우가 이틀 전에 사용하게 해달라고 하는 등의 요구를 했다.
다만 연맹 관계자는 "보조구장 조명이 어두워 일찍 연습하라고 (광저우에) 통보했는데도 저녁 늦게 훈련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표출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FC서울 관계자도 운동장 불만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서울 관계자는 "AFC 관계자한테도 물어보면 다 알고 있을 것"이라며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다 보고가 된 상황"이라고 일축했다.
최용수 감독 또한 이 문제를 전해 들었다. 그는 경기에 앞서 외적인 문제가 대두된다는 중국 기자의 질문에 "운동장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냐"고 되물으며 "2주전에 벌써 상대에게 얘기를 해줬고 AFC 보고서도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이어 최 감독은 "저희가 광저우 가서도 원칙에 어긋나게 더 원하고 그런 것은 바랄 마음도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