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장하나와 '극장의 우상'

입력 : 2013-12-13 오전 8:00:00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인간이 범하기 쉬운 편견을 4대 우상으로 분류했다. 그중 하나가 ‘극장의 우상’으로, 주관에 근거하지 않고 권위나 전통, 사회적 기류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오류를 일컫는다. 이는 곧 집단이성의 비극으로 연결될 수 있다. 세상 모두가 ‘맞다’고 외치는데, 설사 그것이 오류라 할지라도, 나 홀로 ‘아니다’고 외친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나만 ‘바보’ 되고 ‘왕따’ 되기 십상이다.
 
장하나 의원에 대한 과도하고 반이성적인 돌팔매가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새누리당은 의원직 제명안까지 국회에 제출했다. 퇴진 요구에 직면한 박근혜 대통령이 분노를 표출했으니 청와대 호위부대로 전락한 새누리당의 이런 행보야 당연해 보인다. 민주당도 보조를 맞췄다. 김한길 대표마저 나서 장 의원의 돌출행동에 대해 엄중 경고했다. 장 의원은 금기를 깼다는 이유로 집안에서조차 역적으로 내몰렸다.
 
장 의원은 부정선거로 치러진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을 선언했다.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과 군이 수천만건의 댓글을 통해 조직적으로 대선에 불법 개입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이 상실됐다는 주장이다. 장 의원은 이를 근거로, 그 수혜를 입은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와 함께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통령 보궐선거를 요구했다. 진상규명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묵살하고 검찰총장과 수사 책임자를 ‘찍어내기’ 함으로써 스스로 공범임을 시인했기에 더 이상의 기대를 가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장 의원의 주장이다.
 
이미 정국은 헤어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시작으로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 5대 종단이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들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검 도입 등 또 다른 충돌 지점이 예고돼 있다. 집권 1년을 대선 불법개입 논란에 허무하게 잃어버린 현 정권은 내년 전국동시 지방선거라는 또 다른 풍랑을 맞게 된다. 당연히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비극이다. 동시에 국론은 정확히 둘로 쪼개졌다. 흑백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갈등 조정은커녕 심화되는 대립 구도를 막을 길이 없다. 청와대는 ‘돌파’로 현 정국 타개 방침을 정한 듯 보인다. 이미 국민 상당수가 유신시대의 공안통치 공포를 떠올릴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원이 앞장서고 검찰, 경찰 등 사정당국이 뒤따르고 있다. 언론을 비롯해 비판세력에게는 예외 없이 종북 딱지가 붙여져 재갈이 물려지고 있다. 시계는 4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정권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임기 내내 국정원발 파고에 휩쓸려 제대로 된 국정운영 한번 못한 채 막을 내릴 수도 있다. 특히 정통성이라는 치명적 한계가 노출됐다. 부담이다. 사법부 판결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재선거는 당연한 선택지로 보인다. 장 의원 말마따나 동네반장 선거도 공정하지 못한 룰에 의해 진행됐다면 뒤집고 다시 해야 마땅하다. 하물며 국가 최고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선거다. 그래야 이 땅에 정의가 바로 선다.
 
민주당도 자멸의 길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국회는 국민의 목소리를 오롯이 반영해야 하는 대의 민주정치 최후의 보루다. 이미 상당수가 정권 퇴진에 공감하고 있음에도 프레임 전쟁에 휘말려 계산기만 두드리는 기회주의 정치로는 결코 국민의 신임을 받는 수권정당으로 올라설 수 없다. 민주당이 배출한 두 전직 대통령의 유언인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을 당사에 버젓이 걸어놓고도, 정작 민주당은 두려움에 떨며 시민 뒤에 숨어서 양심을 버리고 있다. 잘못된 프레임을 깨고 '극장의 우상'에서 깨어나야 할 때다.
 
김기성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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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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