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 빈다며 "월급여 410만원 받았다"..사과는 없었다

입력 : 2013-11-03 오전 8:00:00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이던 최종범씨가 지난달 31일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뉴스토마토 김기성·황민규기자] 에어컨 수리를 담당하던 서비스 기사 최종범씨의 죽음을 대하는 삼성전자서비스 행태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1일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최씨가 근무하던 천안서비스센터 사장의 편지 한 통을 전달했다.
 
자신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삼성TSP(주) 사장 이제근”이라고 밝힌 그는 최씨 죽음에 대해 “믿을 수 없는 마음에 그저 망연자실할 따름”이라며 “마음 속 깊이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던 직원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고인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소문과 억측이 나오고 있어 누구보다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는 제가 해명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돼 고심 끝에 말씀을 올리게 됐다”며 편지를 쓴 배경이 진실 규명에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고인은 열정적인 업무 수행으로 항상 좋은 실적을 거뒀기에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월 평균 41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고, 또 최근 3개월 동안에는 그보다 많은 505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며 지난해 7월 아파트 구입을 위해 1000만원을 가불해 준 사실도 덧붙였다.
 
앞서 몇몇 언론을 통해 최씨가 월 100~200만원의 수입으로 힘들게 살아가다 끝내 자살을 택했다는 보도가 전해진 직후여서 이를 반론하기 위함에 초점이 맞춰졌다. 월 평균 410만원에, 최근 3개월은 505만원을 받았을 뿐더러 지난해에는 아파트도 구입했다는 주장이 도드라졌다.
 
입사 4년차인 최씨의 경력에 비쳐보면 결코 적은 돈을 받고 일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최씨에게 퍼부었던 욕설과 폭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도, 사과도 남기지 않았다. 최씨의 근로 환경에 대해서도, 노조 출범 이후 진행된 표적 감사 의혹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명복을 비는 글에서 굳이 급여와 가불 액수를 밝힌 것을 놓고 애도의 진정성은커녕 배경과 의도를 의심하는 눈길이 쏟아졌다. 
 
◇"하루 12시간 주말도 없이 일했다"
 
전국금속노조 산하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이날 밤 늦게 “삼성전자서비스의 거짓과 기만을 국민 여러분께 피토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린다”며 ‘고인 욕되게 하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파렴치한 변명’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각 언론에 보내왔다.
 
지회는 “이제근씨가 말하는 월 평균 급여액은 명백한 진실 호도”라며 “고인과 같은 삼성전자서비스의 가전 수리 담당 기사들은 자가 차량을 이용해 업무를 하며, 따라서 기름값 등 차량 유지대가 많이 들고, 가스 용접에 필요한 자재비 등 막대한 액수의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하는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월급제가 아닌 전액 건당 수수료라는 독특한 임금 체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계로 몰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최씨의 경우) 9월 한 달간 하루 12시간씩, 추석 당일과 일요일만 빼고 일했다. 그 대가로 실 수령액 310만원의 임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지회가 공개한 최씨의 9월 급여명세서를 보면 ‘통장 지급액’으로 표기된 세후 실 수령액은 정확히 310만1230원이었다. 지회는 “여기에서 차량 유지와 식대 등 실제로 드는 비용을 빼면 256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은 것이며, 한 달에 약 350시간 동안 일한 최씨가 받은 임금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약간 더 많은 액수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지회는 “게다가 이제근씨가 밝힌 임금 평균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월 100만원도 벌기 힘든 10~12월 간 임금을 뺀 액수의 평균치”라며 “성수기에 벌어서 비수기에 겨우 먹고 살아야 하는 가전제품 서비스업종 특유의 현실을 이씨가 교묘하게 통계를 내 현실을 기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업무 환경과 시스템은 LG전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찢어 죽이던지, 고객 따르던지" 
 
지회가 최씨로부터 전달받아 공개한 이 사장의 폭언은 그가 편지에서 말한 “마음 속 깊이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던 직원”이란 말을 무색케 한다. 현재 녹음된 통화내용은 유튜브 등에 올라와 있다.
 
