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정부에서 투자와 고용을 압박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돈 벌 여건을 조성해 주면 자연히 투자가 유도되지 않겠나."
"기업은 공공기관이 아니다. 경영환경에 따라 투자와 고용 계획이 바뀔 여지도 있는 것 아니겠나."
29일 '30대 그룹 투자·고용 간담회'에 참석한 일부 사장단은 차질 없는 투자와 고용을 주문한 정부의 독려를 무언의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대내외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차 투자와 고용을 강조하고 나선 것에 못마땅해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사장은 "현 산업구조는 고용을 급격하게 확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정부는 고용을 증가시키라는 요구만 한다"면서 정부의 주문이 무리한 요구임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공기업은 정해진 계획 내에서 투자와 고용이 이뤄지겠지만, 기업은 경영환경에 맞춰 수시로 조정해야 한다"면서 "현재 일부 30대 그룹의 투자와 고용이 주춤한 이유는 대내외 경기 부진의 영향이 큰 탓"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사장은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나 금융권 등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줄 곳이 없는 상태에서 기업이 자체적으로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를 지원할 경우 업무상 배임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마저 발생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고 압박할 게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단골메뉴도 등장했다.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화학물질 등록법 및 평가법과 노동 관련 법안 개정 등 기업 규제 강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한 사장은 "대통령은 투자를 당부하고 있지만, 국회와 행정부는 규제 강화를 통해 오히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만 증대시키고 있는 꼴"이라면서 따로 노는 정치권의 행태에 불만을 제기했다.
한편 30대 그룹은 이날 간담회에서 환경과 노사관계, 경제민주화 입법, 세제와 전기요금 등 다양한 건의사항을 쏟아냈다. 정부에 투자와 고용을 약속하는 대신 각종 규제 완화를 요구하며 받을 건 확실하게 받아내겠다는 뜻이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상무)은 "간담회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화기애애했으며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 등 애로사항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면서 "이에 대해 산업부, 기재부, 환경부, 국토부, 공정위 등 각 정부부처는 기업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개선방안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이날 간담회에서 기업들이 건의한 내용을 오는 11월 중순 개최되는 4차 무역투자 진흥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윤상직 산업통상부 장관과 30대 그룹 사장단,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30대 그룹 투자·고용 간담회'가 열렸다.(사진=양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