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현대상선, 생존 몸부림..STX 후폭풍도 '한몫'

STX 등 연쇄 부실로 채권은행, 기업대출 보수 선회

입력 : 2013-12-23 오후 2:45:59
[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유동성 위기에 빠진 국내 해운사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채권은행들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보유 중인 자산 및 계열사 매각은 물론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초강도 자구책도 내놓고 있다.
 
해운업의 장기 침체로 국내 1, 2위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모두 모그룹이 단독으로 부실을 책임지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특히 계열사의 지원이 자칫 동반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 그룹 내 상호보증과 지원에 대해서는 채권단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때문에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금융권의 자금 지원이 절실한데 채권은행들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STX그룹을 비롯해 웅진그룹, 동양그룹 등 올 초부터 대기업 부실사태가 잇달아 터지면서 부실 채권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다, 한국은행의 금리인하로 채권은행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현금 유동성이 급감했다. 이중에서도 STX그룹의 경우 채권단 내부에서조차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자조와 반론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다른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국내 해운사들이 최근 보유 중인 자산 및 계열사 매각은 물론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초강수 자구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사진=현대그룹)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분기 별도 기준 KB금융, 하나금융지주, 신한지주, 우리금융 등 국내 4대 금융지주사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3분기 말 국내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은 1.80%로 전 분기(1.73%) 대비 0.07%포인트 상승했고, 부실채권 규모는 25조8000억원으로 9000억원 늘었다. 은행들도 해운사와 마찬가지로 이익은 감소하는 데 빚은 더 늘어난 경영난에 처한 셈이다.
 
신규 부실 5조3000억원 중 대기업 부문 신규부실 발생액은 2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동양 계열이 5000억원, STX 계열이 1조4000억원을 기록해 전체 신규 부실의  절반가량(41.6%)을 차지했다. 잇단 대기업의 부실이 결국 은행들의 수익성 하락을 이끈 것이다.
 
또 지난 10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올 4분기 은행들의 대기업 대출태도지수는 3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3을 기록했다. 은행들도 현금 유동성 보유량이 감소하면서 기업 자금 지원에 보수적으로 경영방침을 선회했다는 의미다.
 
이 여파로 한진해운이 공을 들였던 4억달러 규모의 영구채 발행도 일부 채권은행들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영구채 발행이 좌절된 한진해운은 이보다 규모가 작은 3000억원의 신디케이트론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영구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현대상선도 지금으로선 성공 가능성이 낮은 상태다.
 
채권은행들의 자금사정이 어렵게 되면서 기업들에게 요구하는 자구책의 강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앞서 파격적인 자구책을 제시했던 동부그룹이 자구적 구조조정의 표본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다.
 
동부그룹은 지난달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자구 계획안을 내놨다. 동부하이텍,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발전당진 지분 등의 매각을 통해 2015년까지 총 차입금(6조원)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선제적인 구조조정으로 유동성 위기론을 불식시키겠다는 전략이다.
 
STX와 웅진, 동양사태에 따른 교훈이다. 지지부진한 계열사 구조조정이 그룹 전체를 나락으로 빠트릴 수 있다는 시장의 경고이기도 하다. 이는 곧 '대마불사'가 아닌 '대마필사'가 돼 주력사업 외에는 정리하는 수순으로 유인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이 같은 행렬에 동참했다. 한진해운은 지난 19일 최대 2조원의 자금조달 계획을 발표했다. 한진해운은 터미널 지분과 선박, 해외 부동산, 유가증권 등 보유 자산 매각과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키로 했다.
 
또 수익성 향상을 위해 일부 컨테이너 적자 노선과 탱커, 케미컬 영업 철수 및 축소 등도 검토하기로 했다.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서라도 생존으로 방향을 확고히 잡겠다는 의미다.
 
한진해운 자구책 발표 3일 후에는 현대상선도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초강도 자구책을 내놨다. 앞서 매각을 부인했던 현대증권을 비롯해 현대자산운용, 현대저축은행 등 금융 3사를 매각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금융사업에서의 철수를 의미한다.
 
현대그룹은 그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금융부분을 매각하고 그룹의 자원과 역량을 해운과 산업기계, 대북사업 등 4개 부분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부동산, 선박, 유가증권 등 보유자산 매각과 유상증자 등 자본 조달 방안도 마련했다.
 
금융계열사 등의 매각 방식은 SPC(특수목적회사) 설립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동부그룹의 자구안과 닮은 꼴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인력 구조조정과 사업재편, 자산매각 등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망라돼 있다"며 "기업 회생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앞서 그룹이 해체된 STX그룹에 대한 원망의 눈길도 제기됐다. STX 사태가 채권단의 부담으로 자리하면서 해운사들의 자금난을 더욱 어렵게 했다는 일종의 원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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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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