이 사장은 지난 7월19일 퇴근 후 늦은 식사 중이던 최씨에게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이 사장은 최씨에게 삼성전자서비스에 고객불만(VOC)이 접수됐다며 추궁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X끼야, 칼로 찔러서 꼭꼭 조사서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버리던지, 왜 말이 나오게 해 갖고 가서 빌게 만드냐...내일 내가 가서 빌 수도 있어. 고객을 잡으려면 확실히 개잡듯 잡아버리던지 해야 될 거 아냐...X발 죽여 버리면 다 끝나잖아. 신나 뿌려서 같이 죽어버리면 되지...확실하게 잡던지, 입을 막던지, 정 못 이기겠으면 고객의 수행에 따르던지 그래야 남자 아냐 X끼야”라고 쉴 틈 없이 최씨를 몰아붙였다.
 
4분가량 통화가 이어진 끝에 이 사장은 최씨에게 “내일 아침에 너가 맞다이 까던지, 내가 가서 무릎 꿇고 빌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해”라고 지시했고, 최씨는 “예. 알았습니다. 사장님”하고 답했다. 최씨는 이를 견디다 못해 지회에 녹음된 통화내용을 건넸다. 9월25일 작성된 진술서 끝에는 “삼성전자 하청직원에 대한 서러움을 느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직후 최씨는 심적 갈등을 겪었다. 그는 “이 상황에서 사장을 감싸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4년이나 같이 일해 왔는데 사장에 관한 불평이나 불만은 뺐습니다...사장도 알게 될 텐데 제 입장도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서. 이해하시죠?”라며 지회 측 양해를 구한 뒤 진술서를 수정했다. 되레 측은지심은 모진 욕설을 들은 최씨가 이 사장에게 느꼈다.
 
지회는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고객에게 아무 대응도 할 수 없는 것이 서비스 노동자들의 현실”이라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여느 센터에서나 바지사장들로부터 이런 대우를 받고 억압당한다”고 주장했다. 지회에 따르면 이 사장은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욕설을 일삼았으며, 심지어 이보다 심한 경우도 빈번했다고 한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관리자 출신이다.
 
◇"노조 출범 직후 표적감사..3년 지난 자료 들고와 수리내역 추궁"
 
이제는 고인이 된 최씨 직장 동료들이 <뉴스토마토>에 관련 증언을 했다. 가깝게 지냈다는 한 동료는 “수리 기사는 차량으로 이동하며 고객을 방문한다. 빠른 이동이 관건”이라며 “최씨는 카니발 파크 구형을 타고 다녔는데 수리를 거의 매일 같이 했다. 여기에 식대, 전화비, 장비 사용비 등을 다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사측의 지원도 있다. 최씨 9월 급여 명세서에는 식대로 10만원, 차량지원비로 20만원, PDA지원비로 6만원이 명시돼 있다. 그런데 최씨 동료는 “실질적으로 그 명목으로 나오는 돈이 아니다. 그 금액이 건당 수수료 안에 포함이 돼 있다”며 “또 식대 10만원 갖고 어떻게 사나. 라면, 김밥 먹고 산다. 한 달에 기름값만 50만원이다. 이외에 보험에, 엔진오일에, 배터리에. 그래도 차를 안 쓰면 일을 할 수가 없다. 차도 다 본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용접할 때 필요한 가스 등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기본적으로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돈만 100~150만원이다. 200만원 받으면 50~100만원 버는 셈”이라며 “더구나 최씨는 차량 수리 등으로 돈이 더 들어갔다.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최씨는 지난해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 집을 내놓고 처가에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는 조합원으로 찍히면서 표적 감사를 받았다는 게 동료들 주장이다. 천안센터의 경우 최씨를 비롯해 총 8명(내근4명.외근4명)이 집중 감사를 받았는데, 이들 모두 조합원이다.
 
증언에 따르면, 매년 여름 성수기를 전후해 당해 연도 업무에 대해 감사를 받는다. 감사 결과 사고금액이 20만원이 넘으면 자동 해직된다. 한 동료는 “그런데 올해는 4년치 데이터를 가져와서 감사했다. 통상 6개월 단위인데, 3년 지난 자료 들고 와서 그 때 왜 이 자재가 사용됐는지 소명하라고 하는데 그게 기억이 나겠느냐. 그러면 사고금액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아내와 갓 돌이 되지 않은 딸을 남기고 세상을 졌다. 살아 생전 가족사진.
 
결국 최씨는 지난달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회 카톡방에 “그동안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렇진 못해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는 글을 남기고 자신의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웠다.
 
그의 나이 32세. 그의 딸은 다음달 아빠 없이 돌을 맞는다. 현재 노원, 아산, 통영, 울산, 해운대, 광안 등 각 지역별 서비스센터에서 그를 기리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그가 근무하던 천안 두정센터에는 조합원들이 모여 집회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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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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