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스포츠 경기장 건설은 팬들의 경험이 우선시돼야"

입력 : 2013-11-21 오전 10:39:22
◇정성훈 로세티 이사. (사진제공=정성훈)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저는 스포츠 경기장만큼은 기술적(Technical) 부분에 비해 감성적(Emotial) 부분이 먼저고, 기능(Function)보다 팬 경험(Fan Experience)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기술적인 부분과 기능적인 부분은 어찌보면 가장 당연하고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스포츠 건축설계 전문기업인 로세티(ROSSETTI) 내에서 한국 출신으로 처음 임원에 오른 정성훈(43) 이사는 한국 경기장 건설과 운영에 아쉬운 점이 많은 듯 했다. 국내 지자체가 경기장을 건설하며 철학, 비전, 운영 목표가 없이 지은 끝에 결국 수차례 설계 변경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정 이사는 지난 16년간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경기장 건설과 개선 작업에 참여하며 잔뼈가 굵은 이 분야 한국인 전문가다.
 
추신수의 지난 시즌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 필드(Progressive Field),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홈구장인 코메리카 파크(Comerica Park)의 리노베이션 작업을 정 이사가 총괄했다.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프로축구(MLS), 프로농구(NBA) 등 다양한 경기장의 건설과 리노베이션 등에도 정 이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최근 뉴스토마토는 일시 귀국한 정 이사와 두 차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 이사는 지난 2일 오후 개최된 한국야구연구학회(SKBR)의 특별 행사 '서남권 돔야구장 활성화 및 서울시 야구 발전을 위한 특별 심포지엄'에서 전문가의 시각으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다음은 정 이사와의 일문일답.
 
◇US오픈 테니스 대회의 홈구장인 'USTA National Tennis Center'. (사진제공=로세티(ROSSETTI))
 
-독자를 위해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합니다.
 
▲저는 미국의 미시간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로세티(ROSSETTI)라는 스포츠 건축설계 전문 기업에서 이사로 있는 정성훈입니다. 연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이후 1998년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건축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미국 현지 건축사무소에 입사했고 이 회사에서 테니스경기장, 체조경기장 등의 설계를 맡으며 스포츠 경기장 설계 전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현재는 스포츠 건축설계 전문사무소인 로세티로 자리를 옮겨서 이사로서 재직 중입니다.
 
-항상 바쁘실텐데 근황은 어떠신지요,
 
▲'스포츠 경기장'이라는 프로젝트의 특성상 제가 맡은 다양한 경기장들이 로세티가 위치한 미시간주 밖의 미국의 여러 지역과 유럽, 아시아 등지에 폭넓게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 내에서의 디자인 작업은 물론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등을 위한 출장도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지난 몇 년간 중지됐던 프로젝트 중 재개된 것들이 꽤 있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 분야도 서서히 느끼고 있지요.
 
-방한기간 중 학술대회·심포지엄 등의 참석 외에도 목동구장과 대구시 새 야구장 공사현장도 들르신 것으로 압니다. 현재 넥센 히어로즈가 일일 대관 형식으로 목동구장을 사용하고 있지만 구장이 노후하다는 불평도 나오곤 합니다. 목동구장의 현재 모습은 어찌 보시는지요.
 
▲목동구장에 방문하긴 했습니다만, 구장을 자세히 둘러봤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구장 자체에 대한 평가를 하기는 무리가 있어요. 다만 제가 오목교역에서 걸어서 가본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접근성에 관련된 'Fan Experience' 면에선 아쉬움이 보였습니다. 오목교역-목동구장 간의 관계 설정, 그리고 그 두 장소의 사이에서 발생 가능한 많은 이벤트와 활동(Activities)들이 목동구장 입지와 'Fan Experience'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형성할 수가 있지요.
 
-대구시 새 야구장(이하 대구 신구장) 공사 현장에서 시공 관계자와 발주자인 시 공무원을 접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토공사 공정이 진행중인 상황이라 공사의 계획만 살필 수 있는 상황인데요, 현장 분들을 접한 소감 그리고 향후 계획을 현장에서 접하며 받은 느낌· 소감 등을 듣고싶습니다.
 
 
▲대구 신구장에 관련된 모든 분들의 목표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야구장을 만드는 것이지요. 특히 현장소장님 열정을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현장에서 만난 대다수 분들이 너무 진지해 보였어요.
 
-'진지해 보였다'고요..
 
