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 콤비는 '윈텔'(윈도우+인텔)이란 이름으로 PC시장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시장 패권은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갔다. 동시에 구글과 삼성전자의 연대를 뜻하는 '삼드로이드'가 과거 윈텔의 지위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시장 지배자로 등극했다.
잘 살펴보면 두 콤비는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우선 결속력의 차이다. 윈텔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OS와 인텔의 x86 CPU의 결합을 통해 PC시장에서 독점체제를 구축했다. 윈텔의 범주에 들지 않는 컴퓨터를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발휘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두 회사가 다른 기업의 진입을 차단하는 카르텔 형성으로 이어졌다.
삼드로이드의 경우 카르텔은커녕 전략적 제휴관계로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느슨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이 느슨함은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OS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반면 구글은 삼성 말고도 디바이스를 만들어줄 기업이 수두룩하다는 비대칭적 구도에서 비롯된다. 구글이 삼성을 통해 얻는 것보다 삼성이 구글을 통해 얻는 것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얘기다.
한때 철옹성처럼 보였던 윈텔 연합이 그토록 쉽게 와해된 것처럼 언젠가 삼드로이드도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건 자명하다. 문제는 비교적 수평적 관계였던 윈텔과 달리 삼드로이드의 붕괴는 한쪽에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물론 당하는 쪽은 안드로이드 디바이스가 전체 수익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다.
공식석상에서 구글은 삼성전자를 향해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치켜세우고 있지만 이 같은 극찬의 본질은 삼성이 시장에서 지금과 같은 시장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지, 삼성이 구글에게 절실한 뭔가를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또 최근 IT업계 트렌드로 볼 때 시장 점유율이란 한 달 사이에도 뒤집힐 수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삼성도 이같은 비대칭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수면 아래에서는 치열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10년 후에 삼성이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져 잠을 잘 수 없다"는 이건희 회장의 판단은 순전한 노파심이 아니다. 노키아, HTC 등 전통적 H/W 기업들이 줄줄이 S/W 기업에 종속되는 지금 트렌드에서, 이대로 가면 삼성도 흔한 구글의 식민지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 기인한다.
한편 삼성전자가 최근 자체 개발자 회의, 연구소 건립, 인재양성 등 S/W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조짐이 곳곳에서 발견되자, 업계와 미디어에서는 삼성이 구글에 맞설 새로운 OS나 플랫폼을 개발할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삼성이 구글 안드로이드, 애플의 iOS에 대항할 새로운 생태계 창출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OS 생태계를 꾸린다는 과제는 H/W 기업에게 초월적인 과제다. 타이젠이든, 다른 제3의 OS든, 현재 안드로이드와 iOS 구도 속에서 공간을 뚫고 힘을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윈도를 모바일 체제로 들고온 마이크로소프트도 버거워 하고 있다. 인텔, 파나소닉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통신사들이 뭉쳐 만들고 있는 타이젠이 여태까지 제대로 된 모양새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결국 삼성전자가 구글에게서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은 SW 기업으로의 변신이나 모방이 아니라, 특정 SW로부터 자유로운 제조기업으로 진화하는 것뿐이다. 구체적인 대안이 지금처럼 '멀티벤더' 전략을 강화하는 방식일 수도, ‘하이브리드 OS’를 내놓는 방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하드웨어 기업들도 SW 역량을 강화해 시장 흐름에 빠르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수년내로 삼성전자가 품고 있는 로드맵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전 세계 전자기업들의 행보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