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노무현' 꺼내드는 새누리..국정원 개혁 물타기 시즌2

대통령 독대도 없앤 노 정부 국정원을 한나라당 '대선개입 국정원'과 동일시

입력 : 2013-12-12 오후 6:12:20
[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NLL 포기 의혹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물타기했다는 비난을 받은 새누리당이 국정원 개혁특위가 본격 가동된 첫날 다시 '노무현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회선 새누리당 국정원특위 위원은 12일 과거 노 대통령이 재임 시절 국정원의 역할 강화를 강조하던 언급 자료를 국정원으로부터 넘겨받아 이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향토 토착비리 척결 등을 위해 국정원의 정보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언급을 했다.
 
새누리당의 국정원 자료 전격 공개는 이러한 노 대통령의 언급을 무기삼아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차단하려는 국정원특위의 활동을 무력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대통령이 딴 맘을 먹지 않는 한 이제 국정원은 스스로는 나쁜 짓을 하지는 않을 수준까지는 됐다'고 까지 말하는 등 이전 민주정부에서는 정상적인 정보기관으로 기능했던 국정원과, 이명박 한나라당 정부를 거치면서 노골적인 대선 개입을 일삼는 조직으로 변질된 국정원을 같은 집단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새누리당의 주장은 적지않은 비난을 살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자체 개혁안을 내놓은 12일 김회선 새누리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민주당 의원 등이 집권 당시 발언했던 국정원 운영 방향에 "100%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이날 국정원으로부터 건네받았다는 자료를 보면 노 전 대통령은 물론 문 의원이 집권을 해보니 국내 정치 활동의 중요성과 대공수사권의 존치 필요성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국정운영을 해보면서 국정원의 실상과 냉엄한 국가 안보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 속에 나온 말씀이며,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애국심에서 비롯된 순수한 충정이기에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위 위원들과 국민들께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함께 하시는 것이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특위의 결과물을 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느닷없이 노 전 대통령의 견해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는 법적 조치가 전무해 사실상 '함량 미달'인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을 옹호하는 한편 국정원의 개혁을 좌초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3월 23일 "(국정원) 개혁을 할 과제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가면 제도적으로 크게 개혁하지 않아도 된다"며 "지금 수준은 대통령이 민주적이면 민주적인 기관이 된다. 혼자서 나쁜 일을 하지 않을 수준까지 왔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의원도 시민사회수석이었던 2004년 6월 30일 "국정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면서 "역할을 다하는 국정원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원하는 수준의 국정원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과거 '노무현·문재인'의 발언을 빌리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여기엔 중대한 논리적 오류가 존재한다. 노 전 대통령 등이 국정원의 역할 확대를 강조하던 당시에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를 없애는 등 국정원이 과거 안기부 시절의 정치 개입 행태를 탈피하고 정상적인 정보기관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여러 개혁조치들을 단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 의원이 배포한 자료에서 노 전 대통령과 문 의원 등은 정보기관으로서의 국정원의 역할을 강조했고, 참여정부에서 그것이 상당한 진전을 보았다고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반부터 정권을 찬양하고 야당에 비판적인 댓글을 단 것도 모자라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변질된 지금의 국정원과 과거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과거에는 국정원의 정보능력 및 조정능력을 활용했으나 지금은 안보회의만 관여하고 뒷전에 물러나 정보만 일부 제공하고 있다"는 문 의원의 발언은 참여정부 국정원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최고 정보기관으로만 기능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개혁추진의 결과로 노 전 대통령은 정권 막바지인 2007년 9월 21일 마침내 "국정원 조직 혁신의 사례가 우리 국가·정부 안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공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상당히 모범적인 사례라고 자랑할 만하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극찬한 것이다.
 
국정원을 정치 개입 안기부에서 정상 정보기관으로 바꾸려고 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노력은 그러나 이명박 한나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물거품이 된다. 변질된 국정원이 벌인 대선개입 댓글 사건은 정권을 재창출한 박근혜 정부의 발목을 1년이 다 되도록 잡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장 독대 보고를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이 전 대통령이 생각한 국정원은 노 전 대통령이 만들고자 했던 '순수 정보기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과 문 의원의 과거 발언으로 국정원 개혁에 힘을 빼기 위한 김 의원의 시도는 의도치 않게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과 새누리당 정권의 국정원을 극명하게 비교하게 하고 있다.
 
김영근 민주당 수석부대변인은 "김 의원이 자기 당의 특위 간사인 김재원 의원을 제치고 국정원 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이유는 간단하다"며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이 한 발언이 지금의 국정원 개혁을 저지할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얄팍한 속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수석부대변인은 "국정원을 국가 안보에만 활용한 참여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사건'이 밝혀진 지금 적용하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분명히 했다.
 
여야가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에 대해 옹호와 반대로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이 또다시 '노무현'을 이용해 NLL에 이은 국정원 개혁 저지 물타기에 나설 것인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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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