▲하시는 말씀이 대부분 건축적·기술적 부분들이 많았고요. 스포츠 경기장은 많은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한 건축물임은 맞지만, 여러모로 재미가 있고 감성이 깃들어진 공간이에요. 비록 공사 현장에서 이러한 것들을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리더의 자리에 계신 분들께서는 이런 부분을 보여주셔야 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대구에서는 마치 '번개'처럼 잡힌 스터디 형태의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좋은 대화들이 공유됐나요.
 
▲공사 현장에서 제가 진행하는 스포츠경기장의 설계를 주제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현지의 모든 분들이 저의 접근 방식, 설계 방법, 스포츠 경기장에 대한 인식 등에 대해 많이 놀라시며 설계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런 얘기와 자문을 듣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셨어요. 비록 설계가 끝이 나고 공사를 현재 진행하는 단계이나, 지금도 늦은 시점이라 생각하지 않고 혹여나 조금이라도 저의 도움과 조언이 필요할 경우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다시 대구를 찾을 겁니다.
 
◇미국 프로농구(NBA) 팀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홈경기장인 'Palace of Auburn Hills'. (사진제공=로세티(ROSSETTI))
 
-서남권 돔 야구장(이하 고척돔)과 대구 신구장은 돔구장과 비돔구장이라는 차이점은 물론 주변 환경, 접근성, 도시 구조 등에 차이가 있지요. 다만 비슷한 시기에 완공 예정이기에 고척돔과의 비교가 되곤 합니다. 우선 고척돔의 장점과 단점,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국에 있는 때가 드물어) 고척돔과 대구 신구장 두 군데 다 한번씩 밖에 방문하지 않았고 설계 도면을 보지 않아서 답변이 사실 어렵습니다만, 제가 아는 한도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고척돔의 최대 장점은 당연히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것이죠. 돔구장이라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장점이기는 합니다만 그 활용도는 의문입니다. 야구장 그라운드·관중석의 형태적 특성상 다목적(Multi-Purpose) 경기장 사용에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물론 극복 방안이 설계에 미리 반영돼 있다면 괜찮습니다.
 
단점으론 만약 프로야구 경기장으로 쓰여진다면, 관중석 이외에 'Fan Experience'를 위한 배려가 아직 부족해 보이고, 선수·구단·운영자를 위한 공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교통에 관련된 입지는 제가 가진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장단점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하철 구일역에서 걸어서 고척돔에 가보고 느낀 바로는, 구일역에서 고척돔까지 걸어가는 길이 접근성에 대한 좋은 'Fan Experience'를 줄 가능성이 커 장점으로서 발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척돔에 대해 말씀드릴 부분은 바로 옆에 위치한 초등학교(고원초등학교)입니다. 모든 분들이 이 학교를 주요 문제점이자 단점으로 여기시지만, 만약 설계 초기 단계에 이 학교를 고척돔의 일부분으로 함께 고려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경기장을 주변의 기존 건물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로서 만드는 것이지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요..
 
▲초등학교 교실 창 밖에 야구장이 펼쳐져 있고 외야의 한 부분이 학교 교실의 벽면이나창이면 멋진 조합이 아닐까요. 이러한 디자인이 최근의 트렌드 중 하나인 지역성(Local Context)을 반영한 디자인이고 세계에 단 하나뿐인 그 지역에만 고유 존재하는 고유한 특이성(Identify)을 지닌다고 할 수 있겠지요. 
 
구단이 이 학교의 야구부 창단을 지원할 수 있고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 모두에서 고척돔과 초등학교 간의 공생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마·프로 간의 상징성도 만들 수 있고, 구단의 마케팅과 학교 인지도를 비롯한 많은 긍정적 효과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시간적으로 너무 늦은 제안일까요?
 
-대구 신구장의 장점과 단점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대구 신구장은 미국 MLB 야구장의 좋은 부분을 인용하려는 노력이 여럿 보입니다. 예를 들면 관중석의 배치나 개방된 콩코스와 같은 몇몇 부분이지요. 충분히 장점의 하나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아니라 이러한 디자인의 깊은 이해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장점을 크게 살릴수가 없어요. 상세한 설계도면을 보거나 세부 사항을 파악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어떻다고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미국 프로축구(MLS) 팀인 'Red Bulls NY'의 홈경기장인 'Red Bulls Arena'. (사진제공=로세티(ROSSETTI))
 
-최근 대전 야구장이 그라운드 흙과 펜스 등을 개량했고, 수원 야구장도 신축 버금가는 정도의 리모델링 공사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연차가 적잖은 구장이라 신축 가능성도 계속 제기되고 있지요. 더불어 입지 문제로 창원시 새 야구장 공사가 표류 중이나, 여기도 신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었으면 좋겠다' 무엇이 있나요.
 
