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인류 문화유산 '김장'의 나라에서 '불통'이라니

입력 : 2013-12-23 오후 5:57:09
이달 초 아제르바이잔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우리 선조들이 일궈낸 유구한 역사 속에 수백년 자리하고 있는 김치와 또 이를 만드는 '김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소식이었다.
 
학계에서는 고려시대 학자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발견된 '무를 소금에 절여 구동지에 대비한다'는 기록을 근거로 이때부터 김장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남방에서 들어온 고추가 대표 조미료로 사용되면서 지금의 맛깔난 김치로 발전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전통 김치의 종류만 무려 260여 가지에 이른다. 거기에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퓨전까지 더하면 김치 하나가 가진 다양성은 실로 대단하다.
 
이미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 됐다. 미셸 오바마의 김치 사랑도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진지 오래다.
 
그러나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김치를 담그는 과정의 메시지까지 인류의 유산으로 검증됐다는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을 대비하는 김장 담그기는 단지 추운 계절 먹거리 확보를 위한 생계 활동의 범주를 넘어섰다. 옆집 돌쇠네에서 시작해 물레방아 뒷집 개똥이네를 마지막으로 이웃들이 품앗이를 하며 정을 나누는 소통의 축제다.
 
이렇게 모여 쪼개고 저린 배추는 알싸한 맛을 내주는 채 썬 무와 함께 고춧가루, 마늘 등 각종 양념으로 버무려 진다. 손가락으로 '슥~찢어' 서로의 입에 넣어주는 일은 1년에 단 한번 오는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 같은 소통의 문화, 버무리는 어울림, 거기에 수백 가지 파생된 다양성을 세계가 인류의 소중한 가치로 인정한 것이다.
 
우리들만이 가진 독특하고 자랑스러운 민족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문화가 바로 김장이다. 우린 이렇게 '김치'처럼 살아왔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 곳곳에서 '불통 대통령'이란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국정 운영의 영향력이 직접 미치는 곳곳에서 마찰로 불거지고 있다. 정치권은 대통령의 소통에 대한 논란을 두고 날선 공격을 벌이고 있다.(기실 그들도 상대와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건 매한가지지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최근 이를 두고 "원칙대로 하는 것에 손가락질하고 불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불통"이라는 발언을 했다. 아무리 정당한 주장일지언정 상대와 마주하지 않을 땐 그저 심술 맞은 고집쟁이로 비춰진다는 걸 모르는 심란한 발언이다.
 
점점 지지하는 국민이 늘고 있는 '철도노조 파업' 현장에도 역시 양측의 소통은 부재다. 청와대는 "민영화 하려는 의도가 없다는데.."라며 먼 산 바라보듯 뒷짐을 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경찰은 민주노총에 대한 유례없는 대규모 공권력 투입으로 대화의 불씨를 밟아 버렸다.
 
이는 얼마 전 서울시와 서울시지하철노조가 대화를 통해 합일을 이루면서 교통대란을 막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행복주택은 또 어떤가. 시범지구 주민들과 적극적인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던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구지정을 강행했다. 죽도록 싫다는 사업을 끝까지 밀어 붙이고 있다. 물론 사업이 가져다 줄 긍정적인 측면은 공감한다. 그러나 무수한 울분이 있지 않던가.
 
해법 말고 불도저 처방을 내린 이 사업은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아졌다. 찬성하는 일부 국민들은 반대 주민들을 '님비', '종북'으로 몰아세웠다. 지구 주민들은 또, 그들을 원망한다.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진 정치권도 양보 없긴 매한가지다. 불통정부를 대변하는 국정원 개혁 추진은 정치권이라는 또 다른 불통이 허무하게 동력만 낭비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7개월 만에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지지하던 여성들까지 등을 돌렸다. 국민들은 '자랑스러운 불통' 말고 마주봐주길 원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닌가.
 
대통령과 국회가 국민들과 함께 잘 버무려진 맛있는 김치 한번 만들어 볼 때다. 우린 그렇게 살아왔다.
 
생활부장 박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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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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