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수상한 그녀', 놀라운 심은경..신명나는 시간여행

입력 : 2014-01-07 오후 12:44:14
◇'수상한 그녀' 포스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영화 '수상한 그녀'는 아들을 자랑하는 것 밖에 모르는 70세 욕쟁이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20세 꽃처녀가 된다는 막연한 상상을 그린다.
 
현실성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소재와 설정을, 2인 1역의 나문희와 심은경의 연기력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 두 사람의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영화가 이토록 신명나고 즐거울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반기문 다음으로 반씨 가문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우리 아들"이라는 자랑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오말순(나문희 분)은 혼자 힘으로 대학교수 아들을 키워냈다는 것을 일생일대의 자랑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당당함은 하늘을 찌르고, 주위사람들에게 가시돋힌 말을 아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며느리(황정민 분)는 스트레스를 받고 병원에 실려간다.
 
이후 가족이 자신을 요양원에 보내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오말순은 우연히 사진관을 찾게 되고, 사진을 찍자마자 '짠'하고 꽃처녀 오두리가 된다. 영화는 이 때부터 유쾌한 시간여행으로 웃음을 안긴다.
 
◇심은경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70세 노인의 행동거지를 연기하는 심은경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전라도 사투리와 나문희의 말투가 마치 자기 것인 마냥 자연스럽고, 어정쩡한 걸음걸이마저 치밀하게 연기한다.
 
뿐 만 아니라 다소 촌스러운 느낌의 땡땡이 패션이나 원색 원피스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 할머니 같은 춤사위를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그를 보고서는 자연히 미소가 머금어진다.
 
손자인 반지하(진영 분)의 밴드로 합류한 뒤 '나성에 가면', '빗물', '하얀나비'를 부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가수로 데뷔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난 보컬 능력을 선보인다. 극중 가수가 되고 무대를 뛰어다니는 장면 역시 아드레날린을 선사한다.
 
감정선도 독특하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박씨(박인환 분)와는 티격태격하며 오랜 친구의 모습을 보이고, 할머니인지도 모르고 자신을 좋아하는 손자에게는 애정을 쏟으면서도 철없는 행동을 하면 머리를 사정없이 때린다. 그 행동이 성격 있는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처럼 자연스럽다. 
 
엄마 같다며 호감을 표현하는 한승우 PD(이진욱 분)에게는 70세 할머니가 사랑에 빠진 감정을 표현한다. 어느 지점이든 튀는 감정이 없다. 심은경이 놀라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1994년생 심은경의 힘은 러닝타임내내 전달된다. 취재진 사이에서 "연기를 이정도로 잘 하는 배우인지 몰랐다"는 말이 돌 정도다. 나문희, 박인환, 성동일 등 출연배우들로부터 심은경을 향한 극찬이 이어지는 것은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성동일-이진욱-진영-나문희-김현숙-박인환(왼쪽위부터 시계방향)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나문희와 박인환은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수더분한 모습을 연기한다. 노익장을 과시하듯 여러 지점에서 코믹을 만들어낸다. 코믹을 예상케하는 성동일은 기존 이미지를 벗고 진중한 반현철을 연기하고, 시어머니에 스트레스를 받는 며느리 역의 황정민은 화장기 없고 피로가 역력한 기색으로 디테일을 살린다.
 
박씨의 딸을 연기한 김현숙과 반현철의 큰 딸 반하나 역의 김슬기는 유쾌 발랄한 행동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두 여배우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승우 역의 이진욱은 훈남의 이미지를 그대로 그려낸다.
 
영화는 가족과 말순이 다시 합칠 수 밖에 없는 설정을 통해 가족애의 소중함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하지만 영화 말미 오두리와 반현철의 눈물이 뒤범벅된 대화는 다소 감동을 쥐어짜듯이 그려져 유일하게 아쉬운 대목이다. 오두리가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려고 한 감독의 의도는 이해되지만, 급격한 감정과잉은 불편함을 안긴다.
 
그 시퀀스를 제외하면 영화는 전체적으로 신선하고 클리셰가 느껴지지 않는다.
 
엔딩은 다시 '수상한 그녀'의 즐거운 분위기로 돌아간다. 오말순은 며느리와 사이가 좋아졌고, 반하나는 반지하 밴드의 보컬이 된다. 박씨는 여전히 오말순을 보필한다.
 
특히 반전 엔딩을 선사한 감독의 선택은 신의 한 수다. 엔딩의 임팩트가 강해서인지 영화를 보고 나면 신나는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오게 될 것이다.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진부할 수 있는 메시지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제작진의 감각은 영화 '써니'가 전달한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심은경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티켓 값은 아깝지 않다. 가족과 함께 웃고 돌아오기에는 이만한 작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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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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