 
▲그라운드, 펜스, 화장실 개수, 선수 시설 등의 건축적·기술적 부분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쉽게 개선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초기 계획 단계에서 정치가와 행정가들로 구성된 리더 집단이 신축 또는 증축 구장이 가져야 할 철학과 비전,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좋은 경기장이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모든 설계가 끝났음에도 나중에 계속 벌어지는 많은 설계 변경들은 이같은 철학과 비전, 목표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여깁니다.
 
-철학과 비전, 목표의 부재라면..
 
▲철학과 비전, 목표가 제대로 수립되면 비로소 저와 같은 전문가들이 이것들을 현실화시킬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건축가인 제가 건물얘기나 기술적인 얘기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시는 분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그 이유는 제 포지션이 '스포츠 경기장설계 전문가'이기 때문이죠.
 
물론 미국의 모든 스포츠 경기장설계 전문가가 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포츠 경기장만큼은 기술적(Technical) 부분에 비해 감성적(Emotial) 부분이 먼저고, 기능(Function)보다 팬 경험(Fan Experience)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기술적인 부분과 기능적인 부분은 어찌보면 가장 당연하고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저와 제가 재직 중인 회사인 로세티(ROSSETI)의 디자인철학 'Designing Experiences, Generationg Value'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스포츠 경기장은 스포츠라는 콘텐츠(Contents)를 팬이라는 소비자(Consumer)가 소비하는 장소입니다. 따라서 경제성이 중요하고 이익을 창출해야할 임무가 명확하지요. 스포츠 경기장은 이러한 임무와 역할을 만족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고 지어져야만 합니다.
 
◇로세티(ROSSETI) 인터넷 공식 사이트 메인화면. 로세티가 그동안 건설한 스포츠 경기장의 이름이 나열돼 있다. 로세티가 건설한 스포츠 경기장은 캡처 화면에 표기된 경기장 외에도 많다.
 
-국내 법규상 퓨처스(2군) 훈련장 규모 야구장이 아니라 1군의 경기가 열릴만한 규모의 야구장은 기업이 가질 수 없고, 고로 지방자치단체가 짓고 소유하면서 프로야구단에 임대합니다. 그만큼 한국에서 스포츠 인프라 구축과 운영에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지자체가 이런 마인드로 스포츠 인프라 공사를 해야한다, 의견을 부탁합니다.
 
▲지난 60년간 한국 스포츠 경기장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목적만을 가지고 지어졌다고 생각됩니다. 운영 또한 이러한 목적에 부합해 정부 기관 주도로 이뤄져 왔고요.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스포츠산업이 전반적으로 빠르게 발전되는 요즈음 한국에서는 스포츠 인프라의 인식과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스포츠'는 이익을 창출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익은 팬으로부터 나오니 'Fan Experience'가 중요한 것이고요. 팬이 바로 시민이라 공공 이익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차별성이 필요한 스포츠 산업에서는 구분되기도 합니다. 결국 시대 변화가 스포츠 인프라를 바라보는 지자체의 시각에 변화를 요구하고 그 요구를 만족시키는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지요.
 
또한 초기계획단계에서부터 저와 같은 스포츠 경기장설계 전문가의 자문과 협의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스포츠 인프라 컨설팅·설계에 경험이 많으신 분으로서 미국 야구장과 비교해서 국내 야구장에 대해 아쉬웠던 사항, 그래서 '이것은 저렇게 개선했으면 좋겠다', 정리하자면 무엇이 있나요.
 
▲야구장을 포함한 스포츠 경기장은 시설 면에서 본다면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수와 구단을 위한 시설', '팬을 위한 시설', 그리고 '운영자를 위한 시설'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현재 국내 야구장은 이 세가지 중 어느 한가지도 미국의 야구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특히 팬을 위한 시설에는 너무나 큰 아쉬움이 있습니다. 안전문제, 화장실 갯수, 편의시설 등의 기본적인 부분은 당연한 것이고 제가 늘 강조하는 'Fan Experience' 측면에서 개선돼야 할 부분이 가장 큽니다.
 
야구장에서 팬은(저는 '관중'이라는 표현을 싫어합니다. 스포츠 경기장은 그저 경기를 보기만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3시간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야구 경기만 집중해 보지 않습니다. 팬들에게 경기와 함께 제공해야 할 것, 이것을 고민하기 시작하면 개선할 부분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미국 프로풋볼(NFL) 팀인 디트로이트 라이온즈의 홈경기장인 'Ford Field'. (사진제공=로세티(ROSSETTI))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이준혁 기자
이준혁기자의 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