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국내 해운업계가 유동성 확보 등 자구책 마련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에도 상황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해운업에 대한 전세계 사모펀드 투자가 급증하고, 내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업황이 회복될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에도 유독 국내 해운업계에만은 비관적인 시선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근거는 상대성에 입각한 비교론. 각국 정부 지원에 힘입어 차근차근 회복기를 대비하고 있는 글로벌 선사와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어서다. 때문에 내년 하반기 운임 인상 등 업황이 회복기에 접어들어도 물동량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대열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됐다.
해운업 전문 컨설팅 기업 마린 머니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해운업에 대한 사모펀드 투자는 올 들어 27억달러(약 2조8669억원)를 넘었다. 이는 지난 2008년부터 5년간 해운업에 투자한 사모펀드 총액(연평균 17억달러)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투자 증가세가 연말까지 이어질 경우 2011년 역대 최고치였던 34억달러를 경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업에 대한 사모펀드의 집중적인 투자는 내년부터 세계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고 물동량이 늘면서 해운업도 기지개를 펼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에 따른 것이다.
◇국내 해운업계가 유동성 확보 등 자구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지만 내년 업황이 회복돼도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자료)
이에 글로벌 상위 해운사들은 연비가 좋은 대형선박을 미리 발주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으로 극심한 불황기를 이겨내고 있다.
덴마크 머스크의 경우 올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11.2% 증가한 5억5400만달러의 순익을 올렸다. 6분기 연속 흑자행진이다. 운임 하락으로 매출은 소폭 하락에 그쳤지만, 고연비 선박을 활용한 비용절감을 통해 순익은 꾸준히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 2011년
대우조선해양(042660)으로부터 고연비 선박인 '트리플 E' 20척을 발주했으며, 오는 2015년까지 순차적으로 선박을 인도받을 예정이다. 조선업이 불황일 때 발주가를 낮추는 등 각종 혜택을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이와 반대로 국내 해운사들은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유류비는 2005년에 비해 2배 이상 올랐는데 운임은 오히려 감소하는 등 이익보다 비용이 늘었다.
이미 글로벌 해운사들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및 고연비 선박 발주를 통해 호황기에 대비하고 있지만 국내 해운사의 경우 회사채 상환을 위한 유동성 확보에 대처하는 것만도 버거운 실정이다.
업황이 회복돼도 답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대로라면 내년 하반기 이후 업황이 회복되더라도 국내 해운사들이 취급할 수 있는 물량이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선박이 대형화되는 속도만큼 물량이 늘지 않으니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운임인상도 힘들 것이란 판단에서다.
여기에 내년 2분기부터 세계 3대 해운사인 머스크, CMA-CGM, MSC가 공동 운항을 시작하게 되면 글로벌 상위 해운사에 물량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업 회생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머스크에 수출신용기금 5억2000만달러를 포함해 총 62억달러의 금융 차입을 지원했고, 중국은행은 코스코에 108억달러의 신용을 제공했다. 이외에 독일, 프랑스, 인도, 일본 등도 정부 국책 금융기관이 주축이 돼 각종 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들 해외 해운사들은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고연비 선박을 선 발주하는 등 해운업 회복기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해운업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하는 조직을 갖춘 국내 금융기관조차 없다시피 하다. 특히 업계의 숙원이었던 해운보증기금 설립도 내년 상반기 이후로 미뤄져 있는 상태다.
지난 7월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회사채 정상화 방안도 신용보증기금 심사에서 대부분의 중소 해운사들이 탈락하는 등 규정이 까다로워 해운사들이 이용하기에 제약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해운사들은 당장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이 최우선 과제라 신조선 발주는 꿈도 못 꾸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운업 회복세가 시작되면 글로벌 선사들과 국내 선사들의 격차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