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황민규기자] 올 하반기 들어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심상치 않은 공시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등 이건희 회장 일가가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들의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향후 경영승계 과정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경영권 승계 작업이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이었던 금산분리, 순환출자금지 등 핵심 정책들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기 시작한 시점에서 본격화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중 금산분리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폭발적 사안으로 평가돼 왔다. 이에 반해 순환출자금지는 신규에 한해 제약을 두기로 해 삼성에 직접적 영향은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삼성'이라는 기업의 상징성에 주목하며 경영권 승계 과정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국내 경제와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경영 승계 결과에 따라 향후 국내 산업 지형도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삼성이 내부적으로는 2세에서 3세로의 경영 승계를 완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자, 금융 등 삼성의 주요사업 부문은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넘겨주는 것을 큰 맥락으로 잡았다는 것. 현재 이뤄지고 있는 삼성 계열사의 지분 배분은 '누가 얼마를 가져가느냐'를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삼성그룹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 '원(One) 삼성'과도 맞닿아 있었다.
아울러 이 회장의 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의 상속소송은 경영 승계 과정에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지배구조의 일대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사법사(史)를 돌이켜 봤을 때 삼성에 불리한 결과가 나온 사례가 거의 없어 이번에도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 교수는 이와 함께 최근 동양 사태가 보여주듯 금융 부문과 산업 부문의 연쇄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재벌 총수 일가가 더 이상 순환출자나 금융기업 등을 이용해 영향력을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금산분리가 민간금융자본의 성장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대학교에 위치한 박상인 교수 연구실에서 1시간여 넘게 진행됐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그는 지난 8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삼성그룹 지주회사 전환 시뮬레이션을 발표해 논란의 정점에 서기도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사진=뉴스토마토)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이건희 회장 마음에 달린 거라 외부에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삼성전자, 삼성생명을 포함해 삼성의 큰 사업 부문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물려 주려는 것 같다. 이건희 회장이 의사결정을 지난해 말쯤에 내린 것 아닌가 싶다. 어떻게 나눠줄까 고민하다가 장남에게 소위 '몰빵'으로 밀어주자는 식으로.
물론 아버지 뜻대로 자녀들이 할지는 모르겠다. 서로 먹겠다고 암투가 있을 수도 있다. 이 회장이 확실히 교통정리를 해주는 편이 나은데, (지금은)그걸 해주지 않고 '사이좋게 살라'고 하는 격이니까. 최근에는 이 회장의 건강에 대한 소문도 돌았다. 때문에 지금처럼 어정쩡한 게 최악이다. 삼성그룹 자체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삼성을 ‘가족기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엄연히 상장기업이다. 그리고 우리는 상장회사라고 하지만, 영어로 하면 퍼블릭 컴퍼니(Public Company)다. 중립적으로 해석하면 공기업인 셈이다. 왜 상장회사라고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공기업’은 외국에선 ‘스테이트 온 컴퍼니’(State on Company), 즉 국가 소유의 기업이다. 상장회사가 퍼블릭 컴퍼니인 이유는 상장하게 되면 주주가 대부분 일반인이 되기 때문이다. 소액주주가 많다. 대주주라고 해도 대부분 일부 적은 지분만을 갖게 된다. 퍼블릭 컴퍼니이기 때문에 많은 규제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삼성을 가족기업, 오너 한 사람의 기업이라 생각한다.
-이맹희씨와의 상속소송이 향후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도 있나.
▲결과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다. 결국 삼성을 지배하는 건 삼성생명이다. 총수 일가가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도 삼성생명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정확히는 20.8%다)
이건희 회장이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삼성생명 주식이 2010년 가치로 8조5000억원 수준이다. 모두 차명으로 받아서 세금을 하나도 내지 않았다. 일부는 처음에 실명전환하면서 에버랜드 CB를 발행해 이재용 남매가 최대주주에 오른 직후 이건희 회장이 "내가 차명으로 가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에버랜드에 싸게 팔아서 삼성에버랜드가 졸지에 1대 주주가 된 것이다. 이때 사실상 2세에서 3세로의 승계는 끝났다. 누가 얼마를 가져가느냐만 남은 것이다. 행여나 이맹희씨와의 소송에서 진다 해도,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큰 영향은 없다. 다만 변수는 될 수 있다. 사법 역사를 보더라도 삼성에 불리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금산분리를 중심으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선 방향을 보는 것 같은데,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자연스럽게 분리가 가능한가?
▲금산분리나 순환출자 문제가 사업간 흐름을 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배구조를 봐야 한다.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 사실상의 충분히 분리가 가능하다. 동부그룹도 과거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들었다.
재벌들이 아예 산업 쪽을 정리하고 그 돈으로 금융에 가서 민간은행도 하고, 민간금융지주회사체제로 가면 우리 시장도 많은 변화가 올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관치금융 일색 아닌가. 민간금융자본이 자라줘야 경제가 성장한다.
기업이 수익성이나 사업성을 기초로 적극적으로 파이낸싱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런 게 없다보니 신산업이 쉽지 않다. 벤처업계의 좌절감과 어려움이 많다. 민간금융자본이 자랄 수 있는 근간이 필요하다. 동양의 경우 산업부문을 정리하고 금융부문에서 크는 게 더 나았다. 매각하고 금융그룹으로 갔었다면 동양이 더 잘됐을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사진=뉴스토마토)
-삼성그룹의 경우 오너경영이나 산업과 금융 간 융합의 장점을 강조한다. 의사결정의 속도가 빠르고, 과감하고 중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의사결정이) 빨리 움직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황제경영이라고 지적하면 삼성은 ‘다 분권화돼 있다’고 말한다. 그래놓고 오너경영의 장점을 말할 때는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말한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오너경영 하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게 꼭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만약 신속한 의사결정이 잘못됐다면 삼성자동차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또 총수가 그렇게 많은 사업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걸로 볼 수도 없다.
패스트 팔로워니, 신속한 의사결정이니 하는 얘기들은 결과적으로 갤럭시 스마트폰 때문에 나온 얘기다. 삼성과 노키아의 차이점이 있다면, 삼성은 내일까지 만들라고 하면 밤을 새서라도 만드는데, 노키아는 퇴근해 버린다는 바로 그 차이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겠는가. 리더 역할을 할 때 아닌가.
삼성을 한 번 경험한 혁신 기업이 나올 때는 애플보다 훨씬 더 특허권, 재산권 문제에 대비하고 나올 것이다. 결국 이는 삼성전자의 변화된 시장 위상에 걸맞은 리더로서의 비전이 없다는 얘기다. 심각한 자기인식이다. 그러니까 혁신적인 것이 나오는 것이 없는 것이다.
-동양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재벌기업의 내부 규율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나.
▲재벌경영 체제에서는 이른바 ‘황제경영’이기 때문에 사실상 내부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사건이 터지는 양상을 보면 이사회 자체가 아무 의미 없다. (사외이사들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책임지기 싫으니까. 가서 돈이나 얼마씩 받아오는 거다.
사외이사제도가 학교, 공직자들이 재벌에 포획되는 수단으로 잘못 쓰이고 있다. 교수도 사외이사를 두 개까지 할 수 있는데, 이게 월급보다 많다. 아무 것도 안하고 그렇게 돈을 받는데 가서 무슨 얘길 하겠나. 그리고 사외이사를 어떤 사람을 뽑겠나. 나 같은 사람을 뽑겠나. 사외이사제도 자체가 작동이 안 된다.
미국은 전문경영진 밑에 기관투자자든, 개인투자자든, 대주주가 경영인을 감독하게 된다. 그게 이사회를 통해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주주가 직접 경영을 하고 있다. 이사 선임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심각하다. 동양 내부 상황을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내부에서도 동양의 심각성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하더라. 총수 일가와 핵심 측근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계열사 사장들조차도 몰랐다고 한다.
최근 동양과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된 동부, 한진 역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문제가 구조적으로 부담이 덜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행위규제를 더하겠다, 감독체계를 바꾸겠다, 대주주 적격 심사를 하겠다’고 하는데 물론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근본이 바뀌는 건 아니다.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순환출자 금지하고 금산분리를 철저히 시행하는 구조적 개혁 없이 제2, 제3의 동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게 만약 삼성이라면 그야말로 악몽이다.
-삼성 쪽에서는 ‘1등의 비애’를 얘기한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해외에서의 견제도 심해진 데다 내부에서는 타깃으로 설정되면서 각종 규제의 피해자가 된다는 논지다.
▲잘 나가기 시작하면 어느 누구든 견제가 들어온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해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경영환경이 바뀌는 건 삼성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다.
반대로 삼성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가. 대통령 수행 때도 자가 비행기를 이용한다. 언론도 삼성을 건드리나. 삼성 기사가 제대로 나는 곳이 어디 있나. 내가 삼성을 비판하면 듣는 사람이 오히려 무서워한다. 공포감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이 국가 권력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내 얘기가 어떤 사람들은 과격하다고 한다. 우리 현실이 굉장히 비정상적이라서 그걸 정상적으로 바꾸자는 건데, 그걸 과격하다고 느낀다. 지주회사 체제로 가자는 거다. 재벌 해체도 아니고.
현실 자체가 왜곡된 것이 너무 많다. 재벌들도 장기적으로 사회적 모순이나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이 지속되면 큰 변혁이 온다. 지나친 순환출자나 금융기업을 이용한 영향력 확대를 그만하고 자신이 가진 주주만큼의 영향력만 발휘하는 건전한 대주주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기업 레거시(Legacy.낡은 시스템)가 긍정적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 없는 기업이 좋다고 하는 게 아니다. 주인 없는 기업은 문제가 많다. 레거시가 좋게 작동하려면 미국처럼 기관이나 개인 투자자 중 자본이 많아서 대주주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한국경제에도 있다면 훨씬 더 긍정적일 것이고, 총수 일가도 누리는 부에 대한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다.
재벌문제로 인한 질책도 안 받을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재벌 총수 일가와 국가에 좋다는 걸 알고 개혁에 대해 마음을 열어주면 